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잠은 불규칙하게 자지만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요. 갑자기 울컥할 때도 있지만 웃고 떠들 때도 있어요. 눈물은 마른 지 오래입니다.

대부분은 슬픈 표정으로 지낸다고 친구들이 이야기해줬어요. 실제로 속으로도 정말 슬프기도 하고요.

밥 생각은 별로 안 나는데 있으면 먹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미래는 절망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자해를 했어요. 아주 얕게 했지만. 제가 힘들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호기심에, 해봤어요.

조금 무기력해요. 돌멩이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절 계속 쳐다보면 부끄러워요. 계속 의기소침해져요.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요. 조용한 곳에 있고 싶어요. 혼자 있으면 너무 우울한데 같이 있으면 힘들어요. 그냥 계속 이런 상태에요.

고3이 되고 크게 행복했던 기억이 없네요. 최근 들어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면 저도 괜찮아지겠죠.

정신없는 글을 써서 죄송해요. 그냥 제 상태가 어떤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저를 이상하게 볼까 이런 얘기는 잘 하지 않거든요.

정신건강의학과를 가야 할까요?

제가 안 그래도 몸이 약해서 대학병원에 다니는 중인데 정신의학과를 간다면 보험 가입에 제약이 크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죽고 싶은데 도움을 받고 싶어요. 저, 조금 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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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질문자님의 사연 잘 읽어보았습니다. 식사도 그럭저럭 하고, 학교도 늦지 않게 잘 다니고,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기도 한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질문자님 글만 읽어도 질문자님의 텅 빈 마음은 이미 충분히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막 우울해! 너무 슬퍼! 너무 괴로워! 라며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슬픔에 흠뻑 젖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조금씩 씁쓸하고 외로운, 우울한... 그런 오래된 마음에 항상 서글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걸 다 놓쳐버리진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모든 걸 놓치고 나락으로 떨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그런 마음.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지금은 뭔가 비어버린 듯한 느낌. 우울함. 무기력감 같은 것들이 딱지처럼 단단해져서, 늘 마음 한켠에 있는 쓰라림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마구 눈물로 샘솟진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병이 우리가 매스컴이나 인터넷에서 보는 것처럼 항상 '누가 봐도 우울한 상태'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울해 보이지 않아도, 오히려 즐겁고 활력이 있어 보여도 마음속은 우울증의 고름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는 게다가 주변에서 보아도 우울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실 정도라고 말씀하시고 계시고요. 충분히 많이 힘들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질문게시판에 올라오는 짧은 글로 사람을 진단하거나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질문자님의 짧은 글을 읽을 때에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지금 분명 많이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그게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로 번질 정도로 까지 많이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적어도 그것이 느껴진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 질문자님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뭐가 그렇게까지 질문자님을 우울과 무기력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일까요. 심지어 돌멩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그러신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말씀해주지 않으셨으니 알 수 없을 수밖에요. 설사 말씀해주신다 하더라도, 이런 질문글로만 제가 질문자님의 모든 사연과 생각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질문자님 스스로도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우울에 젖어 사는가,에 대해 정확히는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제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질문자님의 우울감이 질문자님을 더 큰 우울과 더 깊은 우울, 더 헤어 나오기 어려운 우울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생겨난 우울감이 질문자님의 생활과 마음속을 꽉 메워버려서, 다른 일상과 미래의 모든 것들마저 우울하고 부정적인 색깔로 물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화창한 날도 어둡게 보이듯, 지금 질문자님께서 바라보는 꿈도 희망도 없는 우울한 세상은 사실 질문자님의 머릿속을 지배한 '우울'이라는 녀석이 어둡게 물들여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본디가 "부정적인 사고 왜곡"을 특징적인 증상으로 갖는 병입니다. 즉, 우울증에 걸리면 똑같은 일도 더 부정적으로만 보이고, 더 나쁘게만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절망적으로만 보이고, 또 그래서 더 우울해집니다. 즉 우울증은 기본적으로 본인을 더 우울한 길로 몰아가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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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 특성, 즉 우울증 때문에 나 스스로가 나를 점점 더 우울하게 만드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어렵지 않고 효과적인 방법은 매번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이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우울감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울감이 없을 때의 내가 바라보았더라면 그 사건과 상황이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깨 위에 "우울감"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석상이 하나 얹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괴물 모양으로 생긴 석상 말이지요. 유럽 옛날 성당들에 보면 조각상으로 새겨져 있는 가고일 석상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 게 질문자님의 어깨 위에 묵직하게 항상 얹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님은 늘 어깨가 무겁고, 무기력하고, 지쳐 있는 것입니다. 그 "우울감"이라는 석상을 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늘 지쳐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석상은 매 순간순간마다 저주와 불행,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항상 속삭이기도 합니다. "안될 거야" "결국 실패할 텐데, 그동안 그래왔잖아" "그거 하나 하면 뭐할 거야, 지금 다른 게 이미 망했잖아" "이미 늦었어, 그거 다 의미 없어" "너는 평생 그렇게 살게 될 거야" "지금까지처럼 평생 힘들 거야" 같은 부정적인 말들을 항상 속닥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님으로 하여금 진짜 그렇게 생각하도록 말이지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지금 어깨 위의 무거운 괴물 석상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보시는 것입니다.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미래는 절망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보시는 겁니다. 지금 내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우울감"이라는 이 지긋지긋하고 무거운 괴물 석상이 나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어떠신가요. 사실 별거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나의 절망적인 시각과 우울한 태도를 진짜 나의 모습과 분리시켜본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진짜 질문자님의 모습, '우울감'이라는 석상을 벗어던졌을 때의 원래 모습을 스스로에게 떠올려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울감 때문에 더 우울해지고 그래서 더더욱 우울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선은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켜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우울한 건 아닐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석상이 속닥거리는 저주의 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보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보험가입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링크한 동영상을 참고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사실 그 괴물 석상이라는 게 나 혼자 힘만으로는 쉽게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누군가와 상담을 하고 내가 왜 그렇게 무거운 석상을 짊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털어놓고, 또 조금씩 약물의 도움도 받아간다면 우울감이라는 무서운 짐으로부터 벗어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쪼록 질문자님께서 지금 오늘을 짓누르고 있는 그 무거운 우울감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오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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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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