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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의 사랑에도, 부모자녀간의 사랑에도 약간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기사승인 2018.08.18  01: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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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상대방에게 이끌려 열렬히 좋아하거나 애착을 느끼는 감정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사랑에는 좋아함(like), 애착(attachment)의 감정이 수반되어 있다고 한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연상시킨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를 생각해 보면, 부부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문득 떠올리게 되면 편안하고 의지가 되는 관계들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이미지가 구속감과 답답함, 막막함과 같은 상반된 느낌일 수 있다. 이는 왜곡된 관계에서 보이는 이기적인 집착과 욕심으로 인한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을 망가뜨리고, 결국은 관계가 끝나게 만들어버린다.

 

사진_픽셀

 

♦ 사랑을 ‘소유하려는’ 욕심 : 나르시시즘 (narcissism)

위에서 이야기 한 관계들이, 처음부터 왜곡된 상태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이를 처음 만났을 때, 감정이 깊게 얽히기 전 상대의 마음에 다가가는 과정은 대개 조심스럽다. 하지만, 관계가 깊게 얽혀감에 따라, 무게의 추가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두 사람이 동일하게 관계에 감정의 에너지를 투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계에서 불균형이 일어나는 것은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대부분은 이러한 과정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면서 건강하게 극복해나간다.

하지만 관계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진 이라면, 이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실망과 질투, 섭섭함과 불만 등의 여러 감정이 뒤섞여 복잡미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느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소되기는커녕, 점차 마음 전체를 뒤덮어버리게 되어, 상대에 대한 미숙한 행동화(acting-out)로 나타나게 된다.

이들은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상대를 자신의 통제 안에만 두려 한다. 상대의 행동, 생각, 감정들마저 자신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두려는 이기심을 보인다. 관계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상호호혜적인 관계가 아닌, 한쪽이 소유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숨겨진 ‘나르시시즘(narcissism)’인 것이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의 진면목이 그러하듯이, 관계 곳곳에서 미숙함에 드러난다. 이러한 두려움에 마치 관계 자체를 자신이 삼켜버려, 자신과 동일화시키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드러나게 되는데, 바로 내사(introjection)라는 방어기제이다.

게슈탈트 치료를 주창한 심리학자 Perls의 말을 빌리자면, “목에 걸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씹지도 않고 다 넘겨버리지만, 결국 소화는 되지 않은 상태” 를 야기한다. 즉, 성급하게 관계를 소유하고 가지려는 욕심은, 결국 관계를 성숙하게 하지도, 안정적으로 끌고 가지도 못하게 한다.

 

사진_픽셀

 

♦ ‘삼켜진’ 관계의 파국적인 결말

허겁지겁 급하게 삼켜진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한쪽이 소유하고, 통제하면서도 ‘일방통행’의 관계는 상대방이 지쳐가면서 결국 파국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계를 맺었던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게 된다. 사랑했던 마음이 큰 만큼, 상처는 더욱 깊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우리의 삶에서 무게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진 관계의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이 부모-자식 간의 관계이다. 사랑스러운 아이는, 성장하면서 점차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자신만의 공간을 요구하는 등 독립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점차 전적인 보살핌을 주기만 하면 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서로 의견과 감정을 주고 받으며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양방향의 관계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과정에 잘 적응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잘 헤아리고 공감하지 못하거나, 과거의 일방적인 관계에서의 ‘편리함’을 생각하며 양방향의 관계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부모의 나르시시즘은 아이와의 관계를 ‘삼켜버리려는’ 이빨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 모두 상처를 받게 됨은 물론이고, 아이의 건강한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모든 영역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통제를 받은 아이는 ‘헬리콥터 맘’의 비호 아래 외부의 사소한 변수에도 흔들리고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부모와 융합(enmeshment)되어 자신의 정체감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혹은, 부모의 통제에 극단적인 반발심으로 그 나잇대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훈육과 규율 자체를 거부하고, 행동적인 문제들을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사진_픽셀

 

♦ 사랑하는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슴 두근거리는 첫 만남 이후 감정이 얽혀들어 가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물론, 당사자는 변명할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 혹은 ‘세상에 누가 너에게 이만큼 사랑을 쏟겠어?’ 라는 식으로.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고무공 두 개를 나란히 세워 놓고, 한쪽으로 강하게 압력을 주면 다른 한쪽도 보기 싫게 찌그러진다. 따라서 적당히, 보기 좋게 그리고 균형잡힌 모습을 위해서는 두 공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유지케 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 도파민 등은 채 몇 년이 유지되지 못한다. 처음에 느낀 사랑의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호르몬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고, 약간의 간섭이나 집착도 그저 사랑의 표현으로 용인했던 눈에 씐 ‘콩깍지’가 걷어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관계의 온건하고도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관계의 적당한 거리감을 찾기 위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owers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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