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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기사승인 2018.09.01  08: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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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우리는 아직 우리 자신을 모릅니다.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무의식-전의식-의식의 구조 사이사이에 어떤 기억과 감정들이 숨어있는지 여전히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함부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건 하나하나마다에 의미를 부여하며, 당신을 마음대로 정체화(identifiability) 하지 말아요. 어떤 외부의 기대에도 부응하려 하지 말아요. 당신은 당신이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하루 세 끼의 밥을 챙겨 먹고, 하나 정도의 취미를 가지고, 일과 사람을 심플하게 사랑하는 정도의 노력을 하면 그뿐입니다. 완벽할 의무가 없는데 부러지기 직전까지 완고하게 버티지 말고, 휘둘릴 의무가 없는데 그런 역할을 꿋꿋이 해내지 말아요.

우울, 불안, 내향성, 완벽주의, 의존성, 억울감, 성취 수준, 죄책감, 대인관계의 폭 등이 당신을 정체화하는데 전적으로 기여하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심리적 질환 그 자체는 당신이 실패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존재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당신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폐렴에 혹은 암에 걸렸다고 해서 당신이 실패자인 것도, 사랑받지 못할 존재인 것도, 가치가 없다는 것도 아니듯. 그저 적절한 치료를 받을 때입니다. 잠시 쉬어가야 할 때이죠.

 

그러나 어느 순간 당신을 잠식한 우울과 불안은 당신에게 딱 그렇게 말합니다.

- 당신은 실패자이며,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며, 가치가 없다.

혐오스러운 목소리는 차츰 더 커지고 다채로워집니다. 여러 변주를 해가며 당신을 무력감과 무망감에 깊숙이 담가버립니다. 우울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그 아득한 절망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지요. 그 목소리에 취해 역할극을 해내기 시작하면 안 됩니다.

인간은 원래 복잡하지요. 우울하면서 행복할 수 있고, 실패하면서 배울 수 있고, 관계가 단절되면서 독립할 수 있습니다. 아니어도 상관없지만요. 단일한 부정적 정체성을 손에 꼭 붙들고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종종거리지 마세요. 당신은 아직 당신을 모릅니다.
 

사진_픽사베이


성취로 정체감을 형성하지도 말아요. 직장은 자아실현을 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자아실현은 직장에서 모은 돈을 가지고 다른 곳에서 해도 돼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돈을 모아 기부하면 됩니다. 책임감은 가지되, 굳이 나서서 뭘 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것도 자의식 과잉입니다. 번아웃 되기 쉽고요.

연구결과로도, 본인이 속한 그룹의 대표성을 굳이 짊어지고 뭔가 성취를 이루려고 하면 그만큼 수행 수준이 낮아집니다. 자신에게 자꾸 큰 의미 부여하면서 점점 커진 삶의 의미, 혹은 삶의 의미가 부재한 자리를 감당하려 하지 마세요. 누굴 위해 살지 말아요.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최우선이에요.

 

대인관계나 타인과의 비교로 공허감이나 자기개념(self-concept)을 채우려고도 마세요. 최근의 연구결과로 자존감이 높아서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되는 경우는 있어도,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패턴은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대인관계의 폭에 집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s, SNS) 활동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마세요. 한국의 경우, 싸이월드라는 당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SNS가 일찍이 시작되고 5년여 후에는 facebook이 유행하면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일상이나 인간관계를 가상의 광장에 게시하게 된 것 역시 개인의 불편감, 박탈감, 열등감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2012년, <그들은 나보다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They are happier and having better lives than I am: The impact of using Facebook on perceptions of others’ lives)>는 제목의 연구논문에서도 이러한 개인의 불행감을 입증한 바 있으며, 더욱이 SNS를 보면서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는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보다는 자신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지면서 열등감, 시기심, 불안정한 자존감을 심화시킵니다.(*)

그 사람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보이지 않을 뿐이에요. 나도 그래요. 우리는 각자 살아내고 있어요. 그러니 멋대로 자신과 타인의 삶의 가치를 단순화해서 라벨링하고 그 프레임에 맞는 정보를 끌어다 붙이지 마세요.

 

또한 틈틈이, 당신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과 중요한 사람을 구분해주세요. 수치심, 열등감, 적의, 때로는 살의도 느끼겠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 저 사람이 정말 내 인생을 통틀어 내게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사람인지 변별해야 합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도 없는 사람임을 인식할 때, 그때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이 고요해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코멘트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화내지 않고 당신의 품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

 

당신이 멋대로 자기 자존감을 낮다고 평가하고 이를 억지로 높이려 애쓰지 마세요. 자존감이 다소 낮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멋져. 나는 특별해'를 외치며 자존감을 향상시켜보라고 했을 때 되려 자존감이 더 떨어졌다는 2009년의 고전적인 연구 결과와 같이, 억지로 자존감을 높이려 애쓸수록 우리는 더 우울해집니다. 자기 검열을 그만둬야 합니다.

