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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분노, 우울... 이제 그만 없애고 싶어요

기사승인 2018.09.12  02: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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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 저 너무 괴로워요. 이 기분, 이 감정을 없애버릴 수 있는 약은 없을까요? "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을 만날 때면 흔히 듣는 말이다. 불안, 우울,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오랫동안 시달렸던 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깨끗하게 도려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뿌리째 뽑아낼 수만 있다면, 다시 맑은 마음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과연 우리의 감정을 없앨 수 있을까? 영화에서처럼 약 한 알에 우리의 감정을 '리셋(reset)'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들을 깨끗하게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부정적인 감정이 몸과 마음 어딘가의 한 부위에서만 자라난다면 피부에 돋아난 종기를 짜내듯이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 경험은 뇌와 신체 전체의 반응이다. 인간의 감정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에서 해석 및 처리하며 생겨난다. 뇌의 처리 여부에 따라 신체 증상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불안을 겪는 이들은 몸이 떨리고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 것이다. 우울을 겪는 이들은 마음만 힘든 것이 아닌, 몸 전체의 에너지가 쉽게 소진되고 쉽게 피로해진다. 이처럼, 감정은 뇌와 몸 전체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가까우며,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뇌의 특정 부위를 제거함으로써 정신과 질환의 증상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현재는 낮은 효과와 부작용으로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감정을 스스로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 사람을 잘 들여다보면 감정을 없앤 것이 아닌 그저 억누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억누르다 보면, 결국 감정의 압력이 증가하여 다른 방향으로 튀어 오를 수밖에 없다. 즉, 감정을 경험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정신건강에 해로울 뿐이다. 김을 미리 빼놓지 않은 압력밥솥은,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진_픽사베이

 

우리가 감정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정 자체의 문제보다 감정으로 인해 생겨나는 신체적 감각, 불쾌한 생각, 원치 않는 행동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감정 반응은 마치 패키지 꾸러미와 같다. 예를 들어 분노의 감정은 '나를 무시했어, 이건 부당해'라는 생각과 상대를 향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며, 그 순간 가슴은 두방망이질치고 전신이 긴장된다. 급기야 상대를 향해 언성을 높이거나 공격적 행동 같은 반응들도 일시에 터져 나온다. 상황이 끝나고 나면, 자신의 감정 때문에 힘들었다는 느낌만 남게 된다. 하지만 이는 착각에 가깝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감정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감정 경험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이들은 감정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거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꾹꾹 눌러둔다. 이 또한 언젠가는 더 불편한 감정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회피가 습관화되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는 사라진다. 원치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감정에 의한 '자동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불편한 감정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가? 불편한 감정을 깨끗이 없앨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감정의 본질 잘 알고, 건강하게 조절, 대처하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 감정 반응 패키지(package)- 나누어 살펴보자!

우선, 감정 자체는 해롭지 않다. 다만, '패키지'로 연결된 감정 반응의 다른 요소들이 부정적인 느낌을 줄 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이 나타나고, 생각, 신체 감각, 행동으로 자동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감정이 나타났을 때 과거에는 감정에 휘둘리는 행동, 느낌, 생각으로 불편했더라도, 이제부터 감정반응의 패키지를 끌러 잘 나누어 거기 맞는 적절한 대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주로 고통을 받는 감정 경험을 노트에 적어보자. 만약 자주 불안하다면, 불안을 느낄 때의 생각, 불안을 느낄 때의 신체 감각, 주로 취하는 행동을 정리하는 것이다. 감정을 분류하여 노트에 적고, 분석해보는 것 자체만으로 자신의 마음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간단한 작업(불안, 분노, 우울)만으로도 감정이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심리치료에서도 치료의 성공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잘 들여다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 감정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감정 자체는 우리에게 위험하지 않다. 감정은 마음에서 잠시 떠오른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떠오른 감정은 언젠가 그 수명을 다하기 마련이다.

고개를 잠시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현재의 감정을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의 이미지와 연결해보자. 구름은 한 자리에 머무르는 것 같지만, 실은 조금씩 움직여 언젠가는 시야를 벗어나 사라진다. 산행을 하다 만난, 개울가에 떠내려 오는 나뭇잎에 비유할 수도 있다. 감정은 우리 쪽으로 떠내려왔다가도, 이내 다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흘러간다.

이처럼 감정이 차오르는 군간 깊은 호흡과 더불어 감정을 시각화(visualization)하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그전에 자신이 주로 겪는 감정이 무엇이고, '감정 패키지'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김영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1@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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