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ad35

“절망의 늪을 건너 새 소망을 품다” - 대한조현병학회 청년회복수기 당선작 시리즈(2)

기사승인 2018.09.07  01:42:04

공유
default_news_ad1

푸르른 5월처럼 한창 꿈도 많고 젊고 예쁠 나이 22세, 나는 K대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대학 1~2학년 과정을 대인관계도 좋고 성실하게 지내서인지 대학 3학년 때 학과를 대표하는 여자 부학회장에 추대됐다. 그리고 이 빛나는 시절 나에게 병도 찾아왔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더 많이 공부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내 미래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가정형편상 매우 적은 용돈으로 학교생활을 해나가야 했는데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으며 생활을 했었고, 그 한 끼마저도 적은 돈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새우과자가 전부일 때도 있었다. 

과도한 학업량과 신체활동에 비하여 영양상태는 매우 부실했을 때에 조현병을 처음 알게 됐다. 정확히 15년 전 중간고사가 시작될 무렵인 6월 중순쯤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기숙사에서 샤워를 끝내고 학과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학술대회 개최 준비와 중간고사 준비로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위 말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이미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있었던 나는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를 통하여 모든 대학들이 통합되고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나라가 운영되며 청와대에서 나를 찾아다니고 우리나라의 고급 승용차들이 나를 경호하며 하늘에서는 헬리콥터와 비행기가 내가 지나는 모든 길과 장소를 엄호하고 내가 지나는 곳곳에 나의 행동을 본받기 위하여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망상과 환청과 환영 속에 사로잡혔다. 

갑작스러운 나의 이상 행동으로 학교에서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가족들이 타고 온 차가 리무진으로 보였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내가 마치 구원자인양 따뜻한 해가 따라온다는 착각 속에 또한 빠져 있었다. 

난생처음 정신과 병동에 도착하여 여러 가지 기초검사를 받고 입원실로 옮겨졌고 정확히 한 달간의 입원치료를 끝낸 뒤 퇴원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들의 얼굴에는 주름과 온갖 근심 걱정이 가득하였다. 잔병치레 한번 없이 성장하던 딸이 정신질환이라니! … 하지만 나에게는 마음의 힘듦을 내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셨다. 

주치의 선생님과 퇴원 후 어떻게 지낼지를 상의하였다. 증상이 호전되면 휴식기간을 너무 길게 잡지 말고 사회에 복귀하여 적응하는 것이 나의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렇게 퇴원 후 여름방학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대학 4년 과정을 끝마쳤다. 

약을 복용하면서 몸무게는 급격히 증가하고 시야가 가끔씩 흐려지거나 손 떨림 증상이 나타났고, 늘어나는 수면으로 삶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져 갔다. 160cm에 55kg이던 나의 몸무게는 어느덧 80kg에 육박하게 되고 과도한 체중 증가로 인해 관절에 무리가 오기 시작하면서 디스크 판정까지 받았다. 급격히 증가한 체중에 외모도 바뀌고 체력은 많이 약해져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졌다. 육중한 몸무게 때문에 발목이 시큰거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 디스크로 허리가 잘 굽혀지지 않아서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양말을 신고 벗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내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암담하다는 생각에 슬펐고, 낙오된 듯 외로움과 절망감으로 하루하루가 살기 싫을 만큼 힘이 들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4년의 대학과정을 마치고 취업의 기회가 왔다. 입사한 회사에서 엄청난 체구와 외모를 보고 동료들 사이에서 놀림거리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짓궂은 동료들은 여자로서 수치스러운 온갖 별명들을 지어 부르며 조롱하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너무 힘들었던 첫 직장이었지만 시골에 계시는 내 사랑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나갔다. 
 

