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우리는 자주 불안을 느낀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 내가 산 주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할 때, 남자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을 때, 불안을 느끼곤 한다. 위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불안을 느껴보지 않은 이는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다. 

불안은 우리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먼저, 마음 안에 불안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주변 모든 것들에 예민해진다. 평소 그냥 지나치던 것들에도 경계를 하게 되고, 가볍게 건넨 친구의 말에 쉽게 화가 난다.

행동도 변한다.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되거나,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 업무나 학습 효율이 곤두박질친다. 과도한 긴장으로 평소보다 위축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몸도 함께 불편해진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온몸이 경직되거나, 가슴에 뭔가 눌러놓은 것처럼 답답한 느낌, 숨이 막히는 느낌 등이 수시로 나타난다. 심한 불안의 형태를 '공황'이라 부르는데, 이 때는 이러다 심장이 멎는 것은 아닐까 염려될 정도로 심한 심계항진도 나타난다. 

이처럼, 불안이라는 감정은 생각, 행동, 신체 감각의 변화도 함께 일으킨다. 그래고 대부분은 부정적인 변화에 가깝다. 그러니, 불안을 자주 경험하는 이들에게 불안이란 여간 불편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불안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서는 그 기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 이야기로 잠깐 들어가, 뜬금없지만 원시시대 우리 인류의 조상이 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선사시대의 인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약한 동물들을 사냥하며 살았다. 지금처럼 우리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옷이나, 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환경변화나 외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 원시인 부족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평화로운 시간을 가지던 어느 날, 채집을 위해 들판을 걸어가던 도중 저 멀리서 커다란 그림자를 만난다. 저것이 바위인지, 약한 동물인지, 아니면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무서운 짐승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다. 

여기에 반응하는 원시인은 두 분류로 나뉜다. 한쪽을 용감한 원시인 A라 하자. 용감한 원시인 A는 저 그림자가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갈 것이고, 만약 부족을 위협할 수 있는 동물이라면 맞서 싸울 생각을 한다. 또 다른 쪽은 겁쟁이 원시인 B다. 원시인 B는 저 멀리 그림자만 보여도 깜짝 놀라 바위나 나무 뒤에 숨을 죽이고 숨으려 한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숨어 있다, 그림자가 가까이 오면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언제라도 도망갈 생각도 가진다.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은 선호하는가? 당연히, 두 원시인 중 용감한 원시인이 더 멋지다. 분명 인기도 좋아서 부족에서 리더 역할을 하며, 그간 부족을 이끌고 온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자. 나중에 결국 살아남는 원시인은 과연 누구일까? 

용감한 원시인 A는 자신감을 가지고 들짐승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지만, 그만큼 부상의 위험이 더 크다. 원시시대에는 이렇다 할 치료방법이 없었을 테니, 세상을 먼저 뜰 가능성도 훨씬 높을 것이다. 용기가 장수를 보장하지는 않으니까.

겁쟁이 원시인 B는, 보기에는 좀 부끄러울 수 있다. 작은 그림자만 봐도 식은땀을 흘리며 저 멀리로 도망치는 모습이 그리 멋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험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닌 결과,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은 훨씬 높을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 그런 의미에서 겁쟁이 원시인 B가 진정한 위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과정을 거쳐, 오래오래 살아남아 후손에게 유전자를 물려주는 이는 겁쟁이인 B 쪽이다. 결국, 우리는 겁쟁이 원시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확률이 더 높다. 그리고, 유전자 안에는 위험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태도가 저장돼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겁쟁이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겁쟁이 원시인이 미지의 그림자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것이 바로 불안이다. 인간이 위험 신호를 감지하게 되면 예민해지고, 긴장하고,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흐르는 증상들이 모두 불안에 의한 반응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조상은 우리에게 불안을 물려준 셈이 된다. 실제로, 예민하고 자주 불안을 경험하는 성격에서 세로토닌 수용체의 공통적 변이가 관찰된다는 생물학적 근거도 존재한다. 

 

사진_픽사베이

 

♦ 불안, 위험을 알리는 사인(sign)

그렇다면, 불안이 정말 우리에게 불편한 것일까?

불안은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킨다. 위험을 인식하면 불안이 생겨나고, 그 즉시 도망 혹은 싸움을 할 수 있도록 체내의 방어 시스템(자율신경계)이 작동한다. 마치 자동차가 급가속을 하듯, 신체 기관들을 신속하게 움직여 비축한 에너지를 생성하고, 평소보다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불안할 때 느끼는 생각, 행동, 신체의 변화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몸의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불안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다. 즉,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감정이다. 불안이 없었다면, 용감한 원시인 A처럼 위험 신호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위험에 노출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가 다가오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길을 건너면 어떻게 될까? 아마,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적어도, 무단횡단 벌금이라도 내게 되지 않을까. 

불안은 우리에게 ‘조심하라’는 빨간 신호등과 같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잠시 멈추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마찬가지로, 불안은 잠시 불편한 생각, 행동, 신체 감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위험에 잘 대처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시간이다. 용감한 원시인 A와 겁쟁이 원시인 B의 차이는, 자신 안의 불안을 얼마나 잘 알아차렸나 하는 차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겁쟁이'라는 말을 좀 더 순화시킨다면, '자신의 마음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사람'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결국 불안은 불편하지만, 우리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불안이 나타날 때 ‘긴장돼서 너무 불편해’라고 하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나에게 조심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구나’라고 받아들여 보자.  불안 덕분에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잘 돌아보고, 건강하고 현명하게 잘 대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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