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윤희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H 님의 사연>

안녕하세요. 불안감 때문에 사회생활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어서 사연 보냅니다. 저는 최근 들어 정신, 심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이제야 제 마음에 문제가 있고 앞으로 삶을 개선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저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날에는 ‘나는 왜 이럴까, 내 삶은 왜 이리 힘들기만 할까’라는 생각에 빠져 자책을 하곤 했죠.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거의 다 속상한 일, 스트레스받는 일뿐이었고, 그런 일들이 생기면 나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하기 바빴습니다. 혼자서 앓으면서 머리가 아파지거나, 위염이 찾아올 때도 많았지만, 이런 감정의 파도가 몰려오는데도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감정의 폭풍 같은 날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정도가 지나친 불안감과 긴장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듭니다. 

제가 느끼는 불안감의 종류는 정말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문을 세게 닫는 소리 같이 갑자기 나는 큰 소리에 순간적으로 놀라면서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그냥 놀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리와 연관해서 여러 불안한 상상들이 떠올라서 참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고 할 때 지나치게 긴장하고 무섭고 두렵기도 합니다. 제가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찾아오는 엄청난 불안감과 두려움을 견디기 힘듭니다. 이런 감정에 더해서 어떤 순간에는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고 머리가 아파지고 멍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순간에 저지르는 일들로 제 인생을 가까스로 이어 온 느낌입니다.
 

사진_픽셀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서 비행기 티켓을 샀다가 하루 만에 온갖 걱정으로 티켓을 취소하고, 가고 싶었던 회사에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까지 해 놓고는 일주일간 고민하다가(그냥 앉아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걱정에 밥을 거르고 울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상의도 하면서요)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날 전날에 죄송하다고 못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갔다가 3주 만에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민을 하고 준비를 정성껏 합니다. 그러고 나서 막상 준비했던 상황이 오면 두려움에 도망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습니다. 많은 시간을 백수로 지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억지로 취업을 해도 1년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뒀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20대 후반을 그렇게 반복하며 보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지낼 땐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합니다. 책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한심하고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친구들도, 책을 읽어도 좋아하는 일,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라는 조언을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볍게 시작하는 원데이 클래스 같은 것들도 왜 저에게는 두렵고 엄청난 큰 일로 다가올까요? 연락하는 것조차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두려움, 막막함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먼저 보내주신 메일을 읽으면서, 특히나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초라하게 느끼고 자책을 하고 있는 상태가 너무나 아플 것 같아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는 정말 시작하기 힘든 일인데, 아무렇지 않은 듯 조언을 하는 주위 친구들이나, 책을 읽을 때면 더 답답한 마음이 드셨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특히나 H 님을 괴롭히는 마음, 무언가 시작하려고 하면 자꾸만 떠오르는 온갖 걱정 때문에 시작을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이 따라오는 것, 그리고 어떤 한 가지 주제가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다 걱정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인 상태를 ‘범불안장애’라고 부릅니다. 범불안장애가 있을 때는 다른 불안장애와는 달리 어떤 한 가지 특정한 것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일들에 걱정이 생깁니다. 그리고 여러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면서, 안절부절못하거나 긴장이 고조된 느낌, 쉽게 피로해지는 감각, 집중하기 어렵고 멍한 상태, 근육의 긴장, 수면 장애 같은 신체 증상들이 동반됩니다.
 

사진_픽셀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처한 현실에 대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위험한 상황이 다가오더라도 눈치채지 못하고 어느새 깊은 위험에 빠져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과도한 걱정과 불안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불러오게 됩니다. 불필요한 걱정들에 매달려 있다 보니 선택을 하고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계속 보일 수가 있죠. H님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중요한 직업 선택 같은 일도 쉽게 시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단순하게 생각해도 될 수 있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 역시나 진행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게다가 단순히 머리 속에서 불안과 걱정이 맴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H님이 표현하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조여 오는 느낌, 두통, 어지러움 같은 증상들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엄청나게 초조한 마음이 들고, 결국은 오래 고민하고 걱정했지만 성급하게 결정을 내려버리는 일이 반복이 되죠.

문제는 이렇게 성급하게 결정을 하다 보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범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결과를 가지고, 또 다른 걱정이 이어집니다. ‘역시나 내 선택은 틀릴 때가 많아’라는 생각이 강화되고, 위험에 대해서도 더욱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이런 부정적인 선택이 이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도 적용이 될 것이라는 식의 과잉 일반화도 흔하게 일어나고요. 이런 식으로 불안과 걱정, 그리고 잘못된 결과의 악순환이 점점 더 불안 증상을 강화하게 됩니다. 

범불안장애의 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우선적으로 약물 치료가 선행이 되는데요, 불안한 마음과 뒤따라오는 신체 증상들을 조절하기 위한 항불안제가 효과적입니다. 이를 통해서 불안을 점점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 중 하나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 치료만으로는 온갖 장면에서 떠오르는 걱정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불안 증상이 다시 올라오게 되죠.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심리 치료, 그중에서 인지행동치료가 효과가 좋습니다. 불안한 마음과 걱정을 강화하는 사고 과정을 기록하고 검토하면서, 어느 부분에서 왜곡된 판단이 들어갔는지를 발견해 낸다면 점차 나의 생각을 교정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희 뇌부자들이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워낙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불안한 마음이, 단 한 장의 편지로 해결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H님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고, 바꾸어 나가려는 마음을 먹은 지금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너무 급하게 마음을 먹지 말고, 치료진을 믿고 따라간다면 분명히 큰 변화가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뇌부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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