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남편이 우울해합니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일상을 잘 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그 기분에서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평생 그냥 이렇게 살면 될 것 같다고 하며 우울해합니다. 매일 그런 건 아니고 기복이 있긴 합니다. 가끔 우울이 심해질 땐 자살생각도 합니다. 

몇 달 전에 제가 우울증이 의심된다고 하며 병원을 가보자고 할 땐 극도로 거부하며 더 우울해했고 상담을 같이 가보자고 해도 싫어합니다. 

최근엔 스스로도 우울증인 것 같다고 말했지만 제가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해도 그냥 그렇게 살고 싶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A) 안녕하세요. 남편분의 우울함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군요. 남편분을 향한 질문자님의 걱정과 사랑이 짧은 질문글에서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또 저도 함께 걱정이 되네요.

우선 첫째로 전제해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어떤 치료를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남편분께서 정말 우울증을 앓고 계신지 저로서는 짧은 글로 절대 알 수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치료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억지로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울증의 핵심 증상 가운데 하나가 심한 무기력감과 무의욕증이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우울증에 대한 치료 의지와 의욕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울증이라는 병 자체가 자신의 치료를 거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사실이 치료를 거부하면서 점점 병이 심해지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많은 환자분들과 환자분들의 가족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슬픈 사실입니다. 우울감과 무기력감으로 괴로워하는 가족을 보며 다 같이 안타까워하고 함께 괴로워하게 되지요.
 

사진_픽셀


질문자님의 고충이 얼마나 크실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질문자님께 가장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질문자님이 남편의 병을 직접 뚝딱뚝딱 고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편의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질문자님이 남편분을 들쳐업고 끌고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것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슴 아픈 사실을 받아들여야만이 남편분의 아픔을 질문자님이 진정으로 공감하고 이해해드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남편의 아내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 말이지요.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드는 생각들, '왜 병원을 가자는데 안 가지?' '치료만 받으면 좋아진다는데 왜 안 받는 거지?' '낫고 싶지가 않은 건가?' '옆에서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는 건가?' 같은 생각들은 질문자님을 더욱 힘들게만 할 것입니다. 남편의 우울감과 고통이 옆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함께 느껴지는 이 상황을 분노와 답답함으로 풀어내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조금 더 건강한 질문자님께서 좀 더 따뜻하고 성숙하게 소화해내주실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남편분께서 힘들어하고 계심이 질문에서 충분히 느껴지지만 그래도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상을 잘 살고 계신다고 표현해주셨습니다. 이 부분만 본다 하더라도 그래도 남편분께서 아주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함에도 일상을 견뎌내는 남편분의 노력과 희생이 얼마나 크실지에 대한 공감도 더듬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들입니다. 남편이 그래도 아직 견뎌내고 있는 부분,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을 질문자님께서 사랑하는 가족의 눈으로 짚어내고 격려해주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지금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한 지적보다는 공감과 이해를, 그리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버텨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격려와 칭찬을 말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겠지요. 우울감이란 정말 늪과 같아서 거기서 나오기 위해 애를 쓸수록 더 깊이 빠지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들,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조금씩 빠져나오기 힘든 우울의 늪에서 살짝씩 떠오르는 느낌을 찾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의 일상에 좀 더 집중하고 감사하는 기회, 그러기 위한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내주실 수 있기를 응원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일상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우울감과 무기력감, 부정적 사고가 전에 없이 최근에 생겼다고 한다면 상담과 약물의 효과를 무척 기대해볼 만한 상황이긴 합니다. 약간의 약물치료로도 아주 확 달라지기를 기대해봄직도 하지요. 그렇지만 본인 스스로가 그 필요를 찾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직은 선택의 대상이 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절대 방법이 없음 또한 아닐 것입니다. 모쪼록 질문자님과 남편분의 쾌유와 행복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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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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