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느낌 또는 생각이 누구나 있다. 역설적으로 우울증에 대한 편견은 이 때문에 생긴다. '나도 우울해 봤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 '힘을 내다보면 극복된다' '의지의 문제더라'와 같은 문장은 그러한 몰이해의 좋은 예들이다.

흔히 우울증을 '슬픈 병'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러했었다.) 허나 슬픈 것은 '병'이 아니다. 슬픔은 인간이기에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오히려 슬퍼할 만한 일에 대해서는 슬퍼하는 것이 건강한 마음이다. 우리는 보통 우울해 봤다기보다 슬퍼해 봤다.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슬픔의 범위가 있다. 이는 스스로의 기준과 사회적 통념을 통해 형성된다. 이러한 범위를 넘어서는 슬픔은 불편을 야기한다. 나아가 기준과 통념 상 특별히 슬퍼야 할 상태가 아님에도 슬프다면 역시 문제가 된다. 슬픔은 문제가 아니다. '적절하지 못한' 슬픔이 문제다.

치료반응이 더딘 우울증 환자(양극성장애, 초조성 우울장애 혹은 타 불안장애를 동반한 우울장애 등이 아닌,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우울장애 범주에 속하는 환자)들을 접하며 느낀 것은, 그들이 정상으로부터 벗어났다기보다는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주요우울삽화의 DSM-5 (미 정신의학회 진단 및 통계 편람) 진단 기준 A 요약이다.

A. 다음의 증상 가운데 5가지 (또는 그 이상)의 증상이 2주 연속으로 지속. 증상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1) 우울 기분이거나 (2)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이어야 함.

(1) 우울 기분
(2) 일상 활동에 대해 흥미나 즐거움이 뚜렷하게 저하됨.
(3) 의미 있는 체중 변화, 식욕 변화
(4) 불면 혹은 과다 수면
(5) 정신운동 초조 혹은 지연
(6) 피로나 활력의 상실
(7) 무가치감 또는 부적절한 죄책감
(8) 사고력, 집중력의 감소, 우유부단함
(9) 자살 사고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증상 2가지 중 하나가 (2) 일상 활동에 대해 흥미나 즐거움이 뚜렷이 저하됨.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상 활동을 '삶'으로, 흥미를 '동기'로, 즐거움을 '행복'으로 바꾸어 보면 '삶에 대한 동기나 행복이 뚜렷하게 저하됨'이라는 문장이 된다. 환자를 보며 느꼈던 결여감의 실체는 이것이었다.

- 내게 우울증은 삶을 이어갈 이유를 잊는 병이다.

삶은 때로 행복하고 때로 인내하는 것이다. 삶을 인내하는 이유를 동기라 한다. 삶의 동기는 주로 인내 이후의 행복이다. 하지만 종종 인내 끝에 행복이 아닌 절망이 찾아온다. 아직 사랑하는 이가 나의 곁을 떠날 수도, 숙원한 사업이 무너질 수도, 젊음을 바쳐 준비한 시험에 실패할 수도 있다. 삶은 자주 우리를 배신한다.

중요한 것은 그만큼 예기치 않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도 삶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배신에 절망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삶에 대한 희망을 놓게 된다. 삶은 때로 행복하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그 자체를 망각한다. 삶에 대한 의지가 결여되는 것이다.

우울한 기분에 대해 이를 개선하는 약을 처방하는 것, 직장 내 관계가 어려운 이에게 대인관계치료를 시행하는 것, 세상에 대해 왜곡된 부정적인 관념을 가지게 된 이에게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하는 것과 같은 등의 접근으로 환자를 대했을 때 벽에 부딪히게 된 이유가 이것이었다. 찾아온 이들이 기본적으로 '지금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요,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라고 요구하는 것이라 암묵적으로 접근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항상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항상 옳지도 않다. 다시금 백지상태로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니 '지쳐서 삶의 동기를 잃었어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이 들려왔다.
 

사진_픽사베이


처음부터 삶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은 드물다. 다만 반복되는 삶의 배신은 참으로 지치는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좌절을 피하고자 포기하였거나,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강아지, 정신과 의사, 친구, 사랑하는 이, 가족을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거나, 울거나 하며 쉬다 보면 잃었던 삶의 의미가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삶의 의미가 '있었다는 느낌'은 막연히 떠오를 수 있다. 나아가서는 반복되었던 좌절이 삶의 배신이 아닌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고 비로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 환자들이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이후로는 환자가 찾아오면 우선 그들의 삶을 마냥 들었다. 이야기 중 궁금한 부분이 생기면 조금 더 세세히 물어보고는 다시금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친 마음에 공허한 이야기를 굳이 던지기보다, 필요하다면 약물이나 위로를 더하여 스스로 다시금 찬찬히 회복할 시간을 두었다. 기다렸다. 왜 우울해졌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은 그다음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가족으로서의 모습도 되돌아보았다. '그 일은 이러저러한 일인 것 같다' '이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은 마음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무심코 자주 던졌던 말들이 허망했다. 충분히 듣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어떤 일인지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기 전에 '그 정도면 진짜 힘들었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상황과 기분의 밀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쩌면 정말 필요한 것은 '그래도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라는 느낌을 전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울한 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면 좋을까요?'
'그냥 들어주세요. 그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진 마세요. 그리고 곁에 있어주세요.'

상투적인 결론이지만, 꽤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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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여러 병태생리에 기인하는 일종의 증상이다. 양극성 장애, 주요우울장애, 기분부전장애를 비롯한 수많은 정신과적 문제뿐 아니라 물질중독, 파킨슨병, 치매, 쿠싱증후군, 임신 등 다양한 의학적 상태 역시 우울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우울 양상 역시 불안증을 동반하거나 심하게 지체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조증 양상이 혼재되어 있거나 계절적인 특성이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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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방법들 역시, 그러한 증상을 유발한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멜라토닌 등등... 과학 시간에 배우고 기사에서 봤던 것들)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약물치료 및 각종 비 약물 적 생물학적 치료들, 다양한 정신치료 기법들과 심리사회적 치료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지식과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겉으로 드러난 증상 아래의 기저 질환 혹은 상태에 대해 접근하고, 이에 환자의 삶을 더하여 가장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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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버티고 이겨낼 대상이 아닐 수 있다.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찾고 서로 위로하며 친구가 되는 것처럼, 때로 절망적으로 힘이 든다면 정신과를 찾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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