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음주 문제, 어떻게 극복할까

알코올 중독(alcohol use disorder, 알코올 사용 장애)은 삶을 망가뜨린다. 알코올성 간염, 지방간, 간경화처럼 몸을 망가뜨리고, 알코올성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의 저하 문제를 초래한다. 문제는 '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주를 반복하면서 업무에 지장이 가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되기도 한다. 또, 이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비난받게 되고, 가족 간의 다툼이 생긴다. 그간 잘 쌓아왔던 인생의 성벽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어느 순간 그 벽은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알코올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은 꽤나 험난하다. 알코올 문제는 작은 성취와 좌절, 또다시 작은 성취에 이은 실패의 연속이다. 작은 언덕을 넘으면서 이제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겠거니 싶으면, 다시 깊은 골로 떨어지게 되는 때가 많다. 시간에 따른 치료 성과를 그려본다면, 일차함수 그래프처럼 일직선으로 상승하기보다 마치 나선을 그리듯 출렁이며 올라가 조금씩 치료 성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작은 출렁임을 견디지 못해 치료에서 중도 탈락하고 다시 음주를 시작하는 이들도 많다. 

음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음주 문제 극복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의지가 생겼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처음의 동기(motivation)는 갓 쌓아 올린 모래성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동기가 생겼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짧은 금주 성공과 이어지는 실패를 반복적으로 맛보며 아주 조금씩 음주 충동을 조절하는 습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음주를 스스로 통제하는 습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알아차리기 awareness>다.
 

사진_픽사베이


♦ 세 가지 <알아차리기>의 중요성

음주의 충동에서 음주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다. 뇌세포 사이에서 신호가 전달되는 시간은 1/1000초 정도로 굉장히 짧다. 또, 여태껏 반복적으로 해온 음주 행태로 인해, 음주를 촉발하는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거침없이 음주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뇌세포 간 고속도로가 닦여진 상태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표면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 아래서 은밀하게 흐르는 무의식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또,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표면적인 음주 문제를 극복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되기도 한다.

<알아차린다 aware>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현 상황에서 자신의 음주에 대한 충동, 느껴지는 신체 감각, 촉발 요인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는 최근 심리학적 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마음 챙김 mindfulness>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음주 상황과 수반된 요소들을 알아차리게 됨으로써, 음주 상황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에 여유가 생겨난다.  

 

1. <촉발 요인>을 알아차리기

자신의 음주 문제가 무엇으로 인해 자극받는지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없애거나 피할 수 있는 원인이라면 음주 충동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슬퍼서, 불안해서, 짜증 나서'와 같은 감정적인 요인이나, 최근 받고 있는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요인이 많다. 또, 저녁 시간의 공복감, 술이 가득 차 있는 냉장고처럼 음주 접근에의 용이함,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에서의 음주 방송 등도 자극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특히 취약한 촉발 자극이 있음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다면 자극을 받을 상황을 가능한 한 피하거나, 촉발 자극을 마주하는 순간에 좀 더 건강한 선택을 할 여지가 생긴다. 또, 술로 가득 찬 냉장고를 비우거나, 미리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등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자극들은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다.

 

2. <음주의 진행 단계>를 알아차리기

겉보기엔 자극 이후 충동적인 음주 행동이 바로 이어지는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마음은 꽤나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촉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은 후, 의식 아래에 있는 감정, 신체 감각, 생각이 차례로 자극받는다. 특히 감정과 신체 감각의 변화는 자신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다. 이를테면, 불안이 촉발 요인이라면,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해지는 등의 신체 감각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결국 '딱 한잔만 하자'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 음주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 감각, 기분, 기저의 생각은 어떠한가? 어떤 이는 가슴이 답답함을 맥주 한 캔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싶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회사 생활에서 받은 짜증과 화가 소주 한 잔을 부를 것이다. 자신이 주로 어떤 기분, 어떤 감각을 느낄 때 술을 마시게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이를 통해 현재 자신이 충동적 음주로 향하는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잘 헤아릴 수 있다면, 음주 행동에 대한 경고등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3.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건강한 대처>를 알아차리기

촉발 자극과 음주로의 무의식적 진행 과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자극 이후 음주로 이행하는 과정에 좀 더 여유가 생긴다. 과거에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음주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면, 앞의 두 가지 '알아차리기'를 반복하면서 음주 외에도 다른 건강한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좌절, 우울, 불안의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보자.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거나, 촉감 좋은 포근한 이불을 휘감는 등 오감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내면의 허기짐을 채울 수 있다. 극한의 분노, 짜증, 스트레스가 자신을 음주로 이끄는 것을 알게 된다면, 차가운 물로 샤워하거나, 빠르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트레드밀 위를 뛰는 등 주의 분산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취미 활동이나 영화 감상, TV 시청 등 몰입할 수 있는 수단을 만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 모두 촉발 자극을 받아 음주로 가는 계단 위에 있다는,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음주를 극복하기 위해 험난하고 지루한 과정이 펼쳐질 것이다. 이를 혼자서 연습하기 힘들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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