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11월 중순,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수능 칠 때가 다 되었구나.’ 하고 말이지요. 수학능력시험을 치렀던 소위 ‘수능세대’들은 예나 지금이나 11월이 되면 어느 추운 아침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가방을 메고 시험장소로 향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수능은 전 국가적인 이벤트에 가까워졌습니다. 여전히 수능은 시험을 치는 이들에게 청소년기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최후의 관문, 어쩌면 ‘끝판 대장’ 같은 느낌을 주는 거대한 그 무엇이며, 다른 나라보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큰 우리나라의 정서상 수능의 의미는 시험 그 이상입니다.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11월이 되면 시험을 격려하는 문구가 담긴 엿이며 초콜릿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언론에서는 당일의 날씨와 수험생들의 분위기를 보도하곤 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수능은 우리나라의 빅 이벤트인 것 같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수험생들은 죽을 맛입니다. 당장 저 문만 열면 ‘자유’가 눈앞에 있을 것만 같은데, 그리 쉽게 통과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단 하루 만에 치르는 시험 앞에 수험생들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낙타가 된 것처럼 좌절감부터 들기도 합니다. 수능을 처음 치르는 학생들은 더욱 그럴 테고요. 처음 느껴보는 들뜬 분위기, 국가적인 관심이 자신을 향해 집중되는 느낌은 평온함을 잘 유지해온 수험생들도 뒤흔들기 일쑤입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흔들리는 경우도 많지요. 시험의 원칙은 ‘알고 있는 그대로 풀어낸다’지만, 실은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낯선 장소, 낯선 환경에서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시험이 끝난 후에도, 결과에 상관없이 이 스트레스는 계속됩니다. 시험이 끝나면 머릿속은 더 복잡해질지도 모릅니다. 예전엔 대수롭지 않았던 것들이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저의 첫 수능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는 수능 점수만 물으시곤 속상함에 표정이 굳으신 채로 약주를 드시러 가셨습니다. 당신의 안타까움의 표현이었겠지만, 섭섭함의 여운은 참 오래도 갔었거든요. 가장 가까운 이들의 위로가 가장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치른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또 애도하라

큰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꽤나 지친 상태입니다. 수능 시험이라는 큰 스트레스가 몸을 휘감고 지나간 후에도 체내의 스트레스 호르몬은 금세 사라지지 않아 얼마간은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어쩌면 아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족들의 눈치와 집안의 분위기에 주눅 들고 상처 입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주변의 지지나 격려, 그리고 무언의 위로가 꼭 필요한 상태입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자녀에게 ‘시험 잘 봤어?’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누가 모를까요.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녀의 삶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고, 다시 새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을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비로소 맞이하는 결실은, 시험의 성패를 떠나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 스스로 그 길을 인내하며 걸어온 아이가 참 자랑스럽다는 것. 아이가 껍질을 깨고 건강한 성인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 부모가 모두 진심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지나간 힘든 날들을 잊고 싶어 합니다. 자녀들에겐 졸음을 참아가며 외웠던 영단어, 허리 높이만큼 쌓인 문제지, 살벌한 경쟁의 나날 같은 것들이겠지요. 하지만 고통이 삶의 진정한 의미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애도(bereavement)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많은 것들을 참아가며 오늘까지 온 자녀를 위해, 참으로 안타깝고 아픈 마음으로 자녀가 겪어낸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진심을 담은 위로가 도움이 될 겁니다. 기쁨과 애도, 이 모두에 공감이 담겨야 함은 물론이겠지요.

 

결과에 대한 기대와 실망, 모두에게 독(毒)

사실 자녀들에게 가장 두려운 건 절대적인 시험 성적이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가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들의 시선은 그 누구보다 더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인생에는 더 높고 험한 산들이 있는 걸 알지 못한 채 낮은 산등성이의 정상만을 바라보며 겨우 올라온 아이들이기에, 한동안 시험의 결과는 무척 민감한 주제가 됩니다. 저도 첫 수능에 실패한 후 인생의 모든 성공과 실패의 잣대가 수능 성적, 출신 대학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삶 전체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지만 당시에는 결과에 대한 주위의 기대와 실망이 모두 마음에 상처로 남았던 기억이 있네요.

결과에 대한 시선을 조금은 거두어 봅시다. 부모 자신이 시험의 결과에 대한 과도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친 아이들에게는 결과에 대한 기대와 실망, 모두 독(毒)일 뿐입니다. 자녀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할수록, 기대와 실망은 어쩔 수 없는 감정입니다. 대한민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자녀의 삶에서 꽤 오랜 시간 노력해 온 시험이 끝났고, 다시 그 경험을 딛고 새로운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결과에 끌리는 부모 자신의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는 노력(distancing)은 마음이 사소한 것들에 휩쓸리지 않도록 돕는, 모든 심리치료에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눈앞의 것들에서 좀 더 뒤로 물러나 삶의 전체적인 면모를 바라보게 돕는 부모님의 태도는 아이들에게도 큰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현대 심리치료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ACT)에서 이야기하는 은유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종이의 구석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봅시다. 그 원 안은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정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싸우는 곳이지요. 지금껏 자녀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그 안에서 ‘수능’이라는 괴물과도 싸웠겠지요. 우리는 삶에서 마주치는 많은 문제와 싸우고, 때로는 도망갑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잠깐, 우리 작은 동그라미에서 조금만 나와 볼까요. 원 안에서 걸어 나온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갈등은 계속해서 일어나 마음의 한구석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전쟁터를 벗어나면 광활한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능을 준비할 때면 시험과 목표 성적, 대학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 여기기 마련입니다. 수능이 중요한 시험인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그만큼 시험, 진학, 진로가 뒤엉킨 영역을 벗어나 시선을 돌릴 수 있다면 삶에는 엄청난 가능성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험 결과에만 천착하기보다 삶의 더 큰 공간을 차지하는 여백을 자녀와 함께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에만 매진해 온 아이들에게 더 큰 시각을 나누어 주는 것이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설령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인생은 흐릅니다. 아니, 쇼는 계속되어야 합니다(Show must go on). 그룹 퀸(Queen)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는 지병으로 삶이 저물어가던 때에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외쳤습니다. 어쩌면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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