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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우울증을 극복하려는데, 자꾸 의지가 꺾여요

기사승인 2018.07.29  02: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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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정신과의사협동조합 김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우울증과 성격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죽고 싶은 생각과 우울감, 대인기피증, 불안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 입원한 뒤에야 병인 것을 알았고 결국 10년이나 방치하고 난 뒤에야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학교 폭력, 왕따, 집안 문제 등 여러 가지로 우울증이 심해졌고 억지로 이겨내려다가 결국 도무지 안돼 일 년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우울성 성격 장애라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도 꾸준히 먹고 있고 상담치료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 많은걸 깨닫긴 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었나, 너무 과거에만 얽매여 있었나. 그런 것들.

그리고 내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걸 나 스스로가 몰랐던 것도 있었고요, 사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대로 꾸준히 하면 되는데 시키는 대로 안 해서 더 나빠지기도 했었습니다.

약은 꾸준히 먹고 운동 일도 가급적이면 하는데 오늘같이 충동적인 날은 밖으로 쏘다니고 막 야식 먹고 과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살이 많이 찌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도 합니다. 다시 예전처럼 막 스스로가 한심스럽고 자괴감 들고....

나아지려는 느낌, 의지, 생각만 들면 괜찮은데 자꾸 마음이 어지럽고 정신을 놓게 되는 것 같아요.

병식은 있는데 뭔가 의지가 사라지는 거 같아요.

제가 과연 나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하면 나을까요? 궁금합니다.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우울증과 성격장애로 1년째 치료를 받고 계시군요.

짧은 글로 결코 다 알 수 없지만, 치료를 받기까지 많은 고통을 겪어오셨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치료를 받고 계신 상황마저도 결코 쉬운 길처럼 보이지만은 않고요.

치료를 받으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고치려고 하면 많이 좋아지는데 자꾸만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예전처럼 정신을 놓고 생활하게 되는 상황을 반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병식은 있는데 의지가 사라진다는 말씀에서 그 고민이 충분히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선 가장 먼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부분은 치료의 손길을 찾으실 수 있게 되었고, 또 그 안에서 스스로 좀 더 좋아질 수 있는 통찰을 얻으신 것 같다는 부분입니다.

'나아지려는 느낌, 의지만 있으면 괜찮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 하더라도 사실 굉장히 얻기 어려운 통찰입니다. 그것들을 몸으로 느끼고 체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요.

아마 치료받기 전에 10년이 넘도록 고생하셨던 그 기간 동안을 돌아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은, 막상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있을 때는 미처 깨닫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저 헤어 나올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늪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질문자님께서는 그래도 그 늪을 박차고 나올 길을 찾으셨다고 말씀하시니 정말 큰 진전을 이뤄내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질문자님 스스로는 아직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요.

그렇지만 예전에는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저 신음하고 힘들어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면 그것만 해도 이미 절반은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정신치료를 통한 통찰의 획득 이후 지속적으로 훈습(Working Through)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성격이란 것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잘못된 자세 때문에 허리디스크가 생긴 사람을 생각해볼까요.

매번 잘못 앉는 자세의 습관 때문에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심지어 일상생활을 하기도 무척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진통제를 먹으면서 꾸준히 자세 교정을 하면 허리 통증은 치료될 수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의사의 권유를 듣고 난 뒤에는 앉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자세를 고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되질 않지요. 생각처럼 쉽게 되질 않습니다.

예전처럼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쭉 빼고,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이 오히려 내 허리를 더 아프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하면 실제로 통증이 더 심해짐에도 자꾸만 예전처럼 그렇게 앉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몸에 익었고 몸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우리에게 편하고 유익한 쪽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것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이미 익숙해졌다면 우리는 무심코 그냥 그렇게 하게 됩니다.

 

사진_픽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만성화된 성격의 구성요소들은 일종의 반응 패턴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조건화된 자동적 반응들로 이루어진 것들도 많지요. 나도 모르게, 내가 원치 않아도 저절로 튀어나오는 일종의 반사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반사적 습관들은 결코 어느 한순간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 점진적인 노력과 교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치료에서 강조하는 훈습은 한 사람이 점차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크게 3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첫 번째 단계에서, 문제에 대한 인식을 얻고 깨닫는 순간이 두 번째 단계.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인식을 통한 기능의 연습으로 생각의 패턴과 행동의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이 마지막 세 번째 단계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만약 두 번째 단계에 이르셨다면 핵심은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 있을 것입니다.

 

환자분들은 정신과 치료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어떠한 상처와 기억에서 유래되었는지,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깨닫게 되곤 하지만, 그 뒤로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문제의 반복에서 무척 당황하곤 합니다.

“치료시간에 수없이 이 이야기를 했는데도, 여전히 현실에선 반복되는 것 같아요”라면서 “이게 고쳐질 수는 있는 것일까요”라며 좌절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깨달음에서 실질적인 변화로 나아가는 과정이 고되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점진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은 결코 치료의 장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극복의 과정이야 말로 치료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느린 속도와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이 진짜 치료와 변화의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자세가 잘못되어 허리 통증이 생겼다면 매일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자세를 다시 고쳐 앉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성격, 기분, 감정, 생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다시 노력하고, 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는 그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 과정에서 다시 실패하고, 다시 예전처럼 행동하고 다시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익숙한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되 매 순간 그것을 깨닫고 노력하는 것, 그것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과정이 1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는 사실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우울증이 아니라 성격장애와 겹친 것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고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과정을 겪어내면서 질문자님께서는 분명히, 분명히 성장하고 변화하실 수 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예전처럼 괴롭고 아파하지 않는 길로 접어드실 수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명확한 치료기간이나 전망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만, 그 험난하지만 빛나는 길을 걸으실 질문자님의 고군분투에 응원을 보태드리겠습니다.

 

 

 

김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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