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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를 위한 모래주머니” - 조현병 청년 회복수기 당선작 시리즈

기사승인 2018.08.27  0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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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3년 8월 처음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현재도 치료를 지속하고 있는 환자입니다. 여전히 때때로 우울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피해의식이 있기도 하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공부를 다시 해서 대학에 입학도 했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어 지금은 간단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고등학교, 재수 시절에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죽을 것같이 살기 싫었고 내가 왜 태어났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인 2013년이었습니다. 외계인이 나를 조종하고 영화 매트릭스나 트루먼 쇼처럼 모든 현실이 가상이거나 조작되었다는 망상과 환청들이 나를 괴롭혔고 특히 아파트 주민 모두가 나를 비웃고 죽어라 저주하고 조롱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망상이 계속되었습니다. 

머리를 다듬을 생각에 미용실에 가면서도 지나치는 사람들에 대한 온갖 피해의식과 죄의식으로 힘들었고, 미용실 거울에 비친 깎지 않은 수염과 산발한 듯 지저분한 머리, 여드름 투성이의 씻지도 않은 제 모습을 보면서는 더욱더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외모보다 비참한 것은 제 정신이었습니다. 남이 웃으면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뭔가 얘기하면 나를 험담하는 것 같았고 눈이 마주치면 나를 좋지 않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뭐든지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 자신도 놀랍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우울증은 비교적 흔한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아직도 정신질환은 타 신체적 질환과는 달리 사회적인 차별이 많은 편입니다. 저는 조현병으로 1년 이상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군대를 면제받았습니다. 군대 면제에 대해 열에 아홉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또 어떤 이는 직접 이유를 묻기도 합니다. 저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는 왜 군대를 안 가냐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겠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차별받는 것이 두려워서 사고를 당해 많이 다쳤었다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사고로 다친 것은 사실이지만 면제의 사유는 아닙니다. 면제는 조현병 때문에 받은 것이지요. 그래도 지금은 용기를 내서 가까운 친구나 지인에게는 우울증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우울증은 어느 정도 사회에서 용인되는 정신병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나도 우울했던 적이 있다며 납득하고 이해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여전히 정신병 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부딪히게 되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려면 정신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즉, 자기가 자신에게 갖고 있는 편견부터 극복해야 합니다.
 

사진_픽셀


최근 기억력이 나빠져서 일을 자꾸 놓치면서 상사에게 혼날 때도 있지만 지나치게 자책하고 무기력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게 되니 상대방도 나를 나약하게만 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정신적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있습니다. 정신병에 걸렸다고 이제 내 인생 끝났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들에게 나의 상황을 얘기하고 병원에 가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고 혼자서라도 병원에 갔습니다. 취업, 결혼, 군대 등 많은 생각이 오가고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갔습니다. 모든 병이 다 그렇듯이 키우면 더 고치기 어려워지고 나중에 치료하려고 하면 취업은 취업대로 안 되고 병은 더 심해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정신적으로는 괴로웠지만 위축되거나 나약한 마음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치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의사와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약도 꼬박꼬박 먹었습니다. 그러다 증상이 호전되면서 조심스럽게 배달 음식점에 전화도 걸어보고 편의점도 가보고 친구도 만났습니다. 정신병은 단기간에 호전되지 않는 만큼 환자가 길게 보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든 순간에도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반인과 정신과 환자의 차이는 식량을 저장해 놓았냐 아니냐의 차이 같습니다. 일반인은 선천적, 후천적으로 정신적 식량을 비축해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까지 놀아도, 누군가 정신적으로 힘들게 해도 그것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거나 받아도 털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 무방비상태였습니다. 

누군가 지나가며 별 뜻 없이 휙 던진 말도 비수로 꽂히고 아침에는 일어나면서 침대에 다시 눕고 싶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정말 눈 뜨고 있을 체력도 없다 보니 그냥 살아있는 시체처럼 숨만 쉬고 있는 상태까지 이르기도 했는데 저처럼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로 낮 병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매주 금요일 체육 시간이 있었습니다. 체력소모가 크지 않은 요가나 스트레칭 동작이었지만 워낙 체력이 약하다 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그날은 쓸데없는 생각도 덜 하게 되고 기분도 상쾌했습니다. 맨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운동을 하니 좋았고, 그렇게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도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하고 싫어했지만 그럴수록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낮에 바깥에서 걷기라도 활발히 하면 많은 것들이 도움이 됩니다. 증상이 심했던 때에는 오후 1~2시에 깨서 밥 먹고 다시 자고, 밤 11~12시가 돼서 다시 깨고, 새벽 4~5시에 자고, 이런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생활패턴을 몇 년 동안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더 많이 노력했습니다. 억지로라도 부모님께 깨워달라고 말했고 멍하게 앉아 있다가도 애써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때는 힘들고 무의미하고 끝이 안 보이는 짓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억지로라도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살을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나는 살 가치가 없어’라고 실제로 마음속 깊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해. 학교 수업도 들을 수 없고 가족이나 남들에게 피해만 주고 세상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존재야.’라는 생각이 뿌리 깊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역사가 깊기 때문에 한 순간에 마음을 바꿔먹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아직 이 같은 마음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보다는 부정적인 마인드만 갖지 말자 이런 식으로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정신병을 못 고치는 죽을병이고, 그리고 이 병에 대해 100% 확신하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피해의식을 예로 들면, ‘저 사람은 내가 저 사람 눈을 보면 나를 싫어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완전히 저 사람은 무조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여기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특유의 문화 ‘눈치’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 눈치라는 것은 맞을 확률보다 틀릴 확률이 더 높습니다. 특히 정신과 환자의 눈치는 더 그렇습니다.
 

사진_픽셀


정신과 환우에게 병이란 체육선수가 찬 모래주머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하나의 체육훈련이고 내가 모래주머니를 찬 이상 훈련이 더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힘들다고 훈련을 포기해버리면 본인의 기록은 나아질 수 없습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어도 훈련은 견뎌야 합니다. 저는 마음에도 근육이 붙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꾸 걷다 보면 어느새 훈련이 할 만하다고 생각이 들 것이고 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어도 뛸 수 있다면, 그때 모래주머니를 벗는다면 날아갈 듯 한 기분으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인생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병이 완화되어 약도 용량이 줄고, 친구도 한 명 한 명 새롭게 사귀고, 일상이 좀 더 편안해지고, 돈도 버는 이런 게 저의 소소한 행복이자 삶의 재미입니다. 

요즘 수영을 다시 시작했는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저는 자유형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수영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하려 해도 계속 물만 먹고 제자리에서 발버둥 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영에 대한 생각을 접고 몇 달 보낸 후에 다시 수영하자고 마음먹었을 때도 자유형이 안 됐기 때문에 더욱 상심이 컸습니다. 저는 편히 마음먹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냥 너무 거기에 집착하고 몰두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꾸준히 노력하되, 지금 당장 안 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편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숨이 쉬어지고 자세가 잡히고 지금은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신병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꾸준히 노력하되, 금방 낫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너무 자책하고 원망하지 말자. 그러면 어느 순간 훨씬 나아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결국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내가 어떤 마음자세로 병을 대하는지에 따라 병은 내 인생에 장애일 수도 또는 장애가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김민아 기자 minah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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