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우연히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제 마음을 토로하고자 들어왔습니다. 저는 항상 지쳐있고 밝다가도 우울하고 즐겁다가도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합니다. 이 모든 게 학창 시절부터 시작이 된 거 같아요. 학창 시절, 저는 다른 또래에 비해 빨리 꿈, 미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생각이 많아졌고 하고 있던 공부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공부에 소홀해졌으며 오직 목표를 정하는 데에만 생각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궁극적으로 생각만 했지 행동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내지 못한 채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들어간 대학교에서 저는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벗어나고 싶었고 전공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공부까지 모든 게 절 압박해왔습니다. 여유로울 줄 알았던 대학생활은 오히려 고등학교 때 보다 더 힘들었으며 매일 울면서 지냈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해보고자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 속에서 저는 이유도 없이 즐겁다가도 우울함을 느꼈고 별 뜻 아닌 친구들의 말에 난데없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제 멋대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졌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졌습니다.

중간에 뛰어내려볼까도 생각해본 적이 있고 병원을 가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바꿔줬으면 해결해줬으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나를 감당할 수 없어서 휴학을 결심하였고 휴학과 함께 다른 곳으로 편입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도피처럼 결정한 편입 준비는 저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혼자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보니 중간에 몇 번 슬럼프가 왔고 저는 다시 무너졌습니다. 다시 울었고, 다시 내 탓을 하고, 다시 죽고 싶어졌습니다. 목표 따위 이제는 다 필요 없다고 느껴졌고 삶이 뭔지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죽고 싶었고 마음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은 다 괜찮은데 저는 이제 이유도 모르겠는 이 우울감 그리고 무기력감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편입 준비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면서 그 모든 것을 잊고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길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왔습니다.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함에 빠졌던 대학생활을 다시 할지, 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함에 빠졌던 편입 준비를 다시 할지. 저는 어느 길로 가든 우울함에서 못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그냥 저는 남들보다 우울함을 더 잘 느끼고 무기력해지는 걸까요? 그냥 이제 남들처럼 진심으로 웃고 적당히만 생각하고 적당히만 걱정하며 살고 싶습니다. 사실 죽고 싶지만, 저의 곁에 누가 봐도 좋은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기에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떠나기에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생각하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하지만 바꿔야겠죠? 살아가는 의미가 있겠죠? 두서없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줄일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자세히 남겨주신 질문글 꼼꼼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질문자님의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오랜 시간이 정말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 시절 학업과 대입, 대학생활과 편입까지 질문자님께서는 늘 적응하기 힘들고,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은 우울감에 젖어 있으셨던 것 같다는 느낌이 전해지니 질문자님의 그 막막함이 얼마나 무거우셨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약해보자면 질문자님께서는, 학창 시절에는 마냥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일단 목표가 무엇인지 스스로 궁금해하며 고민하느라 힘들어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고민은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는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 결국 휴학과 편입 준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편입 준비를 하면서도 여전히 지금의 생활에서 의미를 찾기가 어렵고, 오히려 이렇게 편입을 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도피는 아닐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움까지 더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질문자님의 고민들을 따라가다 보면 질문자님의 마음속에는 항상 '지금 이 생활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목적 없이 생활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닐까', '그냥 이렇게 살아지는 대로만 살아가는 건 쓸모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허무감이 자리 잡고 있으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질문자님 스스로도 '삶이 뭔지,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해주셨고 말입니다. 즉, 짧은 글로 함부로 추측하기가 섣부르다는 것을 알지만, 제가 질문자님의 글을 읽으며 느껴졌던 것은 질문자님의 마음속에는 늘 ‘스스로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있어오셨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바로, 직접 말씀하신 ‘공허감’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고요.

질문자님께서는 항상 삶의 목표, 나에게 정말 걸맞은 생활, 나에게 의미를 찾아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마치 그것이 없으면 삶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면서 매번 그 헤맴의 여정에서 지치고 쓰러지고, 신음하고 슬퍼하고 계신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의 의미', '목표' 같은 거창한 것들 없이도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님께서도 느끼셨던 것처럼, 사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정확한 꿈과 목표, 삶의 가치관, 이정표 등을 명확히 세워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저 친구들처럼, 곁의 누군가처럼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찾아가며 살고 있지요.

