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정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어떤 것이 제일 힘드셨나요? 뭐니 뭐니 해도 사람 대하는 것이 제일 힘들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대인관계 참 힘들죠?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불편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죠. 그중에서도 상대와 내가 의견이 다르고, 갈등 상황에 있을 때 제일 힘들어집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참으시나요? 싸우시나요? ​참으려 노력하신다고요? 오늘은 그 '참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제가 더 참아야 하는데 참 그게 힘드네요"하며 자신을 자책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대인관계에서 수용(acceptance)은 관계의 시작과 발전에 매우 중요합니다. 수용을 잘 하는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담자들 중에는 '너무 많이' 참는 것 때문에 문제를 겪는 분이 많습니다.

30년간 남편의 나쁜 성격을 받아준 대가로 화병을 앓는 중년 부인, 히스테리 부인의 성격을 받아주다 돈도 벌고 육아도 다 책임지고, 부인 건강까지 챙겨야 하는 '마당쇠'의 삶을 사느라 지친 남편, 금지옥엽 키우며 원하는 건 다 들어줬는데 사춘기가 되어서는 공부도 안 하고 나쁜 짓하고 다니며 말리는 부모에게 되려 욕하고 대드는 아이를 보고 배신감을 느끼고 무기력해진 엄마. ​한결같이 참아주다 병난 '피해자'들입니다.

성격 나쁜 가족들을 책임지고 뒷바라지하느라 병났으니 가족이 원망스러울 뿐이죠. 병이 나고서야 그들도 눈치를 보고 행동을 바꾸기도 하는데, 그간 멍든 가슴에 비하면 새발의 피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게 사실입니다. 또 아예 행동을 바꾸지 않는 가족들도 있어서 이런 경우에는 정말 곤란합니다. 치료를 해도 자꾸 재발하고, 잘 낫지도 않습니다.

 

사진_픽셀

참다가 병이 난 경우에는 자기주장(Self assertiveness)을 좀 하시라고 독려를 합니다. 그런데 워낙 안 하던 자기주장을 하려고 하면 잘 되지도 않고, '전에는 참았는데, 왜 이제는 못 참나'하는 생각에 죄책감을 자꾸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해 드려 마음을 정하도록 돕습니다.

"사실 참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적절한 자기표현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당신의 욕구만큼 나의 욕구도 중요하고, 나의 욕구만큼 당신의 욕구도 존중하는 것이 배려요, 타협이죠. 갈등을 통해 우리는 배려와 타협을 배워요. 그런데, 너무 참아주시면, 상대방은 그런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려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벌컥하는 남편은 자기의 성격을 고칠 기회를 놓쳐 회사에서까지 무례하게 화를 내다 인사 경고를 받거나 직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또, 히스테리 부인은 남에게 기대는데 익숙해져서, 나중에 며느리나 사위한테까지 그렇게 하다가 서로 등 돌리고 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과잉보호 속에 자란 아이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순종의 미덕을 배우지 못해 어떤 사회에 가든 불만 가득한 아웃사이더가 되고,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많이 참는 분이 있다면, 참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머리 아픈 게 싫어서 그냥 피해버리는 건 아닐까? 사랑이라고 합리화하고, 착한 역할 하면서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는 건 아닐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

적당히만 참고, 너무 많이 참지는 마세요. 버틸 때는 좀 버텨보는 게 모두에게 좋습니다. 오늘, 좀 버텨보고, 참기도 하면서 너와 내가 모두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길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