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성인이고요. 저는 어릴 적부터 모든 쪽에서 무관심, 무의욕이 습관이었어요.

친구들과 노는 것, 공부 등등 관심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게 없어요.

학창 시절 학교에 적응도 잘 못하고, 12년 동안 성적은 밑바닥이었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아예 들지 않았습니다. 

항상 수업시간에는 앉아서 보고 듣기는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도 안 되면서 머리가 정지된 느낌입니다. 정말 칠판을 보고 있어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또, 복잡한 일은 회피합니다. 글이 많은 기사, 긴 설명이 있는 책은 대충 보게 됩니다. 수업을 듣고 있다면 머릿속이 혼잡해지고, 정지된 느낌이 들면서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해요.

뭘 배웠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아요. 지금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바뀌어야겠다는 생각만 하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요.

잘하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에다, 공부는 애초에 포기하고 상식도 없고 다 부족하다 보니 단순직종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일하기도 겁이 납니다..

 

사진_픽사베이

 

자신감, 자존감 저하가 심하고 자기비하도 서슴없이 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런데 전혀 바뀌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요. 쉬는 날 밖에서 뭘 하려 하기보다는 집에서 늘 TV만 보면서 공허함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야 답답하기도 하고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예전 기억들을 이야기하고, 면담 후 불안, 강박, 우울감이 있다며 항우울제(웰부트린)를 처방해주어 복용 중입니다.

약 먹은 지는 약 4주 정도 된 것 같은데, 첫 며칠간 먹을 때는 뭔가 기분이 잔잔해지다 먹으면 먹을수록 아무 느낌이 없고 이게 좋아지는 건가 염려도 되어 자의적으로 약, 병원을 바꾸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자기 비하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답이 없는 삶이에요. 대체 어디서부터 노력해야 할까요?  

 

A) 안녕하세요, 질문자님의 절박한 심정이 글 곳곳에 묻어나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워요.

꽤 오랜 기간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성년이 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고통이 삶에 머물러 있네요.

질문자님의 글을 보면서 어두운 바다에서 방향을 잃은 채 떠다니는 배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의학적인 부분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직접 면담과 평가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질문자님의 의학적 진단을 예측하는 것이 섣부른 행동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듭니다.

질문에서의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부족한 감이 있지만, 주어진 정보에서 얻은 인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신의학적인 면에서 질문자님의 증상을 살펴보면, 학습에 대한 무관심, 주의 집중력의 부재 등에서 먼저 ADHD나 학습장애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ADHD나 학습장애는 학습 능력의 저하를 부르고, 이로 인해 학교생활에 대한 흥미를 갖지 못하여 학교 생활 자체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려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학교생활이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래서 ADHD가 심한 경우 많은 수에서 우울증이 함께 동반되기도 합니다.

무관심, 무의욕, 매사 흥미 저하, 자기 비난이 있었다는 대목에서 우울 증상이 꽤 오랜 기간 동안 질문자님의 삶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우울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삶의 모든 것에 흥미를 잃게 만들고, 의욕을 없애고,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우울증이 치료받지 못한 채로 방치된다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과 주변의 사람들을 회피하는 행동 패턴이 굳어지게 되어 일종의 성격적 특성으로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일시적인 우울감이 아닌, 말 그대로 ‘우울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것 또한 우울증이 가진 무서운 점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번 경우에도 그러한 무의욕과 매사 흥미 저하, 고통을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패턴들이 오랜 기간을 거쳐 삶에 스며들어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사진_픽사베이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보입니다.

이제라도 치료를 시작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치료를 받게 되면서 더 나아지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모두 정말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또, 자신의 삶에서 겪은 어려움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잘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모두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이거든요.

흔히 고질적인 문제나 성격적인 면을 치료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성격이라 함은 성장 과정에서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얻은 감각입니다. 즉, 오랜 기간 동안 학습한 ‘습관’일뿐이라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몸에 배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긴다면 어느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심리검사는 현 상황에서 꼭 권유하고 싶어요. 가능하면 지적 능력 평가와 주의 집중력 평가를 포함한 심리 전반을 볼 수 있는 검사를 추천해 드려요.

치료에 임하는 데 있어 자신이 문제를 잘 인지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치료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고요.

또 ADHD가 있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면 이 또한 정신과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적 능력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일부 편견처럼 IQ 검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집중력을 비롯한 여러 영역을 세밀하게 검사할 수 있어,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합니다.

 

또 하나, 약물치료는 대개 4-6주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충분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웰부트린을 비롯한 우울증 약물은 뇌세포의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하여 효과가 나타나는데, 그 기간이 대략 4-6주 정도라고 보거든요.

부작용이 크게 없다면 일정 기간은 유지하며 기다려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주치의 선생님과 꼭 의견 교환을 하시길 바랍니다.

기다리기만 하는 것보다 약물치료 외에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 주기적인 외부 활동 등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찾아 실천해 나가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