중고등학교 학생들 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성인이 된 우리들 모두 어떤 분명하고 거창한 가치관 아래 매일 같이 불타는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때로는 남들과 크게 다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때로는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둘 사이 어딘가를 적당히 오가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말미에 써주신 것처럼 진심으로 웃고 적당히만 생각하고 적당히만 걱정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삶이 의미 없고 하찮고, 미성숙한 삶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도 우리는 분명 각자의 개성과 목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적당히 살아가고 있지만,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님은 도저히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불안하고 공허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것 같지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저렇게 속 편하게 적당히만 고민하고 적당히 생각하며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정답을 미리 알려드리자면, 그런 거창한 삶의 목표가 없어도, 명확하고 멋진-열정에 활활 불타는 삶의 의미가 없어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없이도, 그저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삶의 모든 순간 완전히 충만해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분명 '나는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근거 없는, 아무런 근거 없는 그런 믿음 말이지요. 우리는 그런 깊은 믿음을 '자존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나를 닿을 수 없는 거창한 목표로 채찍질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건, 마음속 깊은 곳의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심리학에서는 우울이나 불안 같은 내적 갈등의 원인을 '억압'으로 보았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의 욕망과 욕구가 사회적 여건 때문에 충분히 발산되거나 해소되지 않고 억눌리되게 되면 그것이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신과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하인즈 코헛이라는 사람이 이야기한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에서는 억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우울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기심리학에서는, 단순히 충동과 욕구가 좌절되는 사람들 말고도, 뭔가가 '결핍'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뭔가 마음속이 결핍된-텅 비어있는 사람들도 있었더라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블랙홀이 있듯 어떤 것으로도 그 구멍을 메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본인들 스스로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쳐 나가떨어지고 있었지요.

그 구멍, 그 공허감은 바로 스스로의 존재적 가치감-가장 근본적인 자존감이 결핍된 자리였던 것입니다. ‘나 스스로가 존재할만하다’, ‘가치 있는 존재이다’라는 믿음과 느낌이 결핍된 구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메우고자 멋지고 화려한 것, 거창하고 드높은 것, '나'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도록 충만한 것을 찾아 헤매며 늘 스스로 소진되고 닳아 가게 되곤 하는 것이었지요.

어쩌면 질문자님께서도 그런 삶의 의미, 목표 같은 것을 찾기 위해 집착하는 스스로에게 지쳐가고 계신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충만감을 줄 수 있는 어떤 딱 맞는 대학, 딱 맞는 생활과 인간관계, 딱 맞는 목표와 생활 같은 것들을 찾아서 말이지요. 마치 그런 것들이 없으면 사는 것이 의미가 없고 존재가 가치 없는 것일 거라는 존재론적인 '불안'이 질문자님을 그렇게 지치도록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쩌면 질문자님이 찾고 계신 질문의 답이 진짜 훌륭한 이상(理想)에 있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짜 질문자님이 찾아 헤매 왔던 그 삶의 의미란 사실은 지금 당장 질문자님의 주변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질문자님을 충분하게 채워왔던 것에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아직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느낌을 앞으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찾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자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있을지 모를 공허감이라는 구멍은 메우려고 집착한다고 메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보다는 나 스스로의 깊은 구멍과 공허를 스스로 이해하고 끌어안아줄 때에 차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가기 위해, 메워지지 않는 스스로의 구멍을 보듬어주기 위해 어쩌면 상담자의 안내와 도움으로 질문자님 스스로를 향한 탐구를 시작해보시는 것 또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권유드리고 싶습니다. 그치지 않는 쳇바퀴에서 내려와 그동안 지쳐왔던 스스로를 위로해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실 수 있도록 말이지요.

모쪼록, 질문자님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혀온 그 우울과 공허감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흘려보내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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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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