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송후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70세의 여성 M씨는 5년 전 남편하고 사별하고 혼자서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고혈압과 관절염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이 지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업 실패로 빚을 많이 진 큰아들과 이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아져 별거 중인 큰며느리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가끔씩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M씨는 5개월 전 약 2주가량 심한 감기몸살 증상을 앓고 난 후로 온몸에 기운이 없고 어지러우면서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식사도 잘 하지 못하게 되어 동네의원에서 혈액검사 등을 하였으나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증상들은 계속 심해졌다고 하며 동네의원에서 수면제 등을 타서 복용해야만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더 이상 지을 수 없게 된 M씨는 자식들의 권유에 의해 시골집과 땅을 팔고 도시에 있는 막내아들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떠난다는 것에 섭섭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M씨는 막내아들의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누워서 지냈지만 가끔 손자와 함께 놀이터로 외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아침에 M씨는 노인정에 가겠다고 집을 나간 후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아들 내외는 M씨를 찾으러 나섰다가 인근 파출소에서 M씨를 발견하였습니다. 순경에 따르면 M씨가 길을 잃은 채 길가에 앉아 있어 파출소로 모시고 왔으나 집주소도 전화번호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파출소에서 M씨는 시종일관 표정이 없었으며 아들 내외는 M씨가 치매가 걸린 것이 아닌지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젊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여기저기 몸도 많이 아프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쉽게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으레 좀 우울해지는 법’이라고 치부하면서 쉽게 간과해 버립니다.

하지만 노인들이 정신적으로 우울해지면 신체적인 기능도 악화되고 자살 위험성도 높아집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이는 특히 노인 연령층에서 자살률이 높은데 따른 결과입니다. 75세 이상 노인의 10명 중 1명 꼴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1,000명 중 1명은 실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굳이 자살이 아니더라도 우울증이 있는 노인은 우울증이 없는 노인에 비해 두 배 정도 사망률이 높습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과 기력이 떨어져 스스로 건강을 챙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우울증에 대해 사전에 대비하고 적절하게 치료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진_픽셀


다른 연령대의 우울증과 비교했을 때 노인에서의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 건강 상태에 대해 걱정이 많고 우울감 등의 기분 증상 자체보다 불면, 초조, 신체적 불편감 등의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망상과 같은 정신병적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흔합니다. 망상의 주된 내용은 죄책감(내가 죄인이다), 건강염려증(불치병에 걸렸다), 피해망상(내가 힘든 것은 다 누구 때문이다), 질투망상(부인이 바람을 피운다) 등입니다.

- 상당 부분이 신체적인 원인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뇌졸중 후에 약 20~60%의 환자에서 우울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뇌졸중 증상이 없는 노인에서도 두부 MRI 촬영을 해보면 소규모의 다발성 뇌경색이나 미세혈관 순환장애로 인한 주위 뇌조직의 변화가 흔히 관찰됩니다. 이렇게 소규모의 뇌병변이 동반된 상태에서 우울증이 발생한 경우를 혈관성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한편 노인 환자들은 각종 질병으로 인해 복용하는 약이 많기 때문에 약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 집중력과 기억력의 저하가 보입니다. 이렇게 노인 우울증 환자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지기능의 저하를 ‘가성치매’ 혹은 ‘우울증의 치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가성치매를 단순히 우울증이 심해서 나타나는 기분 증상 중의 하나로 간주했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노인에서 우울증이 심하게 발생할 경우 정말로 치매와 똑같은 인지기능의 저하를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치매에서도 역시 우울증이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 증상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처럼 계속 악화되는 것은 아니며, 적절한 치료에 의해 원상으로 회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 증상과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 증상은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입니다.
 

표_송후림


하지만 단순히 증상만 가지고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 증상과 일반 치매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경험적으로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먼저 해볼 수 있겠습니다. 만일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인지능력이 호전이 된다면,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치매일 가능성은 낮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울증이 있는 분이 실제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높습니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즐기는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려 집안에만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치매가 더 잘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이 심해서 꼼짝도 못 하는 노인에게 억지로 운동을 시키고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이 남 앞에 드러나게 되면 수치심이나 자괴감을 느껴서 오히려 더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해서 어느 정도 기력이 생기고 난 뒤에 운동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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