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에서 샘솟는다 - 랠프 월도 에머슨"

 

공황장애에 완치가 있을까?

공황장애의 완치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의학적 완치에 대한 일반론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사람에게 '완치'라는 단어는 그 병이 완전히 사라져, 평생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더러워진 방을 얼마간의 노력을 들여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면, 더 이상 더러워지지 않을 거라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의학적 완치(complete remission)의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여러 질병에서의 의학적 완치란 '병의 징후나 증상이 발견되지 않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충분한 기간 동안의 적극적인 치료 후, 더는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게 증상이 경감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병의 징후나 증상이 없는 상태는 '현재' 의학적 검사 및 면담을 통해 발견되지 않는다는 말이며, '향후 재발 가능성이 없다'는 말과는 엄연히 다르다. 이는 깨끗하게 청소한 방을 두고, 영원히 다시 더럽혀지지 않을 거라 기대하는 것과 같다.

공황장애에도 완치가 있다. 효과적인 약물 치료, 공황과 불안에 대해 적절한 대처를 배우는 인지행동치료 등의 방법들로 일정 기간 동안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면, 이를 '완치'라 부를 수 있다. 특히 공황장애는 다른 불안장애, 기분장애와 비교하여 비교적 완치의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라는 의학적 합의(consensus)가 이뤄져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공황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면, 일단 충분히 그 기쁨을 누려야 한다. 공황은 다른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것 같은, 미칠 것 같은' 공포를 경험케 하는 병이며, 치료 방향을 잘 잡는다손 치더라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완치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공황을 극복한 이들은 축하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한편으로, 우리에겐 공황장애 완치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인식할 필요도 있다. 공황장애는 완치 후에도 약 50% 정도는 증상의 재발(relapse)을 경험한다. 일상의 공포감이 사라진 후,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중에 대비 없이 다시 밀어닥친 재발의 징후는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첫 공황 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 재발을 부정하고 회피하다 더 힘든 상태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새롭게 나타난 불안의 징후를 엄청난 두려움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인다. 공황장애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자신이 가진 병의 본질을 바로 보는 것이라면, 건강한 삶을 위해 공황장애의 경과와 재발의 가능성에 대해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두려움은 무지에서 샘솟기 마련이다.

공황장애에서 갓 벗어난 이들에게 힘 빠지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완치 후에도 그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공황장애는 치료하고 제거하는 질환이 아닌, 관리하고 다스리는 질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공황장애의 완치에 대한 개념을 조금은 달리할 필요도 있다. 
 

사진_픽셀


공황장애가 재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공황장애가 재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연구에서 첫 공황(공황발작, panic attack)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스트레스를 들고 있다. 바쁘고 과도한 업무, 사람들 사이의 갈등, 치열한 경쟁 등 일상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서게 되면 인체의 자율신경계가 과잉 활성화되어 과도한 가슴 두근거림, 호흡의 불편함, 손발 저림, 전신의 경직 등 신체 증상과 공포감을 일으킨다. 다른 이들보다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성격적 특성도 공황장애의 첫 발생과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공황장애의 늪에서 벗어났다 해서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삶을 대하는 태도, 사회적 환경은 그대로일 것이며, 공황장애를 극복하며 바뀐 마음가짐과 습관들 또한 자칫하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특히 공황장애가 완치된 이들은 쉽게 '방심'한다. 치료 기간 중 자제해 왔던 술, 커피, 담배 등을 다시 시작하고, 미뤄놨던 업무에 다시 몰두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황 당시의 끔찍한 경험은 금세 잊어버리고서 말이다. 또, 타고난 성격적 특성은 다시 일상의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를 어렵게 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도 한몫한다. 다니던 직장, 과거부터 맺어온 인간관계가 변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다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게 된다. 

 

공황장애 재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1. 재발에 대한 재앙화(catastrophizing)를 경계하자

'병의 재발'과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가다 고장이 났다고 해서 원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 잠시 갓길에 세워 타이어와 엔진 오일 등을 점검하고 나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익혔던 많은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은 공포를 더 크게 만든다.

오랜만에 마주한 불안이 두렵겠지만, 첫 공황 시에 겪었던 공포와는 그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당신은 이미 공황장애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건강하게 성장한 내 마음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자. 


2. 자신이 겪었던 공황장애의 치료 경과를 돌아보자

두려움은 과거의 성공을 축소해버리고, 현재의 두려움을 과도하게 보이게 한다. 공황장애를 겪는 이들은 저마다의 치료 경과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 엄청난 공황이 나타나고, 이후로 점차 줄어드는 경과를 보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리 심하지 않은 수준의 공황이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이도 존재한다. 증상이 심해지는 시기에 어떤 치료가 도움이 되었는지 또한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 현재의 재발 증상을 기존의 치료 경과에 대입시켜 본다면, 어떤 치료와 노력이 도움이 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작업은 과거의 경과에서 증상을 악화시켰던 요인을 파악하는 일이다. 증상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 요인은 과연 무엇이었나? 어떤 스트레스가 나를 더 힘들게 했었나?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성공적으로 관리했었나? 시간과 노력으로 바뀌지 않을 요인에 매달리기보다,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거기 집중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3. 공황의 재발 - 삶을 돌아보라는 신호! 

첫 공황의 발생과 마찬가지로 공황장애의 재발도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자신의 최근 삶을 찬찬히 돌아보자.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떠안고 허덕이고 있는 건 아닐까? 불규칙한 식습관, 수면으로 생활 패턴이 망가져 있진 않나? 공황장애를 치료할 때는 조심하던 술, 커피, 담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진 않았나? 복합적인 요인들이 공황장애의 재발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불규칙적인 삶의 형태와 생활 리듬이 공황장애의 발생과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황장애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당시의 생활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관점을 조금 바꾸어 보자. 공황장애의 재발은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신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삶이 다시 깊은 수렁에 가라앉기 전, 빠져나올 방법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계시로 여겨보자. 가끔 경험하는 불편감의 출현은 바쁜 현대사회에서 잠시 멈추어 호흡을 고르며 온전히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억지로 불편감을 회피하거나 재발의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지는 말자. 당신에겐 공황장애의 재발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겅험과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가.

 

혹시 나도 공황장애?
공황발작과 불안 증상에 대해 마음건강검진 받아보세요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