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사연 - 

업무관계로 알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사소한 말 실수를 한 이후,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나를 힘들게 합니다. 고객이라 말대꾸를 할 수도 없고, 그냥 말하는대로 들을 수 밖에 없는데, 사소한 일들을 모두 태클을 걸고 시정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러다가 정말 윗선에서 이 사실을 알고, 나에게 불이익이 올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저희 집 위치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집에 와서 나쁜 짓을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할 정도예요.  

이런 사람,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요?
 

사진_픽셀


참 난감하실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싫은 사람을 상대하는 경우가 참 많이 생기지요. 몇몇 편집증적인 사람은,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아 사람을 질리게 합니다. 인신공격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더군다나 공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다면, 특히 상대가 고객이거나 윗사람이라면, 피해갈 수도 없지요. 일을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상대의 갑질은 끝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냅니다.

가장 최선은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고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바꾸려 하거나 지적하려 든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겟지요. 관점을 한 번 바꿔보겠습니다. 내가 받을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순전히 나를 위하여' 내가 조금은 태도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요?

 

1) 역설적이지만, 공감이 우선입니다. 너무 싫은 상대의 말 중 단 하나라도, 공감을 표하고 경청한다면, 놀랍게도 갈등의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의 100마디 중, 1-2마디라도 진실이 있다면, 상대방의 말에 수긍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상대에게 공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감입니다.

상대가 하는 말에 99가지가 잘못되었어도 우리가 이를 지적한다면 상대방은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역공을 퍼부을 지도 모르죠. 오히려 공감의 눈빛과 태도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순간부터 상대의 날카로운 말들이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공감이라는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낸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2) 충분히 감정의 압력이 줄었다면, 완곡하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합시다. 

상대방의 공격이 멈추는 시점에서, 굉장히 부드럽게, 조심스럽게, 최대한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해야 할 과정입니다.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태도로 대화를 시작한다면, 감정적 충돌을 줄일 수 있습니다. 

 

3) 미쳐 날뛰는,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상대를 대할 때,  상대방의 마음 안에 있는 화가 난 아이를 보려고 노력해야합니다. 너무 미워 죽을 것 같은 상대의 모습 안에, 이렇게 '내 마음을 좀 알아 달라고' 떼쓰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상대가 오히려 안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는 아이의 원형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바라는 것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훌쩍 거리다 이내 자리에 앉아서 소리를 지르고 떼를 부리게 됩니다. 사실 필요 이상으로 나를 괴롭히는 상대의 모습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상당히 미숙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화를 내는 상대방은, 참 안타깝고 불쌍한 아이의 모습인 것이죠. 건강한 우리가 달래주고 얼러야 할 안타까운 대상이기도 합니다. 

 

4) 사고의 재앙화를 피하도록 합시다. 근거없는 재앙화는, 합리적인 대처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파국적인 결말은 상대방도 쉽게 내리기 힘들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여 너무 불안에 떨지 말고 조금은 이성적으로 바라보도록 합시다. 상대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파국적인 결말을 내기는 힘듭니다. 단계를 건너뛰어 지나치게 파국적인 결말을 상상하는 것을 '재앙화'(catastrophizing)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고 패턴은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잠시 멈춰서서 왜곡된 생각을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결말을 직접 종이에 적어보고, 상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5) 부디 위의 방법들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이도 저도 안되면, 마지막으로,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리'하는 마음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마음가짐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참고문헌

1) 심리도식치료, Jeffrey E.Young et al., 권석만 등 공역, 학지사
2) 관계수업, David D. Burns, 차익종 옮김,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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