2017년 John T. Cacioppo가 발표한 10년 추적연구에 따르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매우 많이 생각한다"와 같은 자기 초점적 사고가 결국 외로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외로움은 다시 자기 초점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며 상호-강화 효과가 반복되었고요.

 

다만 당신은 당신에게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세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을 하세요.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한 내가 되는 것에는 집중해도 좋지만, 의미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다른 모습의 내가 되기를 공상하지 마세요.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현실로 간주하고 있던 부정적인 자기정체감과 가혹한 비난들이 내가 다정하게 받아들인 나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도록, 나의 복잡다양한 이야기(narrative)들에 힘을 실어주세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당신은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인 기술 몇몇을 가지고 있고, 예민하지만 몇몇 지점에서는 매우 둔감할 줄 알고, 타인의 무례에 쉽게 상처받지만 금세 타인의 입장을 살필 줄 알고, 우울하고 불안하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줄 압니다. 당신의 모든 측면에 더 상냥하게 대해 주시고 당신에게 더 자비로워도 됩니다.
 

사진_픽셀


지난 기억에 압도되어 본인을 불안정애착, 우울한 사람 등으로 규정하고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 경험하는 당혹감이나 부적절감에 움찔해 다시 그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요. 불안정 애착인 채로 자라난 성인이라도, 안정 애착관계가 지속된다면 5년 이내에, 획득된 안정 애착(earned secure attachment)으로 변화된다는 연구도 기억해주세요. 우리는 재양육을 통해 점차 더 단단해질 수 있고, 불안의 소용돌이에서 고개를 우아하게 들고 걸을 수 있고,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겨온 사람의 접근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천천히, 천천히 하세요.

아직 오래되고 깊은 상처들이 딱지도 아물지 않았는데 얼마나 새살이 돋았는지 궁금하여 조급하게 또 떼어내고, 또 떼어내며 나는 이렇게 최악인데? 나는 가치가 없는데? 모르겠어? 왜 웃고 있어? 하며 타인과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그냥 수년을 두고, 자신을 받아들여 주세요.

 

당신이 아무리 스스로에게 너그럽고 관대해져도,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를 다그칠 것이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천성이 그렇습니다. 조금 더 멋대로 둬도 되고 더 수용해주고 이해해줘도 돼요.

물론 누군가가 수년 동안 다시 안전하게 우리를 안아주고 토닥여준다면 그것도 참 좋겠지마는, 그럴 누군가(애인 혹은 치료자)를 만날 상황이 되지 않아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계속해서 알아주면 돼요. 잘 하고 있지, 너 잘 하고 있지, 하며.

- 너 잘 하고 있지, 잘 해왔지. 다른 건 다 몰라도, 그건 내가 알지.

 

 

* 지극히 단순화하여, 내게 SNS 친구가 365명 있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매일을 불면과 슬픔과 걱정으로 분투하다 각자 단 하루씩 좋은 일이 생겨 1년에 각자 단 한 번만 이를 업로드한다 쳐도, 나는 산술적으로 타인에게 생긴 좋은 일을 매일매일 목격하게 됩니다. 나는 왜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지, 나는 왜 휴일 저녁 약속이 없지, 따위의 자신의 우울을 자리매김하는, 답 없는 질문을 365번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 한편으로는 혹여 누군가가 내게 너무나 의미 있는 인물이고 그 사람과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와 충분히 싸우며 자신의 취약점을 알아가고, 자신의 취약점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세요. 싸우지 않는 관계는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다만 여러 문제들도 경험해보고 그만큼 싸우기 위해 사계절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학생이나 내담자들에게, 누군가와 결혼할 혹은 평생을 함께 할 결심은 네 번의 계절을 다 돌아본 후 하라고 잔소리하지만, 그 이유는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축적할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 입니다.
 네 번 이상의 계절을 거치는 동안 아름다운 기억들을 견고하게 쌓아두어야 고난을 함께 해결해 나가고 싸움을 생산적인 방향의 논의로 진전시킬 심리적 자원이 저장됩니다. 가능한 따스하고 귀여운 기억들을 잔뜩 쟁여두세요. 삶은 참 고단하지만, 그 기억들이 당신의 싸움을 적정한 수준에서 멈추게 하고 불필요한 분노를 사그라들게 하며 당신의 사람을 안전히 지켜낼 것입니다.

 

 

- 이렇게 여러 잔소리들로, 제 이야기의 첫 시즌을 갈음합니다.
그간의 응원들 감사합니다. 댓글들 다 감사히 읽어보았습니다.
과분하게 연락을 많이 주셨던 출판사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시즌에서는 본격 우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허지원 심리학과 조교수 neuropsy.h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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