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사연 -

30대 중반 남자 직장인입니다. 늘 같이 일하는 상사가 너무 싫습니다. 처음엔 일 때문에 계속 부딪혔어요. 제가 일을 하는 중간에 와서 한줄한줄, 편협한 지적을 해서 그게 싫었는데, 계속되다 보니 사람 자체가 싫습니다. 정치 성향도 다르고 가치관도, 식성향도 달라요. 처음엔 네네.. 하면서 맞춰드렸는데, 사람이 싫다 보니까 자꾸 발끈하면서 말대꾸를 하게 됩니다. 어떨 땐 나도 모르게 말을 날카롭게 해서 서로 민망하기도 한데요. ‘상사에게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이젠 목소리만 들려도 예민해지니 어쩌면 좋을까요? 같이 지내는 시간이 가족보다 더 많은 사람인데, 함께 하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만 생겨서 저도 힘듭니다. 제가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Q) 이분 너무 힘드실 것 같은데요... 나랑 안 맞는 사람은 어디나 있을 수 있죠?

A) 싫은 사람을 매일 봐야 하는 것도 고역인데... 그 싫어하는 사람이 상사라면, 일요일 저녁부터 스트레스받고, 아침마다 출근하기도 싫어지겠죠. 직장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위장병, 두통 같은 증상에 시달리는 분도 많습니다. 

상사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부하직원이 그걸 개선하기란 쉽지가 않죠. 거의 불가능합니다. 불편해도 참고, 부하직원이 최대한 상사에게 맞추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기가 힘들죠. 그리고 상사와의 관계는 한 번 틀어지면, 부하 직원이 어떻게든 맞춰 보려 해도, 개선되기가 쉽지 않고요. 그래서 상사 때문에 이직을 생각하는 경우도 흔하죠. 

그러나 이직을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갈등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어떤 회사를 다니더라도, 인간관계의 갈등, 직장 상사와의 문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은퇴를 하기 전까지 절대 이런 고민은 해결되지 않겠죠. 
 

사진_픽사베이


Q) 한편으로는 직장 상사에게 너무 집중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관심을 돌릴 수는 없을까요?

A) 갈등은 푸는 것이 아니라, 품고 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관계 갈등이나 문제를 다 풀어야 직장 생활 잘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직장 생활이 더 힘들어지죠.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일이니까요. 

갈등은 모두 풀고,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일 자체보다는 관계에 에너지를 더 많이 쓸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렇게 에너지를 써도 인간관계가 말끔하게 정돈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일에는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요. 

요즘 직장인들은 일도 많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고...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족보다 직장 동료나 상사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잖아요. 이렇게 회사를 위해 헌신하다 보면, 마음속에서는 직장 상사가 ‘가족처럼 나를 대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를 하게 되면 나중에는 오히려 더 실망할 수밖에 없어요.

사연을 주신 분도,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점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상사와 모든 면이 잘 맞아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자신과 잘 맞는 상사를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죠. 

상사에 대한 기대 수준을 조금 낮추면... 힘도 덜 들고, 괜히 상사에게 실망할 일도 줄어들어요. 관계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세이브할 수 있으니까, 그 에너지를 일에 더 많이 쓸 수 있으니까, 일에 대한 만족감 늘어나요.

 

Q) 상사와 모든 면이 잘 맞기를 기대하지 않으려고 해도, 상사와 가치관이나 성향이 너무 다르다면, 아무리 마음을 좋게 먹으려고 해도 괴로울 수밖에 없을 텐데요.

