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아버지 어머니 누나 둘에 제가 막내입니다.

제 기억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바깥에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천사이셨어요.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칭찬했죠. 저분은 천사시라고 그런데, 집에만 들어오면 소리 지르고, 욕하고, 때려 부수고, 어머니 패고...

 

전 '아빠' '엄마'라고 불러본 기억이 없어요. 누나들은 안 그랬는데 저는 말 배울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라고 했대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좋아하시는 걸 보고 그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안 죽고 살려고 '아버지' '어머니'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어린 날의 저를 본다면 위로해 주고 싶네요.

지금은 그냥 입에 붙어서 아버지 어머니 해요. 이젠 아빠 엄마는 어색해서 못해요.

 

아버지가 저를 부르는 호칭은 '어리한 새끼' 였어요 (경상도 분이셨는데, 서울말로 하면 '어리버리한 새끼', '멍청한 새끼' 정도가 되겠네요).

아버진 해병대를 나오셨어요. 밥도 직각으로 먹으라고 했고 (차렷하고 앉아서 눈은 정면 15도를 향해 바라보고 밥을 뜬 숟가락을 수직으로 들어 올려서 입 높이까지 온 다음 수평으로 숟가락을 이동해서 입에 넣는 걸 직각 식사라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애가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생굴을 주셨을 때 안 먹는다고 했다가 따귀를 때리고 울고 있는 제 입을 손으로 벌려서 생굴을 입에 집어넣고 정말 차가운 눈으로 다른 아무 말 없이 '삼켜'라고 계속해서 반복했어요.

 

이건 아버지도 어머니도 마찬가지인데, 제가 그 어떤 설명을 하거나 이야기를 해도 제 이야기를 들어준다거나 이해를 받은 기억이 전혀 없네요.

애가 길 가다 넘어지면 울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버지는 '남자는 절대 울면 안 된다. 팔이 잘라지고 귀가 뜯어져도 울지 마라'면서 소리 질렀어요. 그래서인가 저는 울지를 못해요.

지금도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좀 울기라도 하면 속이 시원할 거 같은데, 울지를 못해요. 어떻게 하면 울 수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한 번은 정말 한 번 울어보려고 막 노력을 했는데 결국 실패했어요.

 

사람이 밥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잖아요? 감정도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들어오면 내보내는 것도 해야 하는데, 저는 감정적으로 밥만 먹고 화장실에 안 가는 사람인 거 같아요.

뭘 해야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스트레스 해소를 하려고 해도 뭘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지를 알 수가 없어요.

스노우보드도 타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게임도 해보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뭘 해봐도 뭐든 오래 못 가요. 뭐든 해도 그냥 흥미가 안 생겨요. 답답해요.

 

사진_픽셀

 

아버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아버지는 10년쯤 전에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그런 아버지 탓인지 우리 가족들은 늘 서로 날이 서 있었고요. 집안에서 가장 어렸던 저는 어머니나 누나들의 화풀이 대상이었어요.

시골에 보면 집 마당에 키우는 똥개 있죠? 오며 가며 화풀이할 때 그냥 한 번 발로 걷어차고 지나가는. 제가 우리 집안에서 역할이 그 화풀이용 똥개라는 생각 참 많이 했어요. 그냥 세상에서 집에 들어가는 게 제일 무섭고 싫었어요.

나이도 제가 가족 중에 제일 어린 데다가, 어릴 땐 여자애들이 성장이 빨리 오잖아요? 그리고 누나 둘은 항상 한 편이었어요.

나보다 나이도 많고 힘도 세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 둘이 한 편을 먹고 덤비니 저는 누나들은 말로도 힘으로도 뭘로 해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어요.

괜히 덤볐다가는 죽도록 맞고 저만 울고 울면 운다고 아버지한테 또 맞고. 누나들이 부르는 제 이름은 '쪼다 새끼' '비실비실한 새끼'였고요.

저는 그런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어렸을 적 이야기들이 생각나네요. 누나들이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혼나는 날은 제가 고스란히 그 화풀이를 다 당해야 했어요.

 

문제는 어머니인데요. 어머니는 참... 복잡하네요.

우리 어머니 참 고생 많으셨죠. 돈 못 버는 아버지 대신 파출부에 뭐에 안 한 것 없이 다 하시면서 저희 3남매 키우셨고요. 제가 세상에서 본 저를 가장 사랑해준 사람이고 저를 가장 못살게 군 사람이고,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하지만 제일로 싫고 미운 사람이기도 해요.

사실 저는 아직도 어머니는 세상에서 상대하기 제일 힘든 사람이에요.

아버지나 누나들은 항상 일관되니까 그냥 피해 다니면 되는데, 어머니는 기분 좋은 날은 '우리 아들' '우리 강아지' 이러면서 껴안고 부비고 세상에 둘도 없이 잘해주다가 어떤 날은 죽일 듯이 대하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어요.

