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음... 예전에도 증상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살아왔는데요, 커가면서 증상이 더 심해지고 없던 증상도 생겨나고 그러네요.

더 큰 세상에 이제 막 발을 내딛는 나이인데 나만 사춘기 어린애처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가 부끄럽네요... 그럼 일단 이 ‘증상’들이 뭔지 알려드릴게요.

 

1.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도 그렇고 여러 번 본 꽤나 익숙한 친구들을 만날 때조차 뭔가 긴장됩니다. 그러고는 좀 어색하고 이상하게 말과 행동을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굴 만나든 항상 어색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무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소외됩니다.

“내 말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화내면 어쩌지” “이런 말을 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고 분위기가 어색해질 거야”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돕니다.

이게 단지 생각뿐이면 오죽 좋겠습니까. 문제는 이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름 생각하고 어울린다고 얘기하면 항상 어색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도 합니다. 관계를 대하는 법 자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와도 진실되게 친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제가 마음먹고 다가가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어색해지기만 하더군요.

이제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무섭습니다. 자연스럽게 친해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2. 사람 자체가 무섭습니다. 나 때문에 화내거나 삐치거나 욱하거나 실망하거나 이런 게 너무 무섭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여자 중학생이 잘못한 일이라서 내가 따져야 하는데 화낼까 봐 무서워서 그냥 손해를 입을 정도로 극심합니다. 제가 남자여서 체격이 훨씬 좋고 막말로 한판 붙으면 이길게 뻔한데도 무섭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생이 나한테 화를 낸다고 해도 무서울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낸다고 생각하면 왜 이리 무서운지 모르겠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명치가 싸해지며 머리다 하얘지고 손발에 힘이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얘기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내가 얘기를 잘못하면 저 사람이 화내는데 난 그게 너무 두려우니깐요. 그래서 약간 그 사람에게 맞춰주게 됩니다.

 

3. 위의 2번 증상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두렵습니다.

나가도 사람들 눈을 쳐다보기도 좀 무섭고 가는 길이 겹쳐서 어깨를 부딪힐 만한 상황이 되면 항상 제가 굽힙니다.

시선 처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가면 항상 긴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행동이 부자연스럽습니다.

 

4.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기대를 저버리는 것처럼 느껴져 어렵습니다. 항상 뭔가 끌려다니는 느낌입니다. 

 

5. 제 진실된 감정과 생각을 모르겠습니다. 말할 때나 행동할 때 항상 진실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감정 자체도 요즘 들어 좀 무뎌지게 느껴집니다. 갑자기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할 때도 있습니다. 부끄러운 기억 떠오를 때마다 죽고 싶기도 하고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6.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지, 손발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사고력, 지능도 많이 떨어진 것 같고 집중도 잘 안됩니다. 가슴 부분 또한 항상 답답하고 조여있습니다.

 

7. 아르바이트하는 거나 뭔가 자격증 따고, 헬스장 가고 돈을 주고 이것을 구입하고 이런 것이 두렵습니다.

제가 반수를 하는데, 혼자 수능 신청하고 증명사진 찍으러 가고 시험 치러 가는 게 두려워서 반수를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반수를 하면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할 텐데 그것도 큰 걱정입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이 공포입니다.

 

8. 기운도 없고 자고만 싶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계획은 세워놓고 절대 안 합니다.

살은 쪄가고 얼굴은 못생겼고... 친구도 없고 뭔가 해놓은 것도 이 하루하루 두려움에 빠져 공허하게 살고 있습니다.

한 번씩은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아 미칠 것 같습니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사연 자세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8가지로 상세하게 나누어서 설명해주셨지만, 어느 정도씩은 다 같이 비슷한 어려움을 포함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두려움이나 불안함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힘든지에 대해 설명해주신 것을 보니 질문자님께서 이 문제로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을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어오셨을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질문자님의 일상생활 전반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분노나 거절이 두렵고,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점점 일상적인 바깥 생활까지 하기 어려워지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커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공허한 우울증 증상과, 답답하고 가슴이 조이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불안 증상까지 겹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글만 보고 제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듯 이야기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님의 이러한 두려움들을 만들어내는 깊은 뿌리 가운데에 “사람들을 나를 싫어할 거야” “나는 적합하지 않아” “나는 소외될 거야”라는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회에서 도태되고 버려지고 말 거라는 믿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불편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질문자님의 필사적인 마음이 매번 견디기 힘든 두려움과 불안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자꾸 드는 이유는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할 거야’라는 무의식적인 믿음 때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부탁들을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나를 죽이고 상대방을 위해 맞추지 않으면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내가 도태될 거야’하는 믿음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실제로 누군가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할 때에는 그 벗어나고 싶은 두려움이 진짜로 실현된 것 같은 패닉에 빠지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혹은 상대방이 진짜로 화를 낼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고 말입니다.

