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저는 현재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있으며, 현재 직장에서 경리 보조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다닌지는 좀 되었는데 아직도 일 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고 벅찹니다.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를 나간다고 다른 일자리에서 잘 할 자신도 없고 여기서 마무리를 잘 하고 나가야 다른 회사를 갔을 때도 자신감 있게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버티고 있습니다.

또한 실수를 많이 하는 저를 안 자르시니 감사하게 생각하며 꾸역꾸역 다니고 있습니다.

 

하도 실수를 많이 해서인지 상사분들이 저에게 신뢰가 없어지는 듯한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으며 그럴 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고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런 취급받으며 남느니 좀 더 쉬우며 단순한 직종(청소나 설거지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을 가서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죄송하다고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그런 말도 입 밖으로 내기 창피할 정도입니다.

제가 한 실수를 제가 처리하면 좋을 테지만 동료와 상사에게 피해가 가서 퇴근이 늦어지거나 한 번 일할 것을 두 번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정말 실수하지 말자고 되뇌며 일해도 실수는 꼭 생기더라고요.

 

사진_픽사베이

 

직장 동료들은 실수를 잘 하지 않지만 저만 왜 이렇게 많이 하는지 저로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도 같은 실수를 많이 하니 혹시 ADHD 아닐까 하고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았는데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으로 ADHD 자가 진단을 해보았는데 ADHD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예전에도 실수를 많이 해서 친구랑 함께 일을 했을 때는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얘기도 의사 선생님한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똑같은 얘기 하니까 또 실수 얘기냐고 하시며 웃으시는데, 저는 이런 제 상태 때문에 현실이 너무 불안정하고 미래가 안 보여서 미칠 것 같습니다.

곧 결혼도 해야 하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고요.

미래에 대한 그림이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인지 건강 염려가 심해졌어요.

요즘엔 잇몸도 안 좋은 것 같고 기억력도 너무 안 좋고 거래처들 자주 시키는 물건이나 전화번호 정도는 외워져야 할 텐데 기억이 아예 없습니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능력하셨고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계신데 저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될까 봐 무섭습니다.

자꾸 실수하니 포기하고 싶어 지고 여기 그만두면 정말 낙오자가 될 것 같아요.

아버지랑 닮았다고 얘기하는 저를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를 말씀 안 해주시니 납득이 잘 안 가서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 싫은데 자꾸 그렇게 됩니다... 

 

또한 저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요.

길거리에서 친구들끼리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나 회사에서 외국인들끼리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와 먼 사람처럼 느껴져요.

저도 다른 사람들이랑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가 그게 잘 안되네요.

아직 진정한 친구를 못 만난 거라 생각도 해봤지만 30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저랑 친구 할 사람이 없었을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나랑 오래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의사 선생님은 항상 바쁘시기도 하고 제가 빨리 병원을 가는 게 아니라서 대기 1시간 하다가 들어가면 거의 인사 정도만 나누다가 약 받고 오는 게 다라서... 2주에 한 번가는 거라 이번에는 꼭 하고 싶은 말 있음 하고 와야지 해도 잘 안 나오더라고요.

또한 제가 토요일에 진료를 가는데 그땐 주말이라 그런지 감정상태가 조금은 나아져 있어서 굳이 힘든 얘기 꺼내고 싶은 마음도 안 들고요. 

오늘도 회사에서 실수하고 퇴근길에 펑펑 울며 자살 생각하고 누가 날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지금 본인이 힘들다고 언급하신 것을 정리해보면, 실수, 우울증, 결혼, 불안정한 미래, 건강염려증, 아버지, 친구가 없음 그리고 자살에 관한 것이네요. 

굉장히 고민이 많으시네요, 고민의 종류도 많고 하루 중에 고민하는 시간도 많아 보여요.

 

정신적인 문제, 즉 우울증 같은 것이 모든 문제들의 원인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겠죠. 

말씀하신 것들 중에 주치의 선생님과의 관계를 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주에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사이지만, 주치의 선생님도 바쁘고, 본인도 바빠서 중요한 얘기는 하지 못하고, 주말에는 굳이 힘든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관계요. 

어떤 사람과 깊은 관계를 하고 싶지만 정작 마음을 터 놓을 수 없어서, 정말 중요한 얘기 대신에 다른 얘기를 하거나, 그 상황이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거나,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시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런 정황을 본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으신 것 같고, 실제로 그 사람이 질문자 분을 평가하는 것보다 더 나쁜 방향으로 스스로를 평가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부담감이 커지고 실수를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죠. 일을 잘 하려면 의사소통을 잘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면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니까요. 

잠깐 언급하셨지만, 무능한 아버지의 자녀라는 생각 자체도, 본인을 더 나쁘게 평가하는 한 가지 원인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이런 이유로 시간을 아예 정해놓고 하는 형태의 상담치료가 반드시 필요해 보여요.

30분, 45분 등 정해진 시간을 반드시 치료자와 함께 있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안 좋게 평가할 것이라는 가슴 아픈, 핵심적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 형태의 진료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질문자 분이 가슴 아픈, 핵심적인 얘기를 피하고 계세요.

결국 본인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고, 그 기간 동안 질문자 분이 힘드실 거예요. 

 

내 상처를 의사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의사는 그 상처를 치료할 수 없어요.

내 상처를 보고도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 같은 주치의를 찾으신 후에, 상처를 보여주시고, 함께 치료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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