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신과, 여섯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분들께서는 가족과 지인에게 드릴 선물 준비, 제사음식 장만, 성묘를 위한 벌초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날 가족 생각에 기분이 들뜨고 설레실 듯합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여성들은 명절이 가까워지는 이 시기가 무척이나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 여성들은 왜 명절을 싫어하는 걸까요?

 

명절 무렵, 정신과는 무척이나 북적인다.

한가위, 설날이 되면 대학병원 병동은 한가로워집니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심한 건강 이상이 아니면 명절 시기 입원을 피하기 때문에 병실은 여유롭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병동과 외래는 명절 전후로 무척이나 바쁩니다. 명절 전에는 명절을 보내야 하는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를 찾습니다. 명절 후에는 체력과 정신력의 방전으로 지친 분들이 정신과를 방문합니다. 증상이 극심한 분들은 명절 기간 동안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기도 합니다. 명절 스트레스를 가진 환자분들은 우울증 환자들처럼 기분 저하, 불안, 분노, 수면 장애 등의 증상을 나타냅니다. 이와 함께 특징적으로 두통, 어지럼증, 흉부 불편감, 사지 이상 감각 등의 다양한 신체증상을 보입니다.

 

♦ 첫 번째 명절 스트레스의 원인- 과중한 육체노동

즐거워야 할 명절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원인 중의 하나는 음식 장만을 위한 과중한 육체노동 때문일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명절 음식이 간소화되었다고 말하나 그래도 명절 음식 준비는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전, 나물, 갈비, 산적, 송편 등의 전통 음식들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갑니다. 둘째는 좁은 부엌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제사 준비, 세 끼 밥상, 술상, 손님 접대 상, 설거지 등 일이 끝나지 않아서 부엌을 떠날 수 없어서입니다. 이런 강도 높은 중노동 때문에 여성들은 명절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사진_픽셀


♦ 두 번째 명절 스트레스의 원인- 그들만의 축제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 분들이 가지는 주된 감정은 분노감입니다. 그 이유는 가사 노동 분담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는 일들을 도와주지 않고 지시만 합니다. 그리고 일이 서툴다고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남성들은 장기간 운전을 했다며 방에 들어가 잠을 자다가 식사 시간에만 잠시 방에서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방에 들어갑니다. 혹은 남자 가족 구성원들만 모여 명절 음식을 안주 삼아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십니다. 분노감의 기저에는 소외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여성들은 명절이라는 축제 기간 동안 주체가 아니가 객체로 치부되었다고 인식하여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소외감은 분노감으로 이어집니다.   

 

♦ 남성들 또한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

흔히 여성들만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성이 명절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남성의 명절 스트레스는 여성들과는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남성들은 명절 음식 준비 비용, 부모님 용돈, 교통비 등 경제적 지출 때문에 적지 않은 고민을 합니다. 근래 경제는 위축되나 물가는 상승되는 양상이 지속되어 경제적 부담은 매년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간의 운전과 교통 체증, 성묘 전 벌초 또한 육체적인 피로를 유발합니다. 고부간의 갈등 또한 남성들이 명절을 꺼리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또한 명절 스트레스를 겪고 일부는 정신과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 해결책- 축제는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명절에는 응당 가족 구성원 모두가 즐거워야 합니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명절 음식 준비, 상차림, 설거지 등에서 남성과 여성의 가사 노동 배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음식 준비, 차례, 성묘 등의 절차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면 간소화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명절 기간 동안 하루쯤은 가족 전체가 외식을 하고, 함께 영화 관람을 하는 것도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명절 직후, 육체 피로 해소를 위해 사우나를 가거나 마사지를 받는 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 서로 불편한 점, 속상한 점들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명절은 우리 모두의 축제이기에, 모두가 축제의 주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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