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남학생입니다. 제가 과거에 목욕탕에서 한 번, 밭에서 한 번, 그리고 집에서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을 쓰러졌는데요, 목욕탕이나 밭에서는 쓰러지고 나서 시간이 흐르니까 괜찮아졌었는데, 집에서 쓰러졌을 때는 정신은 있는데 숨이 막히고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정말 죽는 거 아닐까 무서웠습니다. 옆방에 있던 누나가 119를 불러줘서 응급실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혈액 검사, 소변 검사, CT다 해봤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과호흡증후군일 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마음 편히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도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고나서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밤에 제 방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저번처럼 될까 봐 무서워서 방문을 열고 한참을 뒤척여야 겨우 잠에 듭니다. 그리고 학교에선 평소엔 괜찮다가도 합반을 하여 학생들이 많은 교실에 있으면 갑자기 긴장되고 목에 무언가 끼어 있는 느낌을 받으며 답답해집니다. 하교 후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도 그동안 문제없이 잘만 다녔던 거리인데도 멀게 느껴지고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듭니다.

전 대체 어떻게 해야 전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글에서 질문자님의 답답함이 느껴져 저도 참 안타깝습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은 또 다른 공포를 만들어내지요. 이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고, 조금씩 깊이 빠져드는 늪과 같습니다. 

질문자님의 과거 지병 여부나, 세 번 쓰러졌을 당시의 상황들을 알 수 없어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질문자님께서 대학교 1학년의 나이이고 다른 병이 없다고 가정하고 말씀드릴게요. 질문자님의 증상을 보면 단순한 과호흡보다는 공황장애의 초기 증상에 가까워 보입니다. 공황장애에서는 갑작스러운 신체적 증상(전신의 긴장,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과 이로 인한 불안을 겪은 이후,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갑자기 쓰러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과도한 걱정으로 삶의 반경이 점차 좁아집니다. 질문자님처럼 잘 다니던 곳도 불편해지고, 더 심해지면 답답함이 느껴지는 장소를 점차 피하게 되는 경과를 밟기도 하지요. 심지어 집도 편하지가 않고요.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마음 편히 먹으라’는 말이 그리 쉽진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현재 느끼는 증상이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난다고 느끼면 더욱 그럴 테죠. 글을 보면서 질문자님께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실체가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 

공황장애에서 나타나는 심한 두려움을 공황(혹은 공황발작)이라 합니다. 공황은 아무 연유 없이 불쑥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지 촉발 요인과 지속 요인이 비교적 분명한 편입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최근의 심한 심리적, 신체적 스트레스입니다. 대개 첫 공황을 겪는 상황은 평소보다 더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과한 업무, 학업, 대인 관계 문제 등에서 연유한 것이지요. 질문자님의 쓰러진 세 번의 경험 중 세 번째의 경험이 공황에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전후의 스트레스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 분명 긴장과 불안을 촉발한 요인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공황의 윤곽을 조금씩 찾아내 보는 겁니다. 

공황은 사실 흔한 경험입니다. 일반적으로 살아가며 다섯 명 중 한 명은 공황을 경험한다고 해요. 그들 중 대부분은 공황을 ‘지나가는 경험’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삶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한 번의 공황에서 점차 공황장애로 발전하는 이들은 대개 공황을 겪은 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늘 긴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긴장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 작은 불편함마저 공황이 시작되는 신호로 여겨 불안감이 급상승하게 되지요. 신체 증상들에 대한 오해석이 공황을 키우는 가장 주된 요인 중 하나입니다. 

공황은 결코 죽음, 심장병, 기절 등을 경고하는 신호가 아닙니다. 단지 최근 내 몸과 마음이 무리하고 있다는 경고등이며, 정상적인 생리반응일 뿐이지요. 커피, 술, 담배 등을 조절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심리적 긴장을 이완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공황장애의 초기에는 자신을 둘러싼 스트레스 요인들을 잘 파악하고, 병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더 깊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건이 되신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자신의 현 증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받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잦은 불안에 일시적인 약물치료는 큰 도움이 됩니다. 공황과 불안에 대한 인지적, 행동적 대처를 배울 수 있는 인지행동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공황장애야말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병입니다. 

힘내시고,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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