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 난 사랑받을 가치 있는 놈일까, 방송 싫다면서 바코드 달고 현재 여기 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 내 팔을 내려보게 해 ··· "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Mnet의 프로그램 <고등래퍼 2>에 출연한 두 어린 친구(병재와 하온)의 노래, '바코드'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언뜻 봐서는 이해되지 않는 가사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병재 군(활동명 VINXEN)을 알게 된다면 바코드가 손목에 그은 자해 흔적을 나타내는 비유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노래의 전체적인 가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자책, 자해 충동과의 내적 갈등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도요. 병재 군은 평소 음악 활동을 하며 노래 가사에 자해를 암시하는 직·간접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다행히도 그의 최근 작업물에선 이런 충동이 많이 극복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음악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성장 과정과 삶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고난, 역경이 작품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요. 병재 군의 노래 가사 또한 그의 어두운 면과, 또 밝은 빛을 향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주변의 분위기에 쉽게 휘둘리는 취약한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 신문기사에서 SNS에 '자해'라고 검색했더니 약 2만여 건의 자해 사진이나 암시 글들이 올라와 있음을 확인했다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해 사진을 올리는 청소년들 중 심한 우울증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유행이라서, 남들이 하니까' 자신도 한번 해 봤다는 식의 이유를 대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겁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유행처럼 번진 무분별한 자해를 막아 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을 정도니까요. 아무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또래의 유행에 민감하다 하지만, 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해와 자살 행동은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병리가 있을 때 나타납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할지라도 자해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비자살성 자해, Nonsuicidal self-injury>라 합니다. 2013년 개정된 정신의학의 진단체계인 DSM-5에서는 이를 하나의 장애로 체계화시키기도 했을 정도로 그 빈도와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비롯,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작은 촉발 자극(precipitant)도 심각한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자해와 같은 무분별하고 그릇된 대처 방식이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 기분과 자해의 전염성 (infectivity)

기분에 전염성(Mood infectivity)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 옆에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처지고, 활달하고 기운찬 사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활력이 나는 것처럼요. 게다가, 여러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전염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자살성 자해에서는 자살에 대한 욕구나 충동, 시도가 없을 뿐이지 그 행동의 기저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흐릅니다. 청소년들이 유행처럼 자해를 하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리게 된 데는 여러 대중매체나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군중심리가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기분의 전염성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이 알려지면 대중들에서 자해와 자살 시도가 늘어나는 베르테르 효과처럼, 대중매체나 SNS를 통해 먼 거리의 일면식 없는 이들에게도 내 감정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분의 전염성은 꽤 광범위합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은연중에 퍼지고, 우리는 그들의 게시물을 보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자해 행동도 전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자해는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수단일 수 있습니다. 사실 비자살성 자해를 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격렬한 감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자해를 사용합니다. 우울감, 자책, 분노 등의 감정이 자해를 통해 주의 환기가 되며 순간 사라지게 되지요. 또, 우리 몸에는 상처를 입거나 통증을 느낄 때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이를테면 천연 진통제의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자해를 통해 체내의 진통제가 분비되면 격렬한 마음의 상처와 감정들이 일시적으로 덮이게 됩니다. 이성적으로는 자해가 해로운 행동임을 알지만, 단기적인 이득 때문에 감정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건강한 대안보다 쉽고 빠른 해결책을 선택하게 되는 거죠. 이러한 이유들로 자해가 이어지게 됩니다. 

 

♦ 비자살성 자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비자살성 자해는 일견 그리 위험하지 않은 현상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생기는 자해는 그냥 지나갈 것 같기도 합니다. '관심받고 싶어 저러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해하는 아이들을 '관심종자'라는 냉정한 말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청소년기의 치기로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는 자해 행동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해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해 행동 자체는 내면의 감정과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신호이며, 우울증이나 여러 정신병리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나 주변 사람, 혹은 자녀가 자해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면, 멀리서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은 전문적인 도움을 충분히 받은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작은 불씨가 큰 불꽃으로 변하게 되면, 이를 회복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니까요. 자해 행동은 분명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입니다. 위험이 인식되면, 가능한 한 빨리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전문적인 상담과 평가가 필요합니다. 

청소년기는 취약한 시기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자해 흔적을 SNS에 올리는 청소년들을 탓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취약한 이들에게 SNS와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력을 잘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만 '19금'을 적용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매체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지금, 이를 여과 없이 접하게 될 청소년들을 지켜주기 위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또, 대중문화를 기획하고 이끌어 나가는 이들은 문화의 파급력과 그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코드'의 노래 가사처럼, 손목에 그인 상처들을 '횡단보도' 삼아 어둠을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가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 참고 자료

1. 비자살성 자해 - 자살의도 없는 자해, 정신의학신문, 2018-8-24 
2. 10대들 위험천만 '자해놀이 인증샷', SNS서 차단해야, 중앙일보, 2018-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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