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지난주 퇴원을 하고 안정가료 이틀+주말에 쉬고 다시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입원 사유는 자살시도/주요우울장애 였는데요, 몇 개월 전에도 같은 사유로 입원했었습니다. 두 번째 입원은 저도 너무 처참하더라고요. 그래도 얼른 회복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치의 선생님과 매일 열심히 면담하면서 자살사고 및 충동이 생길 때 대비책까지 준비해서 안정적으로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정 내의 부모님입니다. 어제는 제가 너무 힘들어서 퇴근하자마자 등 돌려 누워서 울고 있으니 엄마가 제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시다가 그냥 한숨을 쉬며 나가시더라고요. 또 지난 월요일에는 아빠가 “내 주변에도 너처럼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약 먹고 너무 멍해져서 일을 못하게 되어 약을 한 번에 끊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더라”라고 이야기하시니 옆에 계신 엄마도 “스스로 이겨내야지”라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두 번째 입원을 엄청 반대하셨지만 주치의 선생님과 엄마는 한 시간 동안 면담도 하시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 저리 간 건지.... 동생마저도 “이제 부모님 좀 그만 괴롭혀라”라고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살 충동이 심하게 왔어요. 입원 기간 동안 교수님과 주치의 선생님과 나누었던 방지책은 무슨... 움직일 힘도 없더라고요. 
 

사진_픽셀


그래도 교수님과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약속은 했으니까 침대 밖으로 나가면 자살시도를 할 것 같아 가만히 누워서 꾹 참았습니다. 그래서 자살시도는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취침 전 약도 정량으로 먹고 잠을 잤습니다. 

그래도 계속 저런 말들이 귀에서 맴도며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일하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뭐하러 사냐, 부모님도 힘들게 하는 나 같은 쓰레기는 죽는 게 맞지”라고 생각하며 자살계획을 구체적으로 하게 됩니다. 퇴근할 때쯤이면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싫고 괴로워요. 오늘은 또 어떻게 나를 괴롭힐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되고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죽으면 다 해결될 문제네요. 쓰다 보니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저의 존재 자체가 비정상인 것 같기도 하네요. 

평생 그냥 이렇게 약 먹고 견디는 게 정답일까요? 제 우울은 언제 제 머리에서 떠날까요? 그리고 죽고 싶은 이 마음은 언제 사라질까요?

과연 사라지기나 할까 싶은 정도로 무기력해진 상태인데... 전 어떻게 하면 되나요ㅠㅜ

 

A) 안녕하세요, 자살시도로 두 차례나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을 하셨다니 정말 어려운 투병의 터널을 지나고 계시군요. 좀처럼 낫지 않는 우울감과 부정적인 생각, 죽고 싶은 생각, 무가치감, 가족과의 갈등은 정말 안 그래도 마음의 자원이 바닥난 환자분들을 지치게 하고 죽음으로 내몰곤 하지요. 그럼에도 재차 입원을 하고 병원을 다니고, 또 여기에 이렇게 질문글을 올리시는 것을 보니, 질문자님께서는 적어도 그 지긋지긋한 우울증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와 저력만은 누구보다 투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님의 그 힘겨운 여정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올려주신 질문글에서도 질문자님의 그러한 처절한 노력의 결과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하게만 올려주셨지만 부모님과 동생과 이야기하면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나 때문에 집안의 불화가 생긴 것 같은 느낌, 막상 내가 힘든 것은 아무도 몰라주는 느낌, 나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할 것 같은 느낌, 내가 떼쓰기만 하고 집안의 골칫거리가 된 느낌, 무가치해진 느낌, 버려진 느낌... 등등 모두가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분명 자살기도를 하고 응급실이나 병원으로 실려갔을지도 모를 상황에 정신줄을 붙잡고 의식을 챙기고 가만히 누워 꾹 참고 약까지 챙겨 드시고 누우셨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네요. 심지어 입원기간 동안 나누었던 방지책이란 것이 있었단 사실까지 떠올리셨고요. 물론 아직 그걸 실제로 해볼 여유까지는 없었지만요. 어떠신가요? 사실 아주 큰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불과 몇 개월 전과는 행동의 '방향'이 아예 바뀌었으니까요.
 

사진_픽사베이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나아갔느냐 하는 것보다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죽음, 자살만을 향해 직진하던 걸음에서 나아가기 위한 곳으로 방향을 틀었고 또 그 방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 예전과 달라졌으니까요. 지금은 좀 더 건강한 나, 좀 더 의미 있는 나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그 방향으로의 걸음이 더디고 괴로울 수는 있습니다. 다시 예전의 그 자리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다시 자살기도로 입원실로 되돌아갈지도 모릅니다. 끔찍하게 괴로운 우울증과 싸우는 환자분들은 누구보다 힘들게 노력하고 고생했는데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일상에서 다시 지쳐 쓰러지기가 일쑤입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에 더욱 좌절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사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길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과 같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더디고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지요.

질문자님의 고뇌 또한 뼈아프게 힘들지만, 마찬가지의 과정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많이 힘드시만, 또 지금 아주 잘 해내고 계십니다. 그러면 조금씩 이 많은 약들도 줄어들 것이고 어느새 일상의 여유도 되찾으시게 될 것입니다. 많이 힘들 때면 지금 여기에 글을 남겨주시는 것처럼 어디로든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기도 하고요.

모쪼록 질문자님의 건투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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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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