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한민국의 스트레스, 세계 최상위권이라고?

최근 대한민국의 스트레스 수준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라이나 생명의 모기업인 시그나 그룹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23개국 1만 4천여 명(우리나라는 1천 명)을 대상으로 삶의 질(웰빙지수)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는데, 대한민국의 웰빙지수가 조사국 중 23위로 최하위를 기록하였다는 거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재정 상황 인식, 사회관계에 대한 인식, 신체 건강에 관한 인식에 관한 점수가 지난 조사보다 더욱 감소하였는데, 이는 조사 대상자들이 자신을 둘러싼 전반적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 스트레스 지수(최근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 또한 대한민국이 97%로 23개국(평균 86%) 중 가장 높았으며 스트레스 원인은 일(40%), 돈 문제(33%), 가족(13%) 순이었다. 비록 여러 변인을 통제하지 않은 단순한 형태의 설문 조사지만, 삶의 질에 대한 여러 대규모 연구의 지표에서 대한민국이 번번이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많이 알려져 있듯, 스트레스는 심리적인 영향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체내의 호르몬을 교란케 하며, 여러 신체 장기의 기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사실은, 우리가 매번 겪는 다이어트 실패의 범인이 스트레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 스트레스와 다이어트, 무슨 관계가 있을까?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체내에 코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하여 식욕을 증가시킨다. 코티솔이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렙틴(leptin) 등의 작용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은 콩팥 위의 작은 기관인 부신을 자극하여 코티솔을 지속적으로 분비하게 한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평소 먹지 않는 달콤한 음식을 찾거나 더 많은 양의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포만감과 관련된 호르몬의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다이어트가 실패하는 데는 식욕 증가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변화는 체내의 대사 기능을 변화시킨다. 같은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먹는 음식이 지방질로 더 많이 축적된다. 또,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코티솔로 인해 축적된 지방은 일반적인 피하지방보다 그 독성이 더욱 강하다. 또한 축적된 지방 세포는 코티솔을 활성화하는 효소를 가지고 있어, 더 많은 지방질이 쌓일수록 코티솔이 더욱 많이 분비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즉, 만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살이 찐 사람들은 다시 쌓인 지방을 빼기가 더욱 어렵다는 말이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몸매 또한 망가뜨린다. 2000년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비만이나 과체중이 아니라도 높은 스트레스 수준과 높은 코티솔은 복부 지방의 증가와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신이 최근 겪은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체중 증가가 배만 볼록 나온 'ET 체형'을 만드는 범인일지도 모른다. 

 

만성적 스트레스는 몸을 살찌우고, 또 병들게 한다

만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과량 분비된 코티솔은 식욕 항진, 대사 기능의 변화뿐만 아니라 체내의 면역력 저하와 염증 치유기능의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코티솔의 증가는 고혈압, 높은 콜레스테롤과 혈당 수치와 관련되어 있다. 또 만성적 스트레스는 코티솔의 증가뿐 아니라 인슐린의 조절 능력을 교란시키며, 이로 인해 LDL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심혈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심혈관계 질환, 콜레스테롤 질환, 당뇨병의 증가 때문에 한해 약 80여만 명이 사망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320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식습관과 생활 패턴이 서구화되면서 대사증후군으로 인한 국민 건강 악화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대사증후군은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질환군을 뜻한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의 1/3 이 대사증후군의 진단기준에 속할 정도로 전 세대에 걸쳐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대사증후군에의 기저 원인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만성적 스트레스다.
 

사진_픽셀


다이어트, 왜 실패할까? 굶고 운동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다이어터들은 자주 요요 현상을 겪는다. 힘들게 음식 섭취를 줄이고, 땀을 흘려가며 운동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원래의 체중으로 원상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식사량을 줄이고, 평소보다 많이 운동하는 것이 다이어트의 왕도라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처럼 숨겨진 요소들의 영향을 무시해선 안될 것이다. 


1) 다이어트, 체중 조절 방법보다 스트레스 관리 먼저!

다이어트가 성공하면 고민이 다 해결될 거라고? 순서를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겪고 있는 만성적 스트레스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나,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다이어터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된다. 분명 만성적 스트레스는 다이어트의 효율을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실패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다이어트 자체가 본인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갑작스레 음식을 굶고, 평소보다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면 우리 몸은 이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여 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고, 결국 과민한 기분, 불면, 소화 불량 등의 신체 증상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은 온전히 다이어터의 몫이 되어버린다. 

건강하고 성공적인 체중 감량을 위해서 다이어트 과정에서 만나는 각종 스트레스에 대처할 방법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운동, 가까운 지인과의 교감, 새로운 것을 배우기, 명상 등 자신에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 수단을 찾아보도록 하자. 명심하자. 스트레스 관리가 다이어트의 핵심이다. 


2) 목표가 아닌, 다이어트의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기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 또한 문제가 된다. '꼭 44 사이즈를 달성해야지' '누가 봐도 날씬한 몸매를 만들어야지'라는 식의 집착이나, '지난번엔 실패했으니 이번엔 꼭...' 같은 압박감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된다. 다이어트의 끈을 조이기만 한다면, 끊어지기도 쉽다. 가끔은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한 약간의 느슨함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단계에 가까워질 때마다 체중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애' 군것질을 하는 식의 유연한 태도가 도움이 된다. 또, 이렇게 '자신에게 주는 상'은 긍정적 강화물(positive reinforcer)로 작동하여 힘든 다이어트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다이어트의 목표를 점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정 사이즈나 특정 체형을 목표로 삼거나, 다이어트를 '성공 아니면 실패'의 흑백 논리로 바라본다면 이를 달성하는 과정이 괴롭고 힘들 테다.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어도 그간의 성공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이 절반이 차 있는 물컵을 보며 '물이 절반밖에 안 남았네, 망했다'는 시각과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네, 괜찮아'는 관점은 그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이어트 자체를 '몸이 건강해지는 과정'이라고 여기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그 과정에서 운동과 식이조절을 통해 어제의 나보다 더 건강해지지 않았는가.


3) 다이어트 집착, 그 이면에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기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자신이 체중을 줄이려는 목표는 무엇인가? 그저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들에게 '예쁘고 날씬하게' 보이려는 건 아니었을까? 다이어트를 실패하면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만 같은 위기의식이 있었던 건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안테나를 타인을 향해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타인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은 타인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이어트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면, 그 이면에 있는 자신의 마음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복잡한 매듭의 실마리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 참고 문헌

1. This is why we're fat and sick : Stress in America, Denise Cummins, Psychology Today Jun 14, 2013
2. "한국 ''웰빙지수'23개국 중 꼴찌...스트레스 지수 1위", 연합신문, 2018/7/10
3. Stress and Body Shape: Stress-Induced Cortisol Secretion Is Consistently Greater Among Women With Central Fat, Epel et al., Psychosomatic medicine Vol 6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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