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실격> 그리고 자살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직후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기였던 1940년대에 <인간실격>을 발표했다. 소설적인 요소와 자전적인 요소가 함께 어우러진 작품에서 사람과의 관계와 내적 갈등에 대한 그의 생각이 묻어난다. 소설의 화자인 ‘요조’를 통해 사람은 늘 이해할 수 없고 무서운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그가 택했던 전략은 익살꾼처럼 자신의 본모습을 가린 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일종에 마스크를 쓴 것이다. 그는 사회관계 속에 존재하는 위선을 고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강한 모멸감과 좌절을 느끼면서 방탕한 삶을 살다가 끝내 소멸해 버리는 우울한 작품이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5.8명으로서 전 세계 국가들 중에서 오랫동안 1위를 차지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자살률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세계 2위를 (1위는 리투아니아) 기록하고 있고, 여성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자살은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인가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자살을 하는 이유는 제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유무, 뇌의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및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분비의 문제 발생,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갑작스러운 사회관계의 단절 혹은 변화, 심지어 날씨나 기후까지 자살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토록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태도 혹은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지엽적인 사고인 만큼 보다 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통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인 자살의 사회적 이유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사진_thecrcl_ca


♦ 뒤르켐의 자살론

뒤르켐은 고전 사회학자 중 하나로서 1897 그의 저서 <자살론>을 통해 자살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자살에 대한 현대적인 관점을 제시했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그 당시에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자료를 이용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뒤르켐의 자살론은 통합과 규제의 개념이라는 두 개념을 양 축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쉽다.  통합은 소속감과 애정 등의 감정을 나타내고 규제는 모니터링, 감시, 인도(guidance)를 뜻한다. 이 두 가지 개념을 바탕으로 뒤르켐은 자살의 네 가지 유형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잘 알려진 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그리고 숙명적 자살이다.

이기적 자살과 숙명적 자살을 묶어서 보고 이타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을 묶어서 보면 편한데, 이기적 자살은 집단과 소속감을 못 느끼고 소외되어 자살을 하는 것이고 숙명적 자살은 반대로 집단으로부터 너무 과도하게 억압을 받아 자살을 하는 것이다. 이타적 자살은 집단과의 소속감도 크고 규제 또한 강하다. 군인의 희생이 한 예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집단과의 소속감도 없고 규제 또한 없는 허무함 속에서 자살을 하는 것이다.

 

♦ 자살의 현대적인 사회학적 관점

뒤르켐 이후 사회학자들은 통합과 규제의 개념을 점차 수정하고 비판하면서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 사회적 통합(social cohesion)등의 개념들로 발전시켜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자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였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Gibbs와 Martin(1964)은 개인들이 타협할 수 없는 역할 갈등이 지속될 때 자살률이 높다는 결과가 얻었다. 여기서 역할 갈등이란,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가지 역할을 갖고 있는 것인데, 마치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주부와 직장인이라는 두 가지 역할이 상충한다. 한편, Philips와 Paight(1987)는 유명인의 자살 후 자신도 따라 같이 자살하는 현상으로 알려진 ‘베르테르’ 효과를 발견하면서 뒤르켐의 통합 및 규제의 개념보다 모방이 자살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좀 더 최근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Wadsworth와 Kubrin(2007)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태생 히스패닉 사람들은 자살률이 높은 반면,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히스패닉 사람들은 자살률이 낮았다고 보고했다. 개인주의 가치관이 강하게 뿌리내린 미국 태생 히스패닉 사람들은 사회적 지원이 부족했을 것이고 전통적으로 강한 가족주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히스패닉 이주자들은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은 친구들이나 가족과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과 혼자 살거나 이혼한 남성은 여성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원을 얻기 힘들다는 점은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은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인 고찰은 어떤 면에서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자살의 예방에 있어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떠한 분야이든 간에 잘 설계된 이론과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관점으로 자살을 설명하기보다 사회, 심리, 생리학적인 요인들을 모두 고려하는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1. Wray, Matt, Cynthia Colen, and Bernice Pescosolido. "The sociology of suicide." Annual Review of Sociology 37 (2011).

2.  생물정신의학 Vol. 6, No. 1, June 1999. 자살시도 환자의 혈소판내 세로토닌 농도와. 심리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 정희연**†·권영준**·박인준**·홍세용***·최의정**

3. OECD 자살률
https://data.oecd.org/healthstat/suicide-rates.htm#indicator-c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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