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무리 좋아하는 곡이라도 알람으로 쓰진 않는다. 아까워서다. 질릴까 듣기조차 아까웠던 곡이 세상 가장 듣기 싫은 곡으로 바뀌는 데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삶을 쪼개 팔아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비애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유는 비싸다. 이를 굳이 빽빽거리며 알려주는 소리는 당연히 괴롭다.

사진_픽셀


알람은 수면 상태의 뇌를 깨우는 기능을 한다. 청각적 자극을 통해, 의식 수준을 관장하는 뇌 내 망상활성계(reticular activating system)를 활성화하여 의식의 각성을 유도한다. 잠든 대뇌에 활동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버셔야지요, 하는 신호를 퍼트리는 것이다.

우리 몸에도 알람이 있다. 자명종이 잠든 나를 깨우는 역할을 했다면, 몸의 알람은 위협에 대처하는 역할을 한다. 바로 교감신경이다. 교감신경은 위기 상황에서 발동하여 개체가 적절한 대처를 하도록 유도한다. 말하자면, 위협에 대한 생체 알람이다.   

교감 신경의 기능에 대한 꽤나 멋진 표현이 있다. 투쟁 도피 반응, 영어로 ‘Fight or flight (라임이 맞아서 더 멋지다...) response'이다.

출근을 하려는데, 차문 앞에 웬 호랑이 한 마리가 서 있다고 하자. 피 뭍은 발톱과 팔뚝만한 어금니가 망막에 맺혀 뇌로 인식된다. 비릿한 짐승의 향이 코끝을 스친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낀다. 의식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교감신경이 작동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대를 더 잘 보기 위해 눈이 번쩍 뜨이고 동공이 확장된다. 한가하게 소화나 시킬 때가 아니니 위장의 혈액이 온몸의 근육으로 몰린다. 잔뜩 수축한 근육들이 불룩거리고, 표정이 헐크처럼 일그러진다. 미친 듯 펌프질 하는 심장의 박동이 머리끝까지 느껴진다.

이제 몸은 준비되었다. 터질 듯 달아오른 허벅지로 달려 도망을 치거나 (flight), 죽어도 지각은 할 수 없는 현실에 이를 악물고 호랑이를 때려눕힌 다음 (fight) 출근을 하면 된다.

자연 상태의 인류는 끊임없는 생존의 위협에 직면했다. 이를 포착한 개체는 도피할지, 맞서 싸울지 빠르게 선택해야 했다. 찰나의 머뭇거림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생체 알람, 교감신경은 의식 수준을 거치지 않고도 빠르게, 자동적으로 조절되도록 진화했다. 흘러넘치는 아드레날린의 영향으로, 심장이 쿵쾅거리고 수축한 모근으로 인해 등의 털이 곤두서지만, 이를 느낄 틈도 없다. 교감신경이 죽음의 경보를 울리고 있다. 인간은 겁에 질린 채 도망쳐야 했다. 살아남으려면.

 

그런데, 살면서 야생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는가?

길을 건너다 달려오는 차량을 맞닥뜨린다든지, 폭행 시비에 휘말린다든지 하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현대 사회에서 생존의 위협을 마주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는 지금이 아닌, 동굴을 찾아온 범과 맞서던 태고에 머물러 있다. 200만 년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삶과 비교하면 참으로 긴 시간이지만, 진화의 관점으로 보면 찰나다. 많은 위협을 제거해 온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에 진화의 속도는 턱없이 느리다.

일상에서,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싸워 이기거나 도망쳐야 하는 상황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가다듬어 신중을 기해야 할 임무는 늘었다. 침착, 냉정은 흥분, 격정보다도 현대에 더욱 적합한 덕목이다. 인간의 삶이 그만큼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원시생활에 맞추어 놓은 자동 위험 알람인 교감신경은, 그래서 때로 성가시고 불편하게 작동한다.

‘꼬박 일 년을 준비한 시험을 치르는데, 점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다리가 자꾸 후들거리고, 귀에서 다른 소리가 들린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글이 글로 읽히지 않고 그림으로 보인다. 쓰러질 것만 같다.’