사진_픽사베이


힘들게 일을 하니 아주 조금씩이지만 살도 빠지기 시작했고 본래 성실한 근성 때문인지 입사 2년여 만에 본사 팀장으로 승진이 되면서 곧 실장까지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입사 4년여가 지날 무렵 다시 한번 풍랑이 몰아쳤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약을 챙겼지만 가끔 한 번씩 거르는 일이 생기게 되면 서 약을 걸러도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임의로 약을 끊게 된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약을 먹지 않으니 더욱더 급격히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스물일곱 살 겨울, 결국 올 것이 왔다. 단약으로 인한 재발이었다. 망상이 다시 시작되고 괴이한 행동들을 보이며 잠도 자지 않고 먹을 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조현병 발병 당시에는 특히 본인은 인지하기 어려운 것 같다. 본인의 망상들을 망상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들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다시 입원치료가 시작됐다. 다시 한 달의 입원기간을 거 쳐 퇴원을 할 때는 처음 퇴원할 때의 모습처럼 뚱뚱한 체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약이 바뀌면서 얼굴에 여드름 같은 뾰루지가 잔뜩 나고 변비도 매우 극심하였다. 바뀐 약의 불편함을 겪고는 상의 하에 처음 처방받았던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지만, 결혼 적령기의 한창나이였던 나는 변해버린 외모에 또 한번 어둠의 늪에 빠지는 것 같았다. 

혼자서는 객지 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려웠고 여러 가지 낙심도 되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농사가 본업인 부모님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를 열고, 교사가 되고 싶었던 학창 시절의 꿈이나 목표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활동량이 많은 직업이라 살이 빠지면서 어느 정도 외모도 돌아오게 되었고, 작은 가게이긴 하지만 직업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맞선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맞선을 본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2세 계획도 세우며 달콤하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해 나갔다. 복용 중이던 정신과 약물이 태아에게 기형을 유발할 수도 있어 주치의와 상의 후 약을 끊고 준비하던 그때, 내 인생에 커다란 풍랑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약을 끊고 3개월쯤 지나 사랑하는 남편과 나의 아이를 임신함과 동시에 재발이 찾아왔다.

재발로 인해 다시 약물을 투여하는 과정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결국 아이를 포기해야 했고, 이미 증상이 나빠져 있던 당시의 나는 그것이 어떤 건지 슬픔도 잘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증상이 호전되고 다시 나를 찾았을 때는 슬픔과 괴로움에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퇴원 후에는 많이 것이 달라져 있었다. 시댁에서 신혼살림이 모두 내쫓기고, 꿈만 같았던 내 신혼집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부모님은 결혼하여 어느 누구보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딸이 재발하고 아이를 잃고 이혼까지 하게 되니 매일을 슬픔과 고통 속에서 보내셨다. 사랑하는 남편 또한 슬픔에 빠지고 결혼 전 나의 병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완강한 시부모님의 반대로 우리 부부는 헤어졌지만 사랑하는 감정이 간절했던 우리는 시댁 식구들 몰래 다시 만나며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퇴원 후 다시 회복된 나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낸 남편이 분가를 하여 나와 다시 같이 살기를 청했고 사랑의 힘으로 남편과 나는 뒤늦게나마 다시 신혼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남편은 가장이자 나의 보호자로서 조현병 약물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 중 ‘최소유지용량’의 약물 복용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조현병 환우인 산모가 약물을 최소 용량으로 유지하면서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던 사례를 듣고 우리는 다시 철저히 약물을 조절하며 임신 준비를 하였다. 태중의 아이를 잃었던 아픔으로 힘들었던 우리 부부에게 올해 기적처럼 아기가 찾아왔고 지금 나는 배가 두둑해진 임신 5개월의 예비엄마다. 현재 2년여 넘게 재발없이 최소한의 약물을 유지하며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최근 산부인과 검진에서도 아이는 5개월 된 태아의 정상발달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고 1, 2차 기형아 정밀검사결과도 모두 정상이라고 한다.

요즘은 임산부로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태교도 하고, 1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식당의 사장으로서도 꿋꿋하게 잘해 나가고 있다. 과거의 어둡고 절망과 좌절뿐이었던 나를 생각하면 꿈만 같은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시절 교직생활을 꿈꾸는 학구파였던 20대 여학생이 이제는 37세의 식당 사장이면서 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새로운 소망과 희망과 꿈을 꾸며 힘찬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조현병이 그리 쉬운 질환도 아니지만 조현병이라고 하여 낙심과 우울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법도 없다. 자신에게 맞는 약물을 꾸준히 규칙적으로 복용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해 나간다면 정상생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 조현병 환우인 나와 함께 노심초사하며 돌봐주고 아끼고 사랑해준 가족들과 사랑하는 남편에게 특히,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나의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김민아 기자 minahgom@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