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너무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3달 전쯤에 유행하는 소개팅 앱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말이 잘 통하고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 이후로 연락도 잘하고, 전화도 하고,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이미 자기라고 부르고 이런저런 미래 이야기를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좀 있다 보니 짜증도 많이 내고, 거리가 좀 있다 보니 아직 못 만났고, 항상 다투는 문제는 연락 문제입니다. 얼굴도 직접 본 적이 없고 연락 만으로 3달을 버티고 있다 보니 슬슬 한계가 온 것 같기도 해서, 제가 언제쯤 만나면 좋을 것 같냐고 물어봤습니다. 막상 만나자고 하니 초반엔 적극적이던 사람이 이제는 슬슬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처음과 달라지던 모습들이 보이게 되고 느껴지게 되면서, 저만 이 손을 놓으면 끝날 것 같은 관계라는 느낌을 받았네요. 

상대방이 의심이 많고, 자기 말론 과거에 만났던 사람이 바람피운 적이 있어서 집착도 심하고, 그러다 보니 저도 그 사람에게 올인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올인을 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슬슬 저에게도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사이버 연애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볼 거냐고 물어보면 때가 되면 보겠지, 바쁘게 지나면 보겠지라고 말하면서 둘러대는데, 하나하나 설명할 순 없지만 혼자서 생각이 많아지게 되네요. 그러던 중에 답답한 마음에 익명게시판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잘 지내는 게 가장 좋기는 한데 항상 연락 문제 때문에 제가 짜증을 내다보니 상대도 이제는 연락을 잘하긴 하지만, 의무적으로 연락하는 느낌입니다. 이 관계 제가 굳이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너무 익숙해져 버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상대는 최대한 연락을 많이 하려고 하고, 여전히 좋다 하고, 제가 느끼기에는 저에게 마음을 많이 연 것 같긴 해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답답한 마음에 글을 두서없이 썼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쓰신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랜선 연애라 해도 질문자님께서 상대에게 마음을 많이 주셨나 봅니다. 조급하고 답답해하는 질문자님의 마음이 글에서 충분히 느껴지네요. 

어차피 선택의 길은 둘 중 하나입니다. 앱을 통해 연애, 결혼을 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긴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만남의 시작이 그러할 뿐이지, 결국 직접 만나 상대와 직접 마음의 온기를 나누며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면하지 못한 채로 상대와의 관계가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실제적인 선택은 질문자님께서도 충분히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얼굴을 매일 보다시피 하는 연인들도 사소한 다툼 끝에 관계가 끊어졌다, 다시 봉합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러니 아직 만난 적 없는 연인에게는 답답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클 수밖에요. 헤어질 것인가, 그대로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보다 만날 것인가, 만남을 거부당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 같지만 이 모든 선택권이 상대방에게 있으니 더 답답할 노릇입니다. 진지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상대와 대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상대를 만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그리 건강해 보이는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관계의 중심축이 상대방에 쏠려있기 때문이지요.

결국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시게 되겠지만, 저는 질문자님께서 상대의 반응에 전전긍긍하기보다 이 기회에 자신의 내면을 한번 돌아볼 기회를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질문자님께서 네*버 지식in 이나 여타 다른 연애 상담 게시판이 아니라 이곳에 이 질문을 올린 이유가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단순히 선택을 내려 달라는 질문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왜 하필이면 얼굴도 보지 못한 상대에게 3개월이나 매달려 왔는지, 내가 느낀 감정이 진짜 연애감정인지 아니면 호기심인지, 이도 아니면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사탕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인지 말이지요. 더 나아가 자신의 과거 연애사, 타인과 맺었던 관계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만남, 연애, 헤어짐의 과정에서 자신은 상대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같은 것들이죠. 과거의 연애 또한 상대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상대에게 휘둘리는 연애의 모습이었다면 현재 그 문제가 반복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과거와 내면을 돌아보는 일은 그릇된 선택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무엇인가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선택을 내리기 앞서, 차분히 최근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고 <관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살펴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의 랜선 연애뿐 아니라 앞으로의 만남들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현명한 선택을 하시고, 건강한 관계를 잘 유지하실 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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