‘짝사랑하는 그와 모퉁이에서 갑자기 부딪힐 뻔했다. 웃으며 자연스레 인사하자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얼굴이 붉어져 터질 것 같다. 호흡이 점점 가빠진다. 말을 하려는데 목이 자꾸 잠긴다. 가슴이 쿵쿵거려 튀어나올 것 같다. 말 한마디 못하고 허둥지둥 자리를 피한다.’

몰래 좋아하던 이가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해서, 심장이 멎는 것은 아니다(그런 느낌은 들 수 있다.). 시험을 망친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삶의 무게에 지치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 생각들과 연계되어 작동하는 교감신경의 작용은 퍽 곤란할 수 있다. 짝사랑하는 이를 때리거나(fight), 시험 자리에서 도망칠 수는(flight)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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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치고, 사람을 대하고, 맡은 바를 수행하는 일상의 여러 일들은, 어찌 보면 일종의 위협일 수는 있다.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부정적인 결과가 상상이 되고, 이는 개체에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이 핵심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두려움을 인식한 우리 몸의 생리는 자동적으로 생존 위협 알람을 켠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신체의 생리는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긴장을 하면 안 된다는 그 생각 자체로, ‘무언가가 잘못되거나,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된다. 이러한 신호는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불필요한 긴장, 불안으로 인한 감정적 소모는,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생각과 감정, 신체가 상호작용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아무런 일도 없는 주말, 라면 두 개를 끓여서 다 먹고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었을 때를 상상해 보자. 좋아하는 프로를 보며 웃다 보니 노곤하다. 약간 양쪽의 머리가 저리면서 살살 잠이 오는 것 같다. 신체가 현재를 편안하고 안전한 순간으로 인식하여, 전신의 근육과 뇌의 혈류를 위장관으로 돌리며 생기는 현상이다. 소화가 촉진되고, 고단했던 신체와 뇌가 안식을 취한다. 아수라 백작의 두 얼굴처럼, 한 몸에서 교감신경과 반대(길항)로 작용하는 부교감신경의 작동이다.

이 부교감신경의 작동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실은 물론 고단하고 가혹할 수 있다. 그럴수록 평안할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숨이 가쁠수록 천천히 호흡하고, 신체의 긴장을 풀고 이완하다 보면, 흥분하던 생리 반응은 이윽고 진정될 수 있다. 다가올 결과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며 몸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면 떠오르는, 스스로를 불안하게 했던 마음의 생각들을 되짚어 보고, 스스로를 믿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마음의 불안이 해소되고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현실보다도, 그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과 이에 이어지는 몸과 마음의 반응으로 어려워하는 이들을 마주하면서, 이 글을 쓰고 싶었다. 스쳐가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두 번’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실제의 나는, 마음이 가두는 나보다도 더욱 강하다.

두려움에 반응하는 몸의 작동, 스쳐가는 생각들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두려움을 다독여주다 보면,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고 한 걸음 내딛을 길이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긴장되고 두려운 일일수록, 미리 결과를 생각하지 말자. 크게 한숨 내쉬고, ‘어차피 이 일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 한 번 되뇌고, 지금 내게 최선인 한 발을 내디뎌 보자. 원하지 않는 결과가 그대로 다가오진 않더라도, 닿은 발끝에서 삶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 일상생활에서, 교감신경을 진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복식호흡이다. 지금 있는 곳이 회사이든, 집이든, 지하철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눈을 감고, 몸에 뼈가 사라진 듯 힘을 빼고 앉아, 지긋이 숨을 쉬어 보자. 최대한 천천히 들이마시며, 공기가 코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와 가슴을 지나 배를 불리는 것을 느낀다. 다시 최대한 천천히 내쉬어보자. 그리고 머릿속에, 지금까지 다녀간 장소 중 가장 상쾌하고, 편안했던 곳의 느낌을 떠올리자. 그때 불어왔던 바람, 바다내음, 지저귀는 새소리... 어느새 몸과 마음은, 그곳에 있었던 그때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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