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제 문제에 대해서 용기 내어 질문드립니다.

저는 현재 2년째 약물치료 중이며, 병명은 우울증과 불안장애입니다.

제가 알기로 흔히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약물치료에 반응이 좋은 것으로 압니다. 의사들의 치료 권고 기한도 일반적으로 유지치료까지 포함하여 6개월~1년 정도로 알고 있고요.

저도 첫 진료 시 사람마다 다르지만, 길면 6개월 정도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듣기완 다르게 저를 포함하여 제 주변을 보면 6개월~1년은커녕 몇 년 이상 드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서도 계속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일까요?

저도 약을 먹어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보니 점점 아래와 같은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1. 우울증이면 1년 넘게 약을 먹었으면 좋아진다는데 왜 안 좋아지지? (증상이 반복되는지?)
2. 약물치료에 반응을 안 하는 환자인 것인지?
3. 우울증이 아닌 건지?
4. 사실 정신과 질환은 생물학적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5. 병이 이미 만성화되어 약을 먹음에도, 증상의 완화와 심화만 반복되는 것인지?

이런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몇 년을 약을 먹어도 약을 끊지 못하니 내가 아픈 게 맞긴 한 건가? 아픈 게 맞으면 약 먹고 호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떤 이는 몇 개월 약 먹고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고 왜 자꾸 반복되는 건지....

심리 검사와 의사 면담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아픈 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저의 이런 우매한 질문에 조금이나마 제 답답함을 풀 수 있는 답변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A) 안녕하세요, 예상보다 치료 기간이 길어져 염려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질문자님 뿐만 아니라, 처음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시는 분들은 투약을 얼마나 해야 할 것인가, 언제 완치될 것인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경우가 많지요. 

 

우선, 투약하는 기간이 병의 경중, 혹은 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른 외양과 성격을 가지듯 정신과 질환 또한 백이면 백, 모두 다양한 경과를 거칩니다. 투약하는 기간이 일률적으로 6개월, 혹은 1년으로 정해질 수 없는 이유이지요.

실제 정신과의 진료 지침에도 치료 기간이나 투약 중단 기간이 달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정신과 질환은 다른 신체 질환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집니다.

충분한 치료 후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할 지라도, 다른 신체 질환처럼 ‘완치’한다는 개념을 갖기보다는 ‘관리’ 해야 한다는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은 성공적인 치료 후에도 재발의 불씨가 남게 됩니다. 그 불씨를 성공적으로 잘 다스릴 수 있을지 여부는 건강한 삶의 관리에 달려있겠지요.

그러니 약물치료에 집중하여 증상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 의지하기보다 외부 활동이나 운동 시간을 늘리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재발의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우울증에서는 수면 습관을 유지하고, 낮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활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추가로 인지행동치료 등을 통해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고, 부정적인 행동 패턴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충분한 치료 이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진단을 다시 재고해 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우울증이 약물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은 경우, 많은 수는 단일 우울장애가 아닌 양극성 장애의 우울 삽화이거나, 혹은 성격장애가 동반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한 면밀한 평가는 꼭 필요합니다. 위의 경우에는 약물의 종류, 치료의 타깃과 목표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간 정기적으로 정신과를 방문하셨다면, 다음 방문 시에는 주치의 선생님과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주기적으로 체크했던 우울증상 척도의 변화를 점검하는 것도 좋고, 첫 방문 시의 증상과 현재 남아있는 증상을 비교하는 것도 좋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질문자님께서 걱정하시는 것보다 증상의 차도가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변화일지라도, 2년의 기간 동안 긍정적으로 변한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은 치료를 지속해 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자신은 오래 치료받았음에도 큰 변화가 없다며 좌절하지만, 실상은 객관적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는 자신을 객관화하여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치료 기간과 나의 현 상태에 대한 고민도 꼭 함께 공유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면의 고민을 표현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또한 치료의 일환입니다. 우울증 치료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능력, 즉 통찰(insight)을 기르는 거니까요.

만약 우울증 치료를 성공적으로 잘 마칠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잘 헤아릴 수 있는 있는 힘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질문자님께서 가졌던 고민에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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