A) 우리는 감정 노동의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감정 노동의 강도가 직업마다 다 다를 뿐이지 모든 일에는 감정 노동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잖아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감정 노동은 고객을 향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내부 고객, 그러니까, 직장 동료나 상사를 향해서도 우리는 감정 노동을 하게 됩니다. 상사에게는 싫어도 싫은 티를 내서는 안 되고,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자기감정을 속이기도 하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항상 웃는 표정,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애를 쓰게 되잖아요. 이것도 일종의 감정 노동이거든요.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는 상사에게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도 감정 노동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고객을 향해서만 감정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성향이 다른 상사에게 맞추기 위해서도 감정 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든 감정 노동의 대가로 우리는 월급을 받고 있다,라고 여겨야 합니다. 비록 명목상으로 나와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받는 월급 중에 일부분은 상사를 위한 감정 노동의 대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Q) 상사가 특별히 괴롭히거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도 사연을 주신 분은 사람 자체가 싫어졌다고 하는데요. 이건 뭔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편견 같은 것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A) 상사에게 불만이라고 하는 사연을 듣다 보면, 그 상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매번 비슷한 유형의 상사와 갈등을 반복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요. 항상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고 갈등이 반복된다면, 그건 자신에게 비롯된 문제나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권위적인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이 나중에 커서 취직을 했는데, 권위적인 상사와는 아무리 애를 써도 관계가 좋아지지 않고 자꾸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이건 어쩌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처리되지 않은 감정이 상사에게 투사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아니면 형제간에 갈등이 있었는데, 형을 연상시키는 직장 상사에게 유독 불쾌한 감정을 많이 갖게 된다든가 하는 경우도 비슷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면, 과거부터 자신이 해소하지 못했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해요. 
 

사진_픽셀


Q) 이유가 어떻든, 성향이 맞지 않는 상사에게 맞추려다 보면 힘도 들지만, 나중에는 상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도 힘들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상사의 기분을 맞추는 것도 일종의 감정 노동이거든요. 감정 노동자는 두 가지 행동 유형을 보여요. 하나는 심층 행동(deep acting)이라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다 보면, 상대에게 진심으로 맞춰주려는 마음이 생기고,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을 심층 행동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겁니다. 아무리 감정 노동을 한다고 해도, 심층 행동을 하게 되면, 감정 노동 스트레스가 덜 해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표면 행동(surface acting)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마음으로 도저히 공감도 못 하겠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겉으로만 억지로 맞춰주는 행동을 말해요. 쉽게 말해 발연기를 하는 거거든요. 이렇게 되면 힘은 힘데로 들고, 나중에는 ‘내가 이러려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회의감마저 따라오게 됩니다. 표면 행동에만 의존하게 되면, 직무 스트레스도 늘어나고, 번아웃에도 쉽게 빠집니다.

사연을 주신 분도 지금 상사와의 관계에서 표면 행동을 많이 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렇게 되면, 자기 나름대로 애를 아무리 써도, 스트레스는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아요. 상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더 깊어진 것 같고요.

 

Q) 상사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을 누그러드리고,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직장 상사에 대한 기대를 재조정해야 합니다. 혹시 회사를 가정으로 직장 상사를 가족처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고요. 어떤 회사를 다녀도, 나랑 잘 맞는 상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상사와의 갈등은 직장 생활을 하는 한 벗어날 수 없어요. 이런 것을 모두 품고 직장 생활을 하는 거죠.

그러면,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느냐 하면, 직장 생활을 연극 무대, 자기 자신을 연기자라고 여겨야 해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직장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는 자신의 연기력을 더 키우겠다,라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연기하는 것이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거든요. 연기를 잘 못해서 힘들어하고 문제가 생기는 것뿐이지요. 이런 연기에 능한 사람이 조직에서 승승장구하기도 하고요. 직장에서 어설픈 연기를 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힘만 들고, 노력하고도 인정을 못 받으니까요.

이왕이면, 메소드 연기자가 되겠다,라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메소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배역을 잘 이해해야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상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학창 시절에 뭘 좋아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상사의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이렇게 상사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한 번 가져 보세요. 상사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겠다,라고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상사가 점심때마다 청국장을 먹으러 가는 것은 상사의 어머니가 제일 잘 하던 요리가 청국장이기 때문에 그렇구나,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상사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고, 그러면 마음도 조금 가벼워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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