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은 워킹맘 8년차인 최 과장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 과장님은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늘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부모님, 남편의 형제들 뒷바라지도 한다고 하더군요. 거기다가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는 챙겨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도와주면 좋은데, 남편은 퇴근하면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해 봤자 “그럴 거면 회사 그만둬”라는 말만 돌아올 것 같아, 그냥 참고 혼자서 아이 돌보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한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모두 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회사 일 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못 챙기는 것 같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라는 죄책감이 들어서 괴롭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남편과 아이, 시댁 식구를 돌보고 있는데도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엄마다’라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며 상담을 신청해 왔습니다.

 

이런 사연들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고,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집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출근해야 하는 데 아이가 열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 하고 있는데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아이 돌보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분신술을 부려서 내 몸을 두 개, 세 개로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기도 할 겁니다.

'남편이 조금만 도와주면 좋을 텐데...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와서 내가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생각에 이르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남편을 한 대 때려주고 싶어 지기도 할 겁니다.

 

가정의 요구가 일에서의 책임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가정-일 스트레스(Family-Work Stress)라고 하고, 그 반대의 경우를 일-가정 스트레스(Work-Family Stress)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터를 벗어나야 하는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가정-일 스트레스이고, 예기치 않게 회의가 길어지게 되면 부모가 학교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데 지장이 생기게 되는 것은 일-가정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가정-일 스트레스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여성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남성에 비해 월등히 큽니다. 학교에서 아이가 아플 때 전화받는 사람도 엄마고, 노부모를 돌봐야 할 때 스케줄을 조정하는 사람도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를 보면,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40분에 불과합니다. 여성은 그것의 5배에 달하는 3시간 14분이고요. 외국에서 시행된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일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주당 6시간을 덜 자고,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은 주당 12시간 더 짧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정-일 스트레스의 피해자는 여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여성의 가정-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에, 효과가 입증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사내 보육 시설 확충, 유연 근무제, 그리고 관리 감독자의 정서적 지원입니다. 개인이 작업 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고, 상사가 정서적으로 지지적이면 자기 통제감을 느끼게 되어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가정-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회사는 주가도 높아진다고 하니,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득이 될 것 같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되면 이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육아와 남편 내조 그리고 시부모 부양을 열심히 하며 살아왔던 30대 여성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집에서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아요!"

결혼 전에는 날씬하고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살만 찌고 눈가에 주름만 늘었다고 하면서요. 무엇보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하면 우울하고,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까지 든다,라고 하더군요.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지금 보다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 없습니다. 전업 주부가 되어서 아이 키우고, 집안일에 올인한다고 내 삶에 더 만족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육아에 전념할 것인가, 아니면 일과 가정을 양립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무엇이 더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택이냐"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민입니다.

 

아이 양육, 집안일을 혼자서 모두 감당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괜히 남편과 싸울 바에는 내가 혼자 하는 게 나아요, 라는 약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남편과 당당히 맞서 싸울 각오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강한 마음먹고 있어야, 남편도 변합니다. 약한 마음으로 혼자 하기 시작하면, 남편도 변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영화도 보고 친구 만나서 수다도 떨어야 합니다. 집안일 남편에게 맡기고, 나만의 시간, 혼자만의 시간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사진_픽셀


일과 육아, 두 가지를 한꺼번에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더 힘들어지고, 두 가지 다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숙제 다했구나, 우리 딸 착하다"란 말을 듣고 자란 여성일수록 일과 가정에서 모두 완벽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습니다. 완벽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전업 주부였다면 아이를 더 잘 키웠을 텐데… 일 하는 엄마여서 아이에게 미안하다'라는 생각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일 그만두고 아이만 키워어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더 잘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완벽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내면에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실수하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거부할 것이다’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실수나 결점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일도 완벽해야 하고, 아이 키우는 것도 완벽해야 한다”라는 마음을 내려놔야 합니다. “일도 잘 하고,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야”하고 자신에게 조금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남편을 적극적으로 집안일에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8년이나 워킹만으로 살아왔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지금까지 꽤 잘 해 오고 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좋은 엄마는 없다”라고 자기 자신을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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