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중독포럼 김장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날씬한 몸매”가 최근 미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에서 뚱뚱한 몸매를 인물의 부정적 이미지와 연관시키는 것을 보면 살쪘다는 것은 게으름, 능력의 부족,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으로 느끼게 유도하기도 합니다. 

“1개월 내 10kg 감량“ 등의 문구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2015년 우리나라 다이어트 시장의 전체 규모가 7조 6천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세부 영역을 보면 다이어트 식품 및 콘텐츠 분야에 이어 다이어트 의료가 1조 9천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다이어트 수요의 초점은 개인에 맞춘 생활습관에 대한 전반적 접근보다는 단기간에 체중을 대폭 감량하는 것에 있는 만큼 광고들은 짧은 기간에 크게 감량했다는 드라마틱한 수기들을 내세워야 합니다.

섭렵한 성공 수기대로 하고는 있는데 배가 고픕니다. 오늘 저녁 식단은 방울토마토 열 개에 닭가슴살인데 TV에서 음식 배달앱 광고가 나옵니다. 이상하게 내 식욕만 날뛰는 것 같고 포만감은 죄책감으로 또 자기비하로 이어지면서 나는 평생 뚱뚱하게 살아야 할 운명이라 결론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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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상심에 빠진 분들에게 제시할 해답이 필요합니다. 식욕을 다스려줄 도움이 필요합니다. 생식, 효소, 원푸드 다이어트 수기와 함께 식욕억제제 광고가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동대문 언니약’, ‘2주분 O만원’ 등으로 힘든 운동이나 식사 조절 없이 체중감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눈사람, 도끼, 나비’ 등의 은어로 유통되는 다이어트약이 있다는데 귀가 솔깃해지기도 합니다.

다이어트 약물 관련 문제가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욕억제제들은 전문의약품으로 과거 병력을 포함하여 신체 상태를 전반적으로 평가받고 잠재적 부작용을 고려하여 처방받아야 함에도 불법적인 경로로 오남용 되고 있습니다. 대리처방을 받거나, 이를 발송해주는 대행업체들이 호황을 누린 사례도 적발된 바 있습니다. 마약성 식욕억제제의 경우 체질량지수 30 kg/m2 이상의 고도비만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4주 이내로만 단독 처방하는 것이 원칙인데, 장기간 여러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다 문제가 생긴 사례들이 보고됩니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다이어트 목적 식품의 9.1%에서 각성제 유사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약이 아니라 하여 안전하다 믿고 복용했을 이들 식품에서 검출된 BMPEA, PEA는 암페타민 유사 성분들로 사람을 대상으로 안정성이 입증된 바 없습니다.

‘식욕’은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본능이기 때문에 단순한 방식으로 조절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끼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또 다른 한편, 바빠서 끼니를 거르고 일을 하다 보면 괜히 예민해지고,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식욕은 사고, 인지, 감정, 동기, 행동의 영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배고픔이 쉽게 억제될 수 있었다면 인류가 현재에 이르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봅니다. 현대의학으로는 인간의 정신-신체 기능의 다른 영역은 건드리지 않고 순수하게 식욕만을 겨냥하여 외부에서 조절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훗날에는 어떤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병원에서 접하게 되는 식욕억제제와 관련된 문제들은 대부분 마약성 식욕억제제로 인한 사례들이었습니다. 주요 성분이 대표적인 마약인 암페타민과 유사한 정신흥분제(각성제)이고 그 때문에 일견 식욕은 효과적으로 억제가 됩니다. 각성제의 작용은 생애 처음 커피를 마셨을 때, 혹은 카페인에 예민한 분들이 커피를 마셨을 때 보이는 반응을 떠올리면 기본적으로 이해가 될 텐데요. 잠이 깨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의욕이 증가하고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 말입니다. 물론 식욕억제제는 커피보다는 더 많은 신경전달물질들을 훨씬 더 강력하게 조절하지요. 그럼 상상 가능하시겠지만 잔뜩 긴장하거나 화가 나서 싸우기 직전의 상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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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날 보고 짖는 개가 목줄을 안 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운전을 하다 어떤 운전자가 늦게 간다고 보복운전을 할 때. 싸움하기 직전을 떠올려 보신다면, 그 상황에서 배가 고플 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화난 상태로 매일매일을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긴장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식욕억제제를 매일 먹어도 우리 뇌는 수주 내 점차 긴장을 내려놓도록 적응을 합니다. 그다음은 예상 가능하겠지만 동시에 식욕도 돌아오게 되고 이러한 우리 뇌의 적응을 내성(tolerance)이 생긴 상태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때쯤 되면 약이 효과가 없다고 느껴지고 요요가 시작되니 복용량을 늘려야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약의 용량이 늘어나면 신경전달물질의 과잉으로 인해 피해사고, 관계사고, 환각 등 조현병에서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기분 변화, 충동성도 생겨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이전과는 다른 괴팍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고용량의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다 중단했을 때의 상황인데요. 인위적으로 기분상태를 조절시켜 주던 약의 효과가 한순간에 사라지면, 눌러놓았던 용수철이 손을 떼면 갑자기 튀어 오르듯 반동성(rebound)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울감, 졸림, 무의욕, 집중력 저하, 허기짐 등의 증상으로 원래 하던 일도 모두 놓아버리고 싶고 체중도 갑자기 증가할 수 있습니다. 뭐라도 하려면 다시 약을 복용해야겠구나 생각하는 시점이라면 이미 의존(dependence)이 생긴 상태입니다.

지금껏 정신의학적 증상에 국한하여 말씀드렸지만 여러 신체적 문제 또한 보고되어 있습니다. 마약성 식욕억제제는 기본적으로 혈관수축효과가 있어 혈압을 높이기 때문에, 폐동맥 고혈압, 심장판막 질환 등의 심장질환이 있는 분들에서는 특히 주의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몸소 경험해온 바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나름의 대가를 치르든, 아니면 대가 치르기를 약간 뒤로 미루는 것만 가능한 게 세상 이치인가 본데, 이자라는 것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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