 

특히 어머니는 시골 출신이셔서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어요. 누나들이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눈을 희번덕 거리면서 손을 치켜들고 제가 뭐 먹고 싶다고 하면 치킨도 사주고 했어요.

저 사주고 어머니는 안 드세요. 저 먹는 거 옆에서 가만히 쳐다봐요. "어머니도 드세요."라고 하면 "난 치킨 싫어해."라고 하시고 저 먹는 거 가만히 보세요. 하루 이틀이지 먹으라 해놓고 안 먹고 쳐다보는 거 짜증 나서 저도 치킨 안 먹기 시작했어요.

또 치킨을 한 마리 사서 저 혼자 먹는 그런 날이면 두 누나들은 저를 죽여 버릴 듯이 쳐다보면서 '아들이 뭔데 저 병신 쪼다 같은 새끼만 다 해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새끼' '개 같은 새끼 찢어 죽여 버리고 싶어' '비실비실한 게 맨날 코피나 흘리고 등신 같은 게' 뭐 이런 거의 랩을 하듯이 옆에 앉아서 제 욕을 해댔어요.

어릴 땐 내가 뭐 먹고 싶다면 사주고 하니까 좋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맛있는 치킨보다는 누나들의 눈빛이 더 부담스러워 저도 안 먹게 되더라고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맞았거나 하는 날은 제가 잠이 덜 깨 밥을 빨리 안 먹는다거나, 식사 도중에 TV를 본다거나 아주 사소한 작은 잘못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입을 마 주째 뿔라." "미싱으로 박아 뿔라" 같은 말들을 하며 의류 재단용 아주 날카로운 날이 서있는 가위를 제 눈앞에 들이 대고 그랬어요. 맞으면서 깬 적도 많고요. 자다 맞으면 참 좀 그래요.

솔직히 그때는 정말 저 가위가 내 입을 찢는 상상을 너무 많이 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집을 나가려고 해봤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는 이 세상에서 가족들이 제일 무서웠는데 그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늘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왔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매일 가출했던 거 같아요. 집에 못 들어가고 문 앞에 왔다 갔다 하고 서 있다가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버지나 누나들 손이 이끌려 집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어요. 사실 거의 매일 그랬죠.

 

사진_픽사베이

 

그런데, 운 좋게도 그 흔한 학원이나 과외 한 번 안 해보고 저 나름 공부도 잘했고,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대학도 나왔어요.

공부도 박사까지 했어요. 학부 때 등록금은 절반 정도는 집에서 해줬고, 1/4 정도는 제가 과외/아르바이트해서 벌고, 1/4 정도는 등록금 대출해서 나중에 제가 다 갚았네요. 대학원부터는 제가 번 돈으로 냈고요.

아버지는 우리 집 가난해서 너 대학 못 보낸다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하라고 하셨었는데, 중3 때 어차피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학교 가서 진학 상담할 때 공고 가려고 했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아들은 대학가야 한다고 하고 중3 때 담임선생님 설득도 있고 해서 결국 인문계 가고 대학도 가고 어쩌다 보니 박사까지 했네요.

공부를 늦게까지 하게 된 건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지나고 보니 어머니가 대학도 보내주시고 등록금도 많이 도와주신 거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이제 호호할머니가 되셨네요. 이젠 저도 컸고, 저희 집도 어머니가 나가서 일 안 하셔도 먹고 살만은 해요.

그런데 어머니는 아무것도 안 해요. 일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진짜 그냥 아무것도 안 해요.

이제 돈 안 벌어도 되니 재미있게 노시라고 용돈을 드리면서 동네 친구 분들이랑 어디 가서 좀 재미나게 놀으시라고 해도 "그것들은 맨날 돈 쓰자고만 한다" "사람을 만나 한 번 얻어먹으면 나도 한 번 사야 하니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상책이다." 이런 말만 해요.

전에 어떤 TV 프로에서 집에 카메라 설치하고 주인이 출근한 다음에 강아지들이 뭐하나 찍은 걸 봤는데 주인이 올 때까지 문 앞에 하루 종일 있더라고요.

우리 어머니도 그럴 거예요. TV 틀어서 본다는 거 빼고는 같을 거예요. 친구도 없고 나가지도 않아요.

저만 기다리는데 미안하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저는 어머니랑 이야기하는 거 싫어요. 피곤도 하고, 말만 꺼내면 "왜 그걸 먹었냐 몸에 안 좋게" "왜 친구를 만났냐 돈 아깝게" 이런 말만 하니까 너무 화가 나요.

