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 스스로도 좀 당황스러운 경험을 자꾸 하게 되어서 혹시나 여기에 여쭤보려고 합니다.

자꾸 과거 부끄러웠던 경험이나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이 떠올랐거나 하면 특정 사람의 이름을 내뱉으면서 그 사람이 보고 싶다고 저도 모르게 얘기하게 됩니다.

이건 도대체 그 사람과 전혀 관계없는 터무니없는 상황이 떠오르거나 할 때도 일어나는데요, 아예 뜬금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아 OOO 보고 싶다” 이렇게 말이 튀어나와요.

이게 어떤 상황인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을 이런 식으로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그 사람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그 사람은 제가 한 때 좋아했다가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지만 그 사랑에 대한 왜곡된 인식들이 저를 대인기피증과 경미한 우울증과 강박증까지 찾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 사람 때문에 우울하거나 뭐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한 1년 전엔 오히려 그 사람과 관계가 좋아져서 지금은 매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 뇌가 특정 기억에 그 사람을 붙잡아 두고 무의식 중에 안 좋은 사람으로 그 사람을 인지하고 있을까 봐 솔직히 그 점이 가장 두렵습니다...

어떤 상황이 떠올랐을 때 그 사람이 보싶다고 말하는 빈도는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험기간이나 이런 때 들어가면 굉장히 그 빈도가 높아지고, 그 외에는 거의 부르지 않는다 할 정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혹시 이것도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사진_픽사베이

 

A) 안녕하세요, 본인 스스로도 모르게,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의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경험을 계속하고 계시군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실 것 같습니다.

저라고 해도 분명히 당혹스러운 경험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그 사람과 전혀 관계없는 상황에서도 그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온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우선 가장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다소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신 그 상황이 어떤 특정 정신과적 증상을 시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보고 싶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증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또 그런 증상 하나가 있다고 해서 어떤 정신과적 진단이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증상 하나가 있다고 해서 정신과적으로 병이 있다거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거나 하지도 않지요.

 

하지만, 질문자님 본인 스스로도 모르게 자꾸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온다는 데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이유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모든 행동에는 무의식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그러면 그 무의식이라는 게 과연 무엇이냐.

사실 그것도 조금 맥이 빠지는 것이지만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질문자님 스스로만이 알 수 있지요.

 

정신과 의사들이 무의식을 이야기하고 방어기제를 이야기하고 정신 역동을 이야기하면 마치 그 사람의 무의식과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이야기하는 것은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의견을 제시해드리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경험을 보고 들은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일반적인 케이스, 통계적인 케이스를 제시해드리는 것뿐입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일들이 있긴 합니다'라고 이야기드리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정말 각각의 사건과 상황들의 이면 깊은 곳 무의식에 어떤 것이 있을지는 사실 그 본인만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을 도와드리는 것뿐이지요.

 

사진_픽셀

 

질문자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왜 자꾸 질문자님 입에서 그 사람 이름이 튀어나오는 것일까요. 저희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질문자님 스스로가 그것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상담을 할 때에 무의식을 찾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마음중심적태도(Psychological mindness)라고 합니다. 이 태도는 '나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요.

나 자신이 무심코 하는 행동, 감정 등에 대해서 궁금증을 품고 '내 안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할까'를 궁금해할 때에 무의식으로 가는 길목이 엿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님 역시 스스로 그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시고 또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글까지 올리고 계십니다.

이러한 궁금증과 마음중심적태도만 하더라도, 질문자님께서는 분명 스스로가 가지고 계신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첫걸음을 이미 떼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궁금증과 성찰의 결과가 어쩌면 질문자님이 쓰신 "제 뇌가 특정 기억에 그 사람을 붙잡아 두고 무의식 중에 안 좋은 사람으로 그 사람을 인지하고 있을까 봐"라는 부분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자님께서 남겨주신 짧은 글로는 말씀하신 그 '특정 기억'이 어떤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들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섣부른 이야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질문자님께서 두렵다고 말씀하신 그 실마리가 질문자님 무의식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무의식을 사실 알고 있으면서 찾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나중에 그것을 드러내어 찾고 나면 사실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하지요.

마찬가지로 질문자님께서도 지금 현실적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잘 정리되었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면 다른 무언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걷어내고 질문자님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어야 질문자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체적인 답이나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게시판 답변을 통한 이야기인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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