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화에 대한 두려움, 대화공포

자기주장이 강한 이들이 주목받는 세상입니다. 유교 문화에서 유래된, 과도한 겸손과 억압의 사슬을 벗어나 다채로운 자기표현을 통해 자신을 좀 더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 미덕인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지요. 자신의 생각과 느낌, 모습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SNS와 같은 수단이 많이 발달한 덕이기도 하고요. 젊은 세대는 처음 보는 이들과도 거리낌 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 극단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이런 분위기가 참 고통이지요.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움츠러들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온몸이 굳어버리고 금세 공황상태가 되어버립니다. 타인이 자신을 주목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과도한 불안을 사회불안(social anxiety)이라 하고, 그 정도가 심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면 사회불안증(social anxiety disoder, 사회불안장애)이라 칭합니다. 

사회불안증을 가진 이들이 많이 호소하는 증상 중의 하나가 ‘대화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하게 되면 더 많이 경직되고, 긴장하며, 가벼운 대화에도 말을 더듬고, 결국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대화 자체에 대한 공포가 생겨나게 됩니다. 

‘대화공포’의 기저에 있는 생각들,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이들의 생각

사회불안증을 가진 이들은, 타인과의 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발견됩니다.

‘내가 대화하는 것을 저들이 재미없어할 거야’
‘내가 말하는 것을 상대방은 관심 없을 거야’
‘나는 원래 말을 잘 하지 못해’
‘내가 대화를 잘 하지 못해서, 저들이 나에게서 흥미를 잃을 거야’
 

그림_신재현


위의 그림은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틀로 사용하는 인지모델(cognitive model)입니다. 위의 생각들은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 즉 자동적 사고에 해당하지요.

위와 같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다면, 타인과 대화하는 모든 상황은 두려워집니다. 불안감과 초조감이 밀려오고(감정 반응), 타인의 표정 변화나 시선의 변화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도 하며, 대화를 빨리 끝내려고, 혹은 대화를 잘 하려고 하는 노력이 역설적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행동 반응). 타인과 대화하는 순간에 이런 생각들이 들게 된다면,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교감신경 항진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겠죠(생리적 반응).

대화 상황에서 위와 같은 반응들이 반복된다면, 다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더욱 움츠러듭니다. 그리고 감정, 행동, 생리적 반응이 더 심해집니다. 악순환의 쳇바퀴를 돌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대화 자체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가벼운’ 대화,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불안이 심한 사람은 가벼운 대화에 대해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진지해야/유익해야 하며, 대화를 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마음에 들도록 말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런 지나친 의미부여가 오히려 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대화공포 극복의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불안을 벗어나 타인과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무겁고 중요하고 유익한 대화보다는 본인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소한 화젯거리들을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대화가 처음부터 진중하고 완벽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대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대화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진_픽셀


‘가벼운’ 대화 시작하기

물론, 사회불안이 심한 이들에게는 가벼운 대화조차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 보지 않은 행동을 시작할 때에는 연습이 필요한 법입니다. 먼저, 자신이 가장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는 가벼운 인사를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합시다. 

오늘의 날씨(‘오늘 날씨가 참 OO 하네요.’ , ‘어제는 비가 와서 쌀쌀하더라고요.’) / 식사 여부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아침은 매일 드시고 오세요?’) / 혹은 가벼운 가십거리 (‘어제 뉴스 보셨어요?’, ‘아까 네OO에서 어떤 뉴스를 봤는데…’) 등의 대화 주제라면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대화의 시작은 위의 주제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어떤가요? 상대방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엄청난 화젯거리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평상시에 연습한 가벼운 한두 마디 정도면 충분합니다.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화 자체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대화의 책임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불안증을 가진 이들은 대화 결과에 대한 책임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을 주고받는 테니스를 떠올려 볼까요? 내가 상대에게 서브를 잘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적절하게 공을 받아넘기지 않는다면 랠리는 금세 끝나버립니다. 

대화의 책임은 정확하게 50:50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나의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것만이 어색한 대화의 이유는 절대로 아닙니다. 상대방의 대화 기술이 부족하거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사회불안이 심할 수도, 혹은 상대방에게 사정이 있어 마음이 급할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고, 대화를 주도해서 '성공적으로' 혹은 '완벽학게'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화를 더 경직되게 만드는 원인이지요.

 

재앙화 / 완벽주의를 경계하자

작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결국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게 되는 ‘재앙화’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재앙화에 쉽게 빠지는 이들은 사소한 대화의 어색함, 한순간의 교감의 좌절을 ‘앞으로의 사회생활의 실패’ , ‘직장/학교에서의 따돌림’ 혹은 ‘영원한 사회 부적응자가 될 것’이라는 파국적인 수준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화의 매 순간이 자신에게는 너무도 중요하고, 그 때문에 늘 긴장하게 되어 타인과의 사회적인 교류는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을 때 자책만 하기보다 1) 일어날 수 있는 최선의 상황, 2) 최악의 상황, 그리고 3) 그 둘을 감안한 가장 현실적인 결과를 직접 노트에 적어보도록 합시다. 대화가 어긋난다 한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잠시 기분이 좋지 않고 민망해지는 것', 그것뿐입니다. 자신이 평소 가졌던 생각에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할 때 불안해서는 안 돼. 대화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니까’라는 식의 완벽주의 또한 대화를 어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타인과 대화를 할 때, 100% 긴장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죠. 또한, 자신이 불안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끔찍한 일인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변화하기로 결심했다면, 지금 이 순간에 대화에서 느끼는 불안은 미래의 변화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소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고, 자신 또한 그러한 문제를 조금씩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일부러 대화를 틀리게 시도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대화가 ‘완벽할’ 필요는 절대로 없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고통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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