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이상하죠. 친구들에게 그렇지는 않은데, 유독 남자 친구에겐 엄격하게 돼요. 제가 남자 친구에게 ‘나는 이런 것들이 싫어.’라고 얘기를 했는데, 남자 친구가 제가 싫어했던 것을 다시 해버리면, 그러려니 하고 쉽게 넘어갈 수가 없어요. 꼭 왜 그랬는지 따지게 되고,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만 넘어가게 돼요.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 있을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냥 ‘실수겠지’하면서 넘어가거든요.

이런 얘기를 엄마한테 하니깐, 엄마는 남자 친구한테 너무 엄격하게 하지 말고 넘어가기도 하라고 하세요. 저도 수긍이 가긴 하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안 돼요. 제가 좋아하는 제게 맞는 사람으로 자꾸 바꾸려고 하는 걸까요?

 

A)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누군가에게 엄격한 것은, 어떻게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사람이 태어난 시점부터 얘기를 풀어나가 볼게요. 사람은 태어난 이후에 부모님과, 특히 어머니와 한 몸처럼 지내던 시절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내가 울면 입에서 젖이 생기고, 기저귀가 새 것이 된다고 알고 있을 정도로 어머니를 한 몸으로 착각하고 있죠. 하지만 조금 더 성장하면, 어머니와 자기 자신이 신체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좀 더 성장해서는 어머니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춘기가 오게 되면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져서 어머니를 밀어내게 됩니다. 이렇게 어머니에게서, 또 부모에게서 서서히 분리되어 성인이 되어가죠.

명확한 경계가 있는 신체와 달리, 정신은 경계가 없기 때문에 깨끗하게 부모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지점토를 양손에 잡고 찢어내면 칼로 자른 것처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경계면이 움푹 들어간 곳도, 툭 튀어나온 곳도 생기게 되죠. 정신이 분리되는 것은, 이것과 비슷합니다.

사진_픽셀


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계면이 서로 잘 맞겠죠. 원래 하나였다가 분리된 것이니까, 요철이 퍼즐처럼 잘 맞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날 때는 이런 경계면이 맞지 않아 서로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각자의 삶에서 얻어진 복잡한 경계면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족을 만날 때 보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보통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의 경계면 중 어느 부분이 툭 튀어나와있는지, 움푹 들어가 있는지를 파악하면서 그런 부분을 서로 피하거나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처음보다는 불편감이 사라지고,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가까운 사이가 되죠.

애인 사이는 친구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죠. 친구 사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건드릴 수 없는 깊은 곳에 있는 요철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충돌이 더 잦기도 하지만, 친구 사이처럼 거리를 두는 게 쉽지 않아요. 애인 사이에서 거리를 두는 것은 헤어짐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그래서 애인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는, 친구사이보다 더 고통스럽기 마련입니다. 연애 초반은 서서히 더 가까워지는 사이기 때문에 보통 문제가 없다가, 서로의 깊은 곳에 있는 요철을 건드리는 거리로 가까워져서야 싸움이 생기곤 하죠. 결혼을 하면 허니문 기간 이후에는 격렬하게 싸우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갈등을 겪다 보면, 서로의 요철이 점점 변형이 되기 시작합니다. 요철이 사라져 반듯해지기보다는, 서로에 맞게 일그러지는 거죠. 이 과정을 급하게, 또는 나는 변하지 않고 상대방만 변화시키려고 하면 갈등이 커지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정상인데 애인이 나를 바꾸려고 한다면, 화가 날 거고, 그 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표출되겠죠.

 

사실 지금의 글로서는 애인 분이 어떤 부분을 자극할 때 견딜 수 없는지를 알 수 없어 더 깊은 얘기를 하기는 어렵네요. 어떤 부분을 자극할 때, 왜 견딜 수 없는지를 고민하신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애인이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나를 떠날 것이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인지, 또는 애인이 나에게 딱 맞지 않기 때문에 떠날까 봐 두려워 애인을 다그쳐서 실제로 떠나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애인을 믿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본인 사랑의 특이한 형태인지, 등 가설은 다양합니다. 그러니 본인과 남자 친구에게 맞는 가설을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누구도 절대적인 정상은 아닙니다. 모두 조금씩 일그러진 부분이 있죠. 그 부분들을 서로에게 맞게 조금씩, 오랜 시간 바꿔가는 것이 사랑의 한 모습입니다. 저와 함께한 고민이 질문자 분의 사랑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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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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