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허허 웃는, 마냥 살가운 사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언제나 한걸음에 달려와 도움을 줄 것 같은 그의 너그러움에 나 그리고 우리는 깊이 감명받는다. 때로는 커피 한 잔을 건네기도 하고, 무심한 척 던지는 친교의 한 마디 언어가 나와 그 사이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개체와 개체 사이의 정서적 연결 그 이상이다.

거기엔 그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 안에 머물러 있게 하는 특별한 계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라는 존재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고, 그래서 믿음이 가는 그런 종류의, 매우 유별되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쉽게 말해, 그의 모든 지인들이 한결같이 말하듯 그는 '좋은 사람'이다. '좋은 성질'의 그는 좋은 말을 하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 자기를 비하하는 제스처도 마다 않는다. 남을 위해 헌신하지만 즐거운 듯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그 이면을 보고자 한다. 왜냐. 삶은 언제나 정론대로 움직이지 않고, 일반론 속에 예외와 특수를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는 외현으로 드러나는 ‘좋은’ 행동과 성격양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타인에 의해 ‘좋은’ 형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즉 타인의 관점에서 규정되는 ‘좋은’ 특질이 있다면, 그 대극으로서 내부로부터 일어나고 정의되는 ‘어떤 다른’ 특질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프로이트는 주창하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욕동이고, 그 욕동은 성적인 것과 공격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어느 것 하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이론이 너무 극단적이라면 인간 성질의 원류를 논하는 또 다른 이론을 보자.

자기 심리학에서는 ‘자기’가 존재하고 존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다른 어떤 사회적 관계 모두가 자기라는 관점에서는 자기를 존속시키기 위한 중요한 원천이라고 했다. 원색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러한 다양한 관계가 나라는 사람을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 외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종설하고 요약하자면, 인간 내부의 특질은 ‘마냥 좋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대인 관계는 ‘마냥 이타주의적으로 흘러가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좋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보기에 껄끄러운 면이 그래서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자기 존속에 위배되고, 내부의 특질에 반하는, 외현으로 드러나는 ‘좋은 사람’. 그것도 언제나 일관성 있게, 그리고 보편적인 인정을 다수의 타인에게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탐색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원색적으로 표현하자면, ‘좋은 사람’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외현의 가치를 중시하던-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던-그 사람이 가장 궁극의 순간에, 가장 위급한 순간에 내부의 욕동과 자기 존속의 본래 목적에 압도당하게 되면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나쁜 사람’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차병원 교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조교수
한양대학교 뇌유전체의학(자폐) 석사
KAIST 뇌유전체의학(자폐, 조현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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