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번째 연재는 사과로 시작을 해야겠네요. 3번째 연재 말미에 ‘실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 삶에 적용되는 지점을 바라보고자 한다고 마무리를 했었는데요. 실제 상담 사례를 보기 전에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장면을 보면서, 우리의 일상 곳곳에 얼마나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욕망들이 숨어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가 세 연재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인식하기’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그것을 할 수 있는 일인지, 할 수 없는 일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상생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할 수 없는 욕망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인식하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계획이 조금 틀어졌지만, 이런 것이 live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독자 분들의 반응을 봐가면서 쓰고 있는 터라, 약간의 계획이 변경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실제 상담 사례’도 다음 연재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진_픽셀


오늘 말씀드릴 상황은 KBS 2TV ‘살림남(살림하는 남자들)’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온 장면입니다. 김승현 씨와 그분의 딸, 그리고 부모님이 나와서 대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김승현 씨가 모델로서 패션쇼에 서게 되었고, 딸이 같이 참석해서 참관 후 집에 돌아와서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김승현 씨의 부모님은 아들이 멋진 무대에 선 것이 자랑스러운 마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손녀(김승현 씨 딸)에게 참관 후기를 물어봅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손녀(김승현 씨 딸)는 무뚝뚝하게 ‘몰라’라고 대답을 하고 맙니다. 김승현 씨는 서운한 나머지 다소 상기되어 ‘뭐가 불만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딸은 ‘왜 자기밖에 몰라?’라고 맞대응합니다.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딸은 자신의 속마음을 자세히 설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은 학원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아빠 인맥으로 그런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눈치가 보여서 불편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빠는 무대 준비로 바빠서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지는 못하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뭔가 내가 올 자리가 아닌 거 같고, 주변에서는 나를 안 좋게 볼 거 같고.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으로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김승현 씨와 김승현 씨 부모님이 대응하는 방식은 우리 일상 대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딸(손녀)이 불편한 마음을 느낀 것이 이해가 되니까, 그런 불편한 마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겁니다. ‘내 딸이, 내 손녀가 그런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않고, 이 상황을 즐겁게 해석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자동적으로 드는 겁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 시작하는 거죠.

 

사실 나쁜 마음은 아니지요. 내 딸이, 내 손녀가 긍정적인 마음과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니까요. 그래서 그 욕망을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을 합니다. ‘왜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까 네가 너무 과민하게 의식할 필요 없어.’라는 말을 김승현 씨와 김승현 씨 부모님이 이야기합니다.

이 말의 주어가 누구죠? 그렇죠. 주어가 또 ‘나’가 아니라, 내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 즉 딸(손녀)입니다. ‘딸(손녀)이 이런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이야기하면 김승현 씨와 김승현 씨 부모님 바람대로 딸(손녀)이 긍정적인 마음과 감정을 느끼게 될까요?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딸(손녀)은 자신의 마음이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더 답답해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보통 이럴 때 많은 부모님들께서 나오는 레퍼토리가 있지요.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왜 못 알아듣냐고...’ 다들 한 번씩 들어보셨지요? 맞습니다. 어느 부모님께서도 자식이 잘못 되라는 바람을 가지고 말과 행동을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자식이 잘 되라는 바람을 가진다면 주어가 ‘자식’이 아니라 ‘나’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식이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어.’라는 바람은 주어가 ‘자식’인 만큼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은 위 영상 내용처럼 내 마음과는 반대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이전 연재들에서 이야기하였던 대로, ‘자식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부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생깁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자식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자식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게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식의 말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기보다는, 내 바람을 더 강력하게 이야기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러면 결과는 내 마음과는 반대로 귀결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 번째 연재에서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변화는 가짜이며, 노력이 동반된 변화가 더 진짜다.’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노력’이라는 비용을 들여서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 변화를 줄지, ‘노력’이라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살던 대로 살아갈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위 사례를 보면서 우리가 일상 대화를 하는 짧은 순간에도 ‘할 수 없는 바람들’이 얼마나 많이, 곳곳에 묻어나 있는지가 조금은 체감이 되시나요?

우리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있나요? 그 많은 대화들 속에 위 사례와 똑같은 ‘내가 할 수 없는 바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인식하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왜 그토록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었는지 조금 더 다가와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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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네 번째 연재를 덧붙인 이유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합니다. 오프라인에서 제 강의를 듣고, 많은 분들이 생활에 적용해보았더니 큰 도움을 받으셨다고 고마워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내용이기도 했고, 강의를 듣고 그 부분이 확실하게 정리가 되어서 생활에 적용을 해보았더니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다고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모아서 정신의학신문에서 ‘스트레스 매니지먼트 워크숍’을 열었었습니다. 어땠을 거 같나요? ‘이제 다 알았어요.’, ‘삶에 적용하면서 많은 부분들에 도움이 되었어요.’라고 하셨던 분들이, 여전히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면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약간’ 인식을 시작하였던 거고, ‘약간’ 삶이 좋아졌던 겁니다.

이 인식의 범위를 넓혀간다면, 내 삶은 ‘많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위 사례에서 보았듯이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그러한 것들이 숨어서 그 누구도 아닌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내 삶 곳곳, 순간순간마다 어떤 바람들이 숨어있는지 찾아보신다면, 내 삶의 통제력을 되찾아오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원칙은 내용을 아는 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할 수 없는 건 바라지 마라.’가 다이니까요.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곳곳에 세밀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인식과 노력이 훨씬 중요합니다.

독자 분들이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늘 응원하겠습니다. ‘좀 더’라고 말씀을 드린 이유는, 우리는 100% 완벽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주체적이 되게 만드는 일뿐입니다. 우리가 왜 100% 완벽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두 번째 이유’에서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흥미진진하고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대하고 기다려주세요. 다음 시간에는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 본 연재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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