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주변에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네요. 제가 요즘 계속 악몽을 꾸고, 진짜 귀신도 봤거든요. 이게 얘기가 좀 길어요.

 

저는 최근에 입사를 했어요. 제가 일을 잘 못하는 편이라, 관리자에게 사수가 욕을 많이 먹었었고 그래서인지 사수도 저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했었죠.

사수가 여름휴가를 갔을 때, 다른 선배가 저를 다독이면서 얘기하더라고요. 그 사수가 사실 네 걱정을 많이 한다고. 앞에서는 그렇게 험한 말을 해도, 선배들끼리 있을 때는 자기가 너무 심한 것 같았다고 자책도 많이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관리자에게도 처음이라 힘들어하는 거라고, 너무 재촉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했었다는 거예요. 진짜 의외였어요.

저도 사수한테 욕먹을 때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정말 많이 화났었거든요. 그래서 휴가에서 돌아오시면 같이 깊은 얘기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문제는 그 사수가 며칠 전 죽었어요. 휴가지에서 추락사했다더라고요. 많이 울었고, 죄책감도 심했어요. 장지까지 갔다 왔죠.

그런데 그 날 이후로, 밤에 계속 뭔가 보였어요. 어두운 골목길 멀리에, 그 사수처럼 옷을 입은 뭔가가 있었는데, 제가 한눈 팔 때마다 엄청나게 빠르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결국 달리듯 집에 들어왔죠.

한 번은 새벽에 출근을 하다가, 환한 길 끝에서 뱀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뭐지 했는데, 뱀이 너무 빨리 저에게 다가와서 놀랐고, 넘어졌어요. 뱀은 없어졌고요.

제가 졸린 상태나 술 취한 상태도 아닌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 주변에 말하니 다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몸이 허해져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제는 꿈을 꿨어요. 제가 어떤 허름한 건물 속에 있는데, 무언가가 저를 계속 쫓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도망치려 했는데, 컴퓨터 선이 발에 엉켜서 넘어졌어요. 동시에 건물은 불바다가 됐고, 하늘에서 뭔가가 저를 덮치더라고요. 비명을 지르며 깼어요. 

이게 귀신이 들린 건지, 제가 미친 건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가요? 

 

사진_픽사베이

 

A) 갑작스러운 죽음은 언제나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해요. 그 사람과 이별을 준비할 시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 마음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지요. 질문자 분도 마음에 아쉬움이 많이 남으신 것 같아요. 

 

먼저, 무언가를 보셨겠죠. 그러니깐 진짜 보셨다고 강조하신 거잖아요. 

하지만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신하기 이른 것 같아요. 증인이나, 증거 자료가 없기 때문이죠. 질문자 분은 사수의 귀신이라고 믿는 것 같지만요.

저는 이 상황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아요.

이 속담은 이전에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은,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을 자라로 잘못 보게 되고, 그래서 놀라게 된다는 의미이죠.

이 속담은 과학적으로도 사실이에요. 실제로 이전의 경험이, 우리가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자극을 해석하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주변에 종종 여름 느낌을 좋아하거나, 겨울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죠.

비슷한 경우예요. 본인이 여름 혹은 겨울에 경험했던 좋은 추억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기억에 남는 것뿐 만이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으로도 기억되니까요.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귀신이 보이는 이유는 질문자 분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에요.

사수가 질문자 분에게 화를 낼 때, 질문자 분도 화가 많이 나셨겠죠. 사수에 대해서 아주 나쁜 생각을 했을 수도 있어요. 뭔가 해코지를 하고 싶다던가, 그런 생각이요.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사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질문자 분은 사수에게 미안함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자신이 혼나던 순간 나쁜 생각을 했던 것이 미안하셨던 거겠죠. 하지만, 그런 미안함을 표현할 틈도 없이 사수 분이 사고로 운명하셨네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착각을 하게 돼요.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나쁜 생각들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거야’ 이렇게요. 마치 내가 저주를 걸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죠.

이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바로 질문자 분이 느끼셨던 ‘죄책감’이에요. 사수 분이 돌아가시건, 안된 일이죠. 분명히요.

하지만, 죄책감이란 감정은 사수분의 죽음에 질문자 분이 뭔가 기여한 것이 있다고 착각할 때 생기는 감정이에요.

생각해 보시면, 질문자 분도 모든 안타까운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진 않으실 거예요. 유독 이 죽음에서만 느끼시는 거죠.

이 죄책감이 사수가 귀신으로 나타나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거예요. 사수가 사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셨잖아요.

그러면 귀신으로 나타나는 게 왜 그렇게 두려우신가요? 귀신으로 나타나서 로또 번호를 주거나, 일 잘하는 법을 알려줄 수도 있잖아요.

그 귀신이 두려운 이유는, 본인이 어떤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귀신이 두려운 거고요. 딱,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속담과 맞죠.

 

사진_픽사베이

 

정리를 하면, 뭔가를 보고 그것을 귀신으로 해석하신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사수에 대한 죄책감이죠.

꿈속에 나타나는 것들은 보통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 적어주신 내용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얼추 추측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허름한 건물, 쫓아오는 무언가, 컴퓨터 선, 화재, 하늘에서 덮치는 무언가. 이게 꿈에서 나타난 것들의 순서죠.

허름한 건물을 회사라고 가정한다면 뒤에 것들은 자연스럽게 해석돼요. 회사에서 늘 압박을 받으시는 상황이, 허름한 건물에서 무언가에게 쫓기는 것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그런데 컴퓨터 선에 걸렸고 불이 나네요. 업무적 실수나 미숙이 일어나고, 본인이 혼나게 되는 상황을 화재로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혼나는 상황을 불지옥으로 흔히 묘사하곤 하니까요.

하늘에서 덮치는 무언가는 그 사수를 상징하는 듯해요. 질문자 분을 혼냈던 당사자로서 불지옥에 함께 있어야 하고, 전해 들은 사망 원인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기도 해요.

또 질문자 분의 죄책감이 스스로를 지옥에 갈 것이라 생각해서, 화재 속에 본인이 있는 것 일수도 있어요. 죄책감은 늘 처벌과 함께 하니까요.

 

중요한 건, 질문자 분은 미친것도 아니고 귀신이 들린 것도 아니에요. 다만 감정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갑작스럽게, 사수 분이 사망한 것이 문제가 됐던 거죠. 본인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이, 그 모든 상황을 겪게 하고 있을 뿐이에요. 

본인은 갑자기 죽어 귀신이 돼서 직장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그들에게 나쁜 짓을 하고 싶나요?

그 사수의 평소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그분이 질문자 분께 귀신이 돼서 나타나서 해코지를 하실 분은 맞나요? 아마 아닐 거예요. 그 사수 분을 무서운 귀신으로 만든 건, 질문자 분의 죄책감이에요.

 

이 글을 읽고도 혹시, 또 사수 분의 귀신을 만나신다면 한 번 물어보세요. 왜 나타난 거냐고.

그리고 대답을 듣고,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세요. ‘내가 오해가 있었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고로 죽은 건 정말 유감이다.’라고요.

당신이 아는 사수 분이라면, 당신을 혼내고 후회하는 그 사수라면, 분명히 본인도 미안했었다고 사과하지 않을까요?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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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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