제가 친구들 만나서 맥주라도 한 잔 하고 들어오면 "아니 사람을 만나면 돈을 써야 하는데 도대체 친구라는 게 왜 필요하냐. 친구들을 만나지 마라. 나는 느그들 밖에 없는데 느그들은 왜 밖으로 다니냐"라고 해요. 아니 사람이 이야기 나눌 친구라는 게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야 돼요?

누나랑 제가 출근하고 나면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아무도 안 만나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요. 앉은자리에서 TV만 봐요. 친구도 한 명도 없어요. 그리고 제가 퇴근하고 문 열고 들어오면 쪼르르 달려와서 막 말 걸려고 하는데 저는 어머니가 솔직히 부담스럽고 별로 할 말도 없어요.

어머니는 저만 쳐다봐요. 밥 먹다가 내가 눈동자만 좌우로 돌려도 "물 줄까? 이거 먹어봐. 뭐 줄까?"하고 말해요. 저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정말 숨이 막혀요.

어머니랑 밥 먹기 싫은데 아침에 출근할 때도 밥상을 차려 놔요. 눈동자가 화장실 가고 씻고 옷 입고 출근하는 저를 계속 따라다녀요. 느껴져요. "나 늦어서 그냥 갈게요" 하면 한숨을 푹 쉬면서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상을 치워요. 노인네 그러는 게 불쌍하기도 해서 가끔은 억지로 먹고 회사는 지각해요. 밥상을 들어서 던져버리고 싶어요.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불쌍해요. 그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해서 우리 셋 키운 거 알아요.

불쌍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런데, 다른 사람들처럼 어머니 란 말 들으면 눈물이 나고 애틋하고 보고 싶고 그렇지는 않아요. 아마 어머니가 저나 누나들보다 더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생각하면 참 불쌍하고 안됐고 안쓰럽고 좀 잘해주고 싶고 한데 막상 마주하면 불편하고 미워요. 싫고, 짜증 나고, 기본적으로 애틋한 그런 게 없어요.

한 편으로는 어머니한테 참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저도 저를 모르겠는 게 어떤 때는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화가 나고 짜증도 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뭐가 안 되거나 그러면 어머니한테 화풀이해요.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어머니는 나를 자기 맘대로 컨트롤하고 싶은 건데 어렸을 때는 소리 지르고 욕하고 몽둥이로 한 거고, 제가 나이 들고 본인이 늙어서 이제 힘으로 못 이기니까 계속 말없이 저를 쳐다봐요.

제가 불편해할 거 알면서 그냥 계속 저만 쳐다봐요.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저만 쳐다봐요. 계속하는 말이 "나는 느그들밖에 없다."네요. 그렇게 해서 나를 조종하려는 거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시골에서 들어보니 우리 아버지도 참 많이도 맞으면서 불쌍하게 자랐던 거 같고, 어머니도 내가 본거만 해도 참 불쌍한 사람이에요. 커서 이야기해보니 누나들은 누나들 나름대로 참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난 나중에 집을 떠나면 죽어도 다시는 어머니를 안 모시고 살 거라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이 나이에도 아직 어머니랑 살고 있네요. 집 나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도 못 하고 매일 저녁마다 또 병신 같이 웃으면서 집에 들어가요. 스스로가 참 병신 같네요.

한 때는 나이가 결혼을 할 때도 됐다 싶기도 하고 집에서 독립하고 싶어서 선도 열심히 보고 해봤어요. 몇몇 맘에 들고 좋은 분도 있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

이 나이 먹고 어머니랑 사는 것도 너무 웃기긴 하지만 집이 싫어서 집에서 나갈 구실 만들려고 결혼하는 건 나한테도 그 여자한테도 서로에게 못할 짓 같아요. 그딴 이유로 결혼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는 그 여자는 무슨 죄예요?

 

어머니가 참 감사하기도 한데, 참 싫고 짜증 나기도 해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너무 여러 가지라 저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이고 싶다가 불쌍하다가 맘이 변하네요.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 인생도 앞으로 뭐가 새로이 변하거나 달라질 즐거워질 일이 없잖아요. 그냥 어머니가 일찍 좀 돌아가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고, 장례 잘 치르고 나서 다른 복잡한 일 잘 모두 마무리해놓고, 저도 깔끔하게 빨리 죽고 싶어요. 요즘 제가 바라는 소원이에요.

저는 무슨 병인가요? 이런 거 나을 수는 있나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사연을 길게 써주셨고,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 너무 크게 느껴져 가볍게 답변을 달 사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저도 몇 번이나 사연을 읽고 답변을 쓰고 있습니다.

