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약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어"

I  take my pills and I'm happy all the time, I'm Happy all the time
약을 삼키면 항상 기분이 좋아, 항상 기분이 좋아 

I love my girl but She ain't worth the price... We take strange things to feel normal
여자 친구가 있긴 한데 썩 만족스럽지 않아... 우리는 평범함을 느끼려 이상한 짓을 하지 

미국의 밴드 Weathers가 부른 <Happy pills>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고, 외롭지 않은데도 채워지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 'Happy pills'을 삼킨다고 하지요. 이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한 알의 약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 올까요? 행복해지는 약은 인류의 꿈이자, 여러 영화와 예술 작품들에서 흔히 사용되는 극적 장치입니다. 물론 예술 작품에서의 'Happy pill'은 부정적인 장치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요. 

자, 여러분의 손에 작은 알약이 들려 있다 가정해봅시다. 이 약은 세상의 근심과 걱정, 불안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약이라고 하네요. 당신은 이 약을 삼킬 건가요?

영화 <아일랜드>는 '가공된' 지상낙원의 주인공을 묘사합니다. 건강하고 멋진 미남, 미녀들이 모여 사는 영화 속 세상은 질병과 걱정, 고뇌가 없는 완벽한 곳이지요. 낙원에 사는 이들은 때에 맞춰 약물을 투여받고, 고통스러운 마음과 정서를 느낄 틈도 없이 행복은 유지됩니다. 이른바 '행복해지는 약'인 셈이지요. 완벽한 지상낙원, 거기다 마음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알약. 어떻게 보면 천국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진_픽셀


행복해지는 약, 과연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약이 영화 속에서만 존재한 건 아닙니다. 행복해지는 약,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마약입니다. 코카인, 헤로인, 마리화나 등의 약물은 사용과 동시에 사용자에게 다행감과 고양감을 주지요. 기분이 붕 뜨고, 나른해지며 만사 걱정이 사라지는 경험이 마약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효과만 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Happy pill' 그 자체가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도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니 'Happy pill'에 속할 수 있겠습니다. ADHD로 인한 집중력 저하와 충동성을 줄이는 메틸페니데이트 계통의 약물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최근에는 생존 그 자체를 넘어 삶의 질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Happy drug'은 발기부전 치료제, 탈모 치료제, 금연 의약품 등 삶의 질과 관련된 다양한 증상을 개선하는 약물들에 붙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Happy pill'은 약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울함과 관련된 뇌 부위를 자기장이나 전류로 직접 자극하여 기분을 향상시키는 rTMS(경두개 자기장 자극)나, tDCS(경두개 직류 자극) 등이 우울증의 치료 방법으로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외부에서 뇌의 한 부위에 직접 전선을 연결해 전류로 자극하는 DBS(Deep Brain Stimulation)가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우울증의 치료 방법으로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행복을 약으로 얻을 수 있을까?

과연 행복을 약이나 기계장치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가 올까요? 작가 유발 하라리는 최근 그의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행복은 그저 생화학적 반응일 뿐이며, 인류의 발전이 '인위적인 행복'의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 따라, 분명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술들이 개발될 것입니다. 성공적인 미래도 있겠지만,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처럼 비참한 현실의 도피처로 거대한 가상현실을 선택해 살아가다, 결국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행복을 특정한 물질, 실체가 있는 대상으로 규정하기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항우울제를 비롯한 여러 정신과 약물들은 특정 신경전달 물질을 조절하거나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행복감'과 관련된 미묘한 감정들을 모두 조절하지는 못하지요. 우울증 치료에 사용하는 기계 장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약은 한순간에 희열과 다행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지만, 한 순간의 쾌락이 가져 올 후폭풍은 굉장히 파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을 획득하고 소유하려는 움직임은 행복이라는 것을 특정 수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삶의 행복이란 손에 움켜쥐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와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다가가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일지도 모릅니다. 또, 행복은 단조로운 한 가지 느낌의 조합이 아닙니다. 다행감, 편안함, 즐거움, 기쁨, 활기 등과 같은 수많은 느낌들의 조각 모음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감정에 대한 신체의 미시적인 메커니즘도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복합적인 감정과 느낌들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은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도 먼 미래의 일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행복을 약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그 대답은 'NO'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대한 흑백논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행복해져야 한다는 관념은 우리를 행복이라는 단어에 갇혀버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은연중에 가진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과 자기 암시가 오히려 불행을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파랑새>에 등장하는 두 어린 주인공들이 결국 파랑새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듯, 행복은 내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이미 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행복해져야 삶이 만족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작은 것들에 만족하고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 행복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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