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민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반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55세 남성 B씨. 1년 전 아내가 갑상선암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B씨는 평소 예민한 편이긴 했지만, 직장 생활이나 대인 관계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었다. 몇 달 뒤 B씨의 아내는 다행히 수술경과도 괜찮아서 갑상선 호르몬제를 투여하는 선에서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이후 B씨는 자신의 모든 생활에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입면도 잘 안되고 겨우 잠들더라도 꿈을 많이 꾸고 중간에 자주 깨버리기도 했다. 자려고 하면 많은 비관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와이프가 잘 못 되면 어떡하지?’ ‘아이들 결혼은 어떻게 시키지?’ ‘나도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등등 상상의 나래를 타고 극단적인 생각들이 맴돌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고 피곤하기도 했다.

나름 직장 내에서 동아리 활동도 하고,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 모임을 갖기도 했지만, 덧없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가 무기력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운동도 꾸준히 해서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이 지낸다고 믿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B씨가 가장 걱정되는 문제는 자꾸 일상적인 문제를 깜빡깜빡하는 건망증이 생겼다는 것과, 일에 집중할 수가 없고 주의가 흐트러져서 조기에 치매가 온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B씨는 근처 내과를 찾아 여러 가지 혈액검사와 영상 검사, 신체 검진을 받았지만, 딱히 큰 신체적 문제에 대해 발견하진 못했고, 정신적인 문제가 걱정된다는 내과 선생님의 권고를 듣고 치매 등의 평가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였다. B씨는 불안하고 걱정이 많다는 것과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 것을 토로하였지만, 주관적인 우울감이 있다거나 우울증이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우울증의 증상은 주관적인 우울감, 흥미나 즐거움의 감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흔히들 잘 알려져 있는 식욕, 수면리듬의 변화, 초조한 기분, 활력의 상실, 무가치감 또는 죄책감, 죽고 싶은 마음, 사고력과 집중력의 감소뿐만 아니라 불안감, 만성통증, 성기능이나 욕구 장애, 혈관운동성 문제, 여러 가지 신체질환에 대한 민감성, 강박적 문제와 같은 부분들이 중복하여 나타날 수 있습니다.
 

표_우울증의 증상들


이 증상들은 나이에 따라서도 다른 특징들을 보입니다. 중년 이후의 우울증에서는 보다 젊은 사람의 우울증에 비해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나, 실제적인 소화불량, 두통, 어지러움, 근육통 등의 신체증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죠.

또한 우울해도 스스로 우울하다고 표현하는 비율이 낮습니다. 이는 사회 문화적 특성상 나이 들어 우울함을 표현하는 자체에 대한 자기 방어적 이유일 수도 있고, 중년기 이후 우울증의 문제를 간과하는 문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과수면보다는 불면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도 들기 힘들고, 1-2시간만에 자주 깨고, 꿈도 많이 꾼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다시 잠이 들기 힘이 듭니다.

집중력의 상실이나 기억력의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납니다. 

 

저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중년이나 노년층에서 인지기능 장애가 있다며 내원한 경우 이 것이 진짜 기질적인 문제에 의한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 장애냐? 아니면 우울증에 의해 나타난 인지기능 저하 또는 가성 치매냐? 아니면 두 가지의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느냐?를 감별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합니다.
 

표_치매와 우울증의 감별 포인트


당연히 치매나 기질적 문제에 대한 인지기능 장애로 판단된다면, 그에 따른 치료를 해야겠지만, 위의 사례처럼 인지기능 장애가 우울증에 의해 나타난 하나의 증상으로 판단된다면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적입니다.

인지기능장애가 있는 중년 이후 우울증 또는 가성 치매에서, 우울증만 잘 치료해도 건망증이나 집중력이 상당 부분 호전됩니다. 다만 우울증이나 불면이 장기간 있었을 때 실제로 치매 발생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질환이 그렇듯 우울증 또는 치매와 관련한 문제들도 빠른 진단과 치료가 미래의 더 큰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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