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알코올 문제, 회피가 답은 아니다

국내의 알코올 중독자 수가 200만명이 넘어섰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임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는 사람의 수는 이에 비해 굉장히 적다. 한국은 특히나 '술 권하기 문화' 가 있어 음주 및 음주와 관련된 행태들에 관용을 베푸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의 음주 행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 중독자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그러고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음주로 인한 직장생활, 사회생활의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와중에도, '아직은 괜찮은 수준'이라고 자평하며 과음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건강과 정신 모두 망가져 반복적인 입원과 음주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참 많다. 
 

사진_픽사베이


심각한 알코올 중독 행태를 가리키는 알코올 의존(alcohol dependence)이라는 진단이, 2013년 발표된 새로운 정신의학 진단체계인 DSM-5에서 알코올 사용 장애(alcohol use disorder)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알코올 사용 장애 및 유도성 장애는 신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모두 황폐하게 만든다. 정신의학적으로도, 알코올 관련 장애들은 우울증, 불안장애의 발생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반복적 알코올 사용과 금단증상이 삶을 망가뜨리고, 이는 우울을 부르며, 다시 이 우울한 감정 때문에 술을 찾게 된다. 알코올 관련 장애와 기분 장애, 불안 장애들이 서로 닫힌 고리를 이루어 그 안에서 맴도는 것이다.

 

알코올 사용 장애 여부와 심각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많은 척도들이 있다. 그러나 대개 평가 과정과 그 결과 해석이 복잡하며 전문적 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제풀에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알코올 문제가 있다고 여길지라도, 쉽게 찾아서 스스로 검사하기 용이하지는 않다. 물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전문적인 평가와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선입견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경우가 있다. 

 

♦ 음주 문제, 단 4문항만 스스로 체크해보자!

알코올 문제와 관련된 선별검사 중, 간단하게 자신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척도를 소개하겠다. 알코올 사용 장애를 진단하는 데는 여러 가지 툴(tool)이 있지만, 가장 간단하게 자신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척도가 바로 CAGE 질문지(CAGE questionnaire)이다.

CAGE 질문지는 단 4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짧은 시간을 들여 자신의 음주문제가 문제 수준인지 여부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문항 수는 적지만, 많은 연구를 통해 높은 민감도와 특이도를 확인한 바 있는 신뢰할만한 질문지이다.

CAGE는 각 항목들의 머릿글자를 딴 이름이다. 다음의 항목들에 해당되는지를 체크해보도록 하자.

C - cut down : 술을 끊어야 하겠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A - annoying : 술로 인해 누군가에게 비난받아 본 적이 있는지
G - guilty : 술을 먹는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E - eye-opener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술을 먹는 패턴인지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도 굉장히 간단하다. 해당되는 개수가 많을수록 알코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중 한 항목 이상 해당된다면 알코올 사용 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며, 두 항목 이상이라면 알코올 문제에 대해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마지막 항목인 eye-opener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해장술'이다. 대개 음주 후에 밀려오는 금단을 피하기 위해 다시 알코올을 찾게 되는 것이다. 거의 알코올 중독의 마지막에 생기는, 눈 뜨면 술 먹고, 다시 자고 일어나 술 먹고 하는 패턴이 나타난다. 이 정도의 단계라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치료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CAGE 질문지에서 상당수 이상의 질문이 자신에게 해당된다면, 음주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필요한 도움을 받도록 하자. 음주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벗어나는 방법,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한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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