 

마음에 대한 여러 가지 치료 이론들 가운데 인지도식치료(스키마 치료)에서는 [인생의 덫]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무의식적인 믿음이 마치 ‘덫’처럼 내 인생을 옭아맨다는 것이지요.

덫에 걸린 사슴이 덫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덫의 이빨은 사슴의 다리를 더욱 깊숙이 파고듭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그 덫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그 발버둥 때문에 오히려 덫에 더욱 말려들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질문자님께서 가지고 계실 수 있다는 그 ‘믿음’ 역시 어쩌면 질문자님의 인생을 통째로 옭아매고 있는 인생의 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님께서는 ‘내가 결국 소외될 거야’라는 덫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런 늘 불안해하고, 소외되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실제로는 정작 더 심한 우울과 불안을 향해서만 가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인즉슨, 질문자님께서 사회생활에서 소외당할까 봐 전전긍긍해하는 과도한 불안 그 자체가 오히려 질문자님을 인간관계에서 더욱 소외시키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를 위축시키고, 사소한 자극에도 우리를 얼어붙게 합니다.

이런 위축은 결국 보통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에 적합하지 않은 언행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지요.

그러면 그런 부적절한 언행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 시선을 보고 ‘역시 나는 이상하구나’하는 생각에 더더욱 위축되게 됩니다. 그러면 더더욱 어색한 언행들이 튀어나오게 되지요.

그런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결국 ‘나는 소외될 거야’라는 마음속 깊은 믿음이 진짜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님께서 그런 덫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질문자님이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원인의 100%가 질문자님 스스로에게 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질문자님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덫이 질문자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된 원인은 질문자님에게 그런 두려움을 심어준 과거의 무언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소외받고 버림받고 놀림받았던 기억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결국 강력한 믿음으로 이어지기까지 질문자님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야기해주시지 않은 부분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 과거가 나에게 심어준 이 고통스러운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대로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덫을 털어내려 몸부림치기만 해서는 덫에 더욱 깊이 물리게 될 뿐이니까요.

물론 그 제대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질문 답변글 한두 마디로 해결드릴 수 있는 단순한 문제 또한 아닙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러나 한 가지 드릴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질문자님을 사회에서 소외시킨다고 믿고 있는 질문자님 스스로의 단점과 결점들을 좀 더 분명하게 목록화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질문자님 스스로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들, 즉 질문자님의 장점과 강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목록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꼼꼼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눈치챌 수 있다’ ‘나는 배려심이 있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킨다’와 같은 것 들일 수도 있겠고요.

어쨌든 그런 강점과 약점, 단점과 장점의 목록들을 A4 용지를 펴고 양쪽에 주욱 적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 어떤 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의 단점이고 어떤 것이 내가 개선시켜야 할 단점인지, 어떤 것이 내가 좀 더 부각하여야 할 장점인지를 다시 분류해보는 것입니다.

 

‘나는 부적절해’라는 덫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단점들은 줄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데 장점은 잘 살펴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단점 가운데 어떤 것이 내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할 것인지, 어떤 것이 내가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분명히 구분해내는 것이 사실은 덫에 걸린 발목에서 날카로운 덫의 이빨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뽑아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는 덫에 걸린 마음이 두려움에 휩싸여서 혀가 얼어붙고, 몸이 돌처럼 굳어버릴 때에 나 스스로에게 외워줄 수 있는 주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불안하다. 나는 이 불안이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거나 나에게 화를 내거나 나를 소외시킬 거라는 나의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건 단지 나의 덫일 뿐이다. 막상 실제로는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래도 ~~~ 같은 장점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 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해할 수 있다. 누구나 모두에게 좋은 인상만 받지는 못할 수도 있다. 나도 긴장을 풀고 시작해볼 수 있다”

이런 주문을 말이지요.

인지도식치료에서는 이런 주문을 쓴 카드를 들고 다닐 것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줄 플래시 카드라고 하지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외받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 수 있고 호통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순간들을 딛고 다른 관계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덫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그 첫 단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지금 겪고 계시다고 말씀하실 정도의 수준이라면 어쩌면 병원을 찾아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도움을 받아보시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우울증과 불안장애까지 추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약물의 도움을 받아 그런 무기력감, 공허감, 공황을 떨쳐내야지만 마음속 깊은 그런 믿음에서 벗어날 힘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모쪼록 질문자님께서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내딛을 발걸음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용기가 깃들 수 있으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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