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同病相憐)의 과학>

 

필자가 군복무를 하던 중 폐렴으로 병원에 며칠간 입원한 적이 있었다. 병실에는 필자를 포함하여 총 다섯 명의 병사들이 입원해 있었는데 다들 몸이 아파서 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느끼는 낯선 군부대 밖 환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며칠 동안 서로에게 쉽사리 말을 붙이지 못했다. 다음날 한 명이 추가로 병실에 입원했는데 그 역시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그날 저녁 그가 병실에 있는 모두를 향해 조용하게 꺼낸 첫마디는 병원 매점에서 초코파이를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병사는 사실 훈련소를 막 나와 자대 배치를 받은 이등병이었고 열악한 자대 환경에서 지내다가 그만 몸에 병이 든 것이었다.

아픈 몸 보다 훈련하면서 제대로 누리지 못한 군것질을 향한 그의 갈망은 우리 모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그래서 급한 데로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던 간식거리를 나눠 주면서 그를 위로해 주었다. 이처럼 동병상련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길 수 있다는 것, 즉 처지가 어려운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통념대로 동병상련의 원칙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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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친구는 우울한 친구를 원할까?

2011년에 동병상련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내놓은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Schaefer 교수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에 대한 조사를 했다. 연구에 대한 설명에 앞서 먼저 동질성(Homophily)에 대한 개념을 소개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와 유사한 사람들끼리 사회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개념의 사회학적 용어이다. 간단히 말해서 나와 상대방이 ‘죽이 잘 맞는다’라는 말은 상대방과 내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사회 네트워크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동질적(homophilous)관계를 맺는 기작(mechanism)은 결국 자신과 비슷한 상대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사람들이 자기와 유사한 사람을 선호하는 이유는 서로가 비슷할수록 소통이 원활하고, 서로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며, 서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병상련이라는 통념도 결국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장애, 비만 등 낙인이 찍힌 사람들도 앞서 설명한 선호(preference)의 기작대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갈까? Schaefer 교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어떻게 친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과 비슷한 상대를 선호하여 동질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회피(withdrwal)라는 기작을 통해서 동질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 우울한 친구는 우울한 친구밖에 없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기회의감 그리고 자기비하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겪기 때문에 친구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온전히 힘을 쓰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자존감이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친구한테 받은 호의를 받은 만큼 되돌려주지 못할 것이라 믿고 애초에 친구관계 자체를 회피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친구의 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새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 또한 줄어든다. 결국 우울한 사람은 사회 네트워크 속에서 소외되고 그들이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은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우울한 친구들뿐이다. 결국 모두가 선호하는 ‘잘 나가는’ 친구들보다 훨씬 못 미치는 비슷한 ‘소외된’ 친구들끼리 친구를 맺는 것이다. 물론 우울한 사람도 건강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선호하고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들이 가진 어떠한 특성(예: 우울증, 장애, 비만 등) 때문에 네트워크 구조적으로 사람 관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어쩌면 소외된 친구들끼리 맺은 우정이 훗날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연구의 의의는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친구조차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 동병상련은 같은 병을 앓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야 서로를 불쌍히 여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타(他)병상련처럼 다른 병을 앓고 있어도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 참고

Schaefer, David R., Olga Kornienko, and Andrew M. Fox. "Misery does not love company: Network selection mechanisms and depression homophily."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76.5 (2011): 764-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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