사연을 읽으면서 글쓴이 분의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힘든 환경 내에서 충분히 잘 성장해 오신 것으로 보여 밝음도 느껴졌습니다. 글쓴이 분은 이런 어려움을 잘 이겨낼 자원을 충분히 가지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아픔이 많은 듯 느껴졌습니다. 다른 분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머니께서 큰 상처와 아픔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로 인해 글쓴이 분도 큰 상처와 책임감, 죄책감, 부담감 등이 혼재되어 뒤섞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참... 복잡하네요. 우리 어머니 참 고생 많으셨죠. 제가 세상에서 본 저를 가장 사랑해준 사람이고 저를 가장 못살게 군 사람이고,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하지만 제일로 싫고 미운 사람이기도 해요. 사실 저는 아직도 어머니는 세상에서 상대하기 제일 힘든 사람이에요."라는 글쓴이 분의 이야기가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혼재되어 있는 양가감정을 해결하는 것이 글쓴이 분의 인생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글쓴이 분께서 말씀(어머니가 저나 누나들보다 더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하셨듯이, 어머니께서 여건이 되신다면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정신과 상담)를 받아보시도록 권유드리는 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젠 저도 컸고, 저희 집도 어머니가 나가서 일 안 하셔도 먹고 살만은 해요."라고 글쓴이 분께서 말씀하셨듯이 현재는 돈에 민감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돈에 대해 민감해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왜 그렇게 돈에 민감하실까요?

어머니께서 힘들게 돈을 버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상처와 아픔을 많이 겪으셨을 겁니다. 과거에 돈과 관련한 상처들을 해결하시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는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은 과거에 살고 있으신 겁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살고 있는 마음을 현재에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를 받으신다면 상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머니는 저만 쳐다봐요."라고 글쓴이 분께서 말씀하셨듯이 어머니께서 글쓴이 분께 과도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로 인해 글쓴이 분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요.

어머니께서 글쓴이 분께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것도 아마 과거에 연유할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어머니께서 힘든 환경에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아마도 남편(아버지)으로부터 충족받지 못하고, 이를 아들인 글쓴이 분께 투사하여 살아오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해결이 되어야 어머니께서도 글쓴이 분께 집착하지 않고 돈에 대한 걱정도 덜 하시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날들이 긴 만큼, 상처가 깊은 만큼 단기간에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도움을 받으신다면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진_픽셀

 

어머니도 어머니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분 안에 있는 양가감정을 해소하지 않으시면, 어머니가 바뀌시더라도 글쓴이 분은 계속 불편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저를 모르겠는 게 어떤 때는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화가 나고 짜증도 내요."라고 글쓴이 분께서 말씀하셨는데 본인의 감정을 본인이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감정의 연유를 자신이 모르면 불편한 마음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와 똑같이 글쓴이 분도 그 감정의 연유는 과거 상처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랬던 거처럼 저도 뭐가 안 되거나 어머니한테 화풀이해요."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분명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상처들이 현재의 감정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알아가려는 노력이 글쓴이 분께는 무척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머니께서 박사 과정까지 수료시켜 주셨고 어머니께서 많은 희생을 하셨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여기와 관련된 많은 글쓴이 분의 감정들이 있을 거고요.

그와 반대편에는 "나는 너밖에 없고 너 때문에 산대요. 난 그 말 들으면 죽어버리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셨듯이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잘 살펴보시고 좀 더 깊게 자신을 바라보시게 되면, 지금까지 나를 괴롭혔던 수많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지점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첨언 하나 하겠습니다. 집에서 나오셔서 독립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인으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은 세 가지 독립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경제적 독립, 두 번째는 신체적 독립, 마지막으로 정서적 독립이 그것입니다. 첫 번째는 이루신 것으로 보이고요, 그렇다면 두 번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어머니와 계속 마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어렸을 적 마음이 반복 재생되는 경향이 큽니다. 정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체적 독립이 동반되어야 훨씬 수월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글쓴이 분께서도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글쓴이 분의 어린 시절에는 "집을 나가려고 해봤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는 이 세상에서 가족들이 제일 무서웠는데 그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늘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왔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집 나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도 못 하고 매일 저녁마다 또 병신 같이 웃으면서 집에 들어가요."라고 하셨습니다.

현재도 어렸을 적 패턴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글쓴이 분이 신체적 독립을 하고자 하는 마음(결혼이라는 수단을 빌려서라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이 분명 있어 보이고, 또한 이를 방해하는 마음도 있어 보입니다. 이 방해하는 마음을 잘 살펴보시고, 신체적 독립을 이루시는 것이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 기저에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겠지요. 그 마음도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짧은 글로 오롯이 제 뜻을 다 전달드렸는지 조심스럽습니다.

글쓴이 분이 마음을 다해 사연을 남겨주신 만큼 저도 최대한 답변을 드리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만,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면 저의 부족으로 여겨주십시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유튜브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1, 2, 3' 영상을 보신다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글쓴이 분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늘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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