[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N포 세대” “헬조선”

L씨는 뉴스에 이런 단어만 나오면 한숨만 나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수많은 자격증을 따도 취직이 힘들다고 하고, 취직을 해도 먹고살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곧 사회 초년생이 될 아들놈을 생각하면 더 막막해지고 걱정이 됩니다.

한편으론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의 문제가 지금 중년들 때문이라는 시각도 분명히 있는 거 같습니다. 분명히 열심히 살아왔는데, 정말 부모 자식을 위해 죽도록 달려왔는데 우리 때문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자식들 뒷바라지도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사람들은 알까요? 우리 시대의 고충을?
 

사진_픽셀


정신과 질환과 그 외의 질환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사회적인 요소가 발병, 악화,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온 환경이 끊임없이 나를 자극해 성격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발전시키기도 하며 움츠러들게 만들기도 하죠. 그 누구도 살아온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견디기 힘든 절망적인 환경이 나를 찾아온다면 그만큼 우울증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환경도 그 범위에 따라 구분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개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환경(가족 관계에서의 문제, 직업적 문제 등)에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한 세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규모의 환경(정치, 경제, 사회적 분위기 등)도 정신건강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사회정신의학 분야에서 이렇게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하고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나의 환경을 구성하는 가장 커다란 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환경과 달리 정치적 상황, 경제 수준, 사회적 분위기 등은 많은 사람이 공유를 합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함께 역사적 순간들을 경험하고 비슷한 사회의 문제점들을 겪어가며 성장하지요. 우리는 이를 ‘세대’라고 부릅니다.

각 세대는 그들이 겪은 시대적 상황의 큰 특징에 따라 여러 가지 별명이 붙기도 하지요. 386 세대, X 세대, N포 세대 등등. 이런 별명이 붙을 수 있다는 건 실제로 그들이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변수들에 의해 각자 다른 삶을 살지만, 그들은 서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초,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들 같다고 할까요?

하지만 세대와 세대 사이를 보면 좀 상황이 다릅니다. 세대 간의 갈등.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 이 갈등은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에 무시 못할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Empathy)’은 타인의 생각, 감정, 행동 등을 내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기준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으로, 정신과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공감은 상대방에게 관심과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아무리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서로를 이어주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죠. 공감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이해, 환경에 대한 고려가 모두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수록 공감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대개 그 사람의 표면만 보아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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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러한 공감이 세대와 세대 사이에도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서로가 하나의 인격체인 것처럼 서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서로가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대 간의 갈등은 절대 줄어들 수 없습니다.

보통 ‘중년’에 대해 이해를 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그 나이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40-50대의 특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고, 내가 그 나이가 되면 어떨까, 혹은 내가 그 나이 때에는 어땠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어릴 때 많이 들어보셨지요? ‘내가 네 나이 때는 안 그랬다’라는 류의 말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을 하려면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진정으로 중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어떤 유년기, 청년기를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들의 시대에는 생존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그들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그들이 이루어 낸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중년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뀌죠. 오늘의 중년은 내일엔 노년이 되고, 오늘의 장년은 내일의 중년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년을 이해하는 법’이라는 것은 나이에 따른 변화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반론도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은 그 세대의 삶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세대 간의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현재의 중년은 정말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의 중년은 대한민국의 급격한 변화를 몸소 체험한 세대이며, 그 변화를 견뎌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최근에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현재의 중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까지 근무가 당연한 생활을 하기도 했죠. 개인의 여가보다는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큰 가치로 여겨졌던 시대를 우리의 중년은 버텨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문제들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충실하게 살아왔고, 다른 세대에게 격려와 위로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대 간의 갈등은 보이지 않아도 사회적 분위기나 세대 간 대인 관계에 분명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는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나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지요. 그런 만큼 세대 간의 공감과 위로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한 긍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공감해 주세요. 내 주변의 중년들을. 그리고 이 시대의 중년들을. 그 공감이 지금의 중년들에게는 정말로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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