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미아에 공감하는 이유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 20세기폭스코리아(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부터 인터스텔라까지 고립무원의 대명사 멧 데이먼을 헐리우드가 또 한번 외딴 곳에 가두었다. 그것도 머나먼 화성에, 광속으로 날아가도 20분은 족히 날아가야 하는 멀고 먼 화성에 혈혈단신으로 말이다. 인간은커녕 다른 어떤 생명체조차 없는 그곳에 홀로 버려졌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마션’ 이야기이다.

화성 탐사 도중 발생한 강력한 모래 폭풍으로 팀원들은 비상 탈출로 지구로 복귀하게 된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멧 데이먼)는 폭풍 속에 휩쓸려 죽은 줄 알고 긴박한 탈출에서 열외가 되었고, 다음날 다른 팀원들이 떠난 황량한 붉은 행성 모래더미 속에 파묻힌 채 눈을 뜬다. 간신히 기지로 걸어 들어온 뒤 셀프 카메라를 켜 일기처럼 기록을 남기며 그는 말한다.

“나는 죽을 거에요. 심사숙고하고 고민해보았지만 어쨌든 결국 죽게 될 겁니다”

화성에서 조난이라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영화 내내 지구에서 마크 와트니의 심리상태, 정신상태에 대해 염려하고 묻는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자포자기한 듯 했던 혼잣말과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주인공은 심하게 건강한 멘탈을 보여준다. 보는 관객이 다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이 생존에의 의지를 놓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가히 경이로울 정도의 정신력이다. 시종일관 황량하고 거대한 화성의 붉은 모래 계곡을 비춰내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직접 고립된 듯한 공포감을 느끼는 관객들은 와트니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사실 비슷한 상황-고립된 우주미아 상태에서의 생존 스토리를 그려낸 또 하나의 SF 걸작이 작년에도 개봉을 했었다. 역대 SF 영화 중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그래비티'이다. 우주미아라는 아득해질 정도로 절망적이고 공포스러운 상황에 대한 정신적 공황을 그려낸 표현은 마션보다는 그래비티에서 더욱 촉각적으로 표현되었다.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공포스러운 적막과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그 안에서 문자 그대로 ‘표류’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영화관 객석에 앉아 우주의 공포를 체험한다. 그 공포와 갑갑함에 뜻 모를 불안감이 뱃속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우주에 가본 적은커녕, 평생 우주에 가볼 일이라고는 로또에 당첨 될 확률만큼이나 요원한 우리들이 홀로 우주에 남겨진 맷 데이먼을, 산드라 블록을 바라보며 그 고독함에 ‘공감’한다.

사진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우주에 홀로 남겨진 그들의 공포에 공감하며 우리가 느끼는 정서는 ‘버려짐’, ‘홀로 남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준 이 두려움의 정체는 생각보다 깊은 뿌리에서 우리와 함께 자라온 정서이다. 이 두려움은 간혹 제대로 방어해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강렬한 불안감으로, 죽을 것 같은 공포감으로, 때로는 부적절한 비현실감과 고독으로 드러나게 되기도 한다.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 중에는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이 극도로 심해지며 숨이 막히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경험하는 이들이 많다. ‘공황 발작’이라 일컬어지는, 예기치 못하고 폭발적인 공포감으로 대표되는 이 증상은 대충매체에서 공황장애로 병력을 밝힌 몇몇 유명인들에 의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공황발작을 겪는 환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또 하나의 증상 중에는 ‘광장 공포증’이 있다. 급히 빠져나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즉시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장소에 혼자 있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광장 뿐 아니라 공공장소나 실내에서도 쉽게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광장 공포증이나 공황 발작을 경험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증상의 발생이 지하철이나 광장, 대로 같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는 곳에 홀로 고립된 것 같은 공포감’을 호소한다. 숨이 차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곧 이러다 심장이 멈춰 죽어버릴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주변의 웅성웅성대는 군중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틈으로 빠져버려 홀로 남게 되는 것 같은 공포스러운 고독을 느낀 다는 것이다. 마치 인공위성 궤도에 홀로 남겨져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듯, 화성에 홀로 버려져 붉은 모래폭풍에 휘감겨 날아가듯, ‘군중 속의 고독’을 체험한다.

Kagan이나 Manassis등은 이러한 공황장애나 광장-사회 공포의 뿌리를 부모와의 관계-애착관계형성이라는 관점을 통해 분석한다. 어린 시절의 애착관계 형성의 문제가 ‘버려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낸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부모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부모에게 자신의 안전을 의탁하며 자라난다. 부모에 대한 의존성을 통해 낯선 것에 대한 행동억제(behavioral inhibition)를 방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애착관계의 형성이나, 불안이 심한 부모로부터의 양육은 행동억제가 있는 아이들로 하여금 외부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내재화시킨다. 언제나 보호받고 있다는-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안전한 애착관계가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에 내재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내재화된 불안은 아이들이 자라나며 부모가 언제나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병적으로 표출된다. 자신들의 불충분함과 두려움을 부모에게 투사하며 그 분노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서 부모를 몰아내, 결국 안전을 제공 받기 위해 의존해야 할 대상을 상실하고 자신들만 남게 될 것을 걱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 건강한 아이를 기르는 법에 대한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부모가 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준비 없이, 부모가 되었다는 자각보다도 먼저 덜컥 부모가 되어버린다. 우리 모두 준비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자라나 준비되지 못한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기른다. 그리고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준비되지 못한 불안정한 부모에게서 배우는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의 무의식에 새겨지고 이를 무의식 중에 다시 우리의 아이들에게 전하게 된다. 비록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들과 같이 그 두려움이 자라나 공황발작으로 폭발하거나, 정신증적으로 붕괴되기까지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가슴 속 깊이 두려움이 억압되어 모두의 가슴 속에 조금씩은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누운 자리에서 뒤집기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한없이 나약한 몸을 요람에 의탁한 채 낯선 두려움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크게 울부짖는 것 밖에 없어 울음을 터뜨리던 기억. 아무리 울어도 대답이 없어 이 세상에-이 우주에 홀로 버려진 듯한 극한의 공포가 남긴 기억.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 모두는 화성에 버려진 고독을 맛본 적이 있다.

로빈슨 크루소나 캐스트 어웨이 같은 조난-생존 영화와 같은 맥락에서 마션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화성에 남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 지구가 마음을 모으고 탐사팀원 모두가 목숨을 거는 모습에서처럼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구조 영화의 맥락에서 마션을 바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억 킬로미터라는 거리, 그 어떤 생명체도 공존하지 않는다는 고독감은, 고립상황이 주는 막연함을 무인도나 전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공포로 제공한다. 그 공포는 관객들로 하여금 심연의 외로움을 자극하는 것이다. 잊혀져 있던 어린 아기의 겁에 질린 울음 소리를 상기시킨다.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지고만 있다. 지구 반대편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에 직접 날아가는데도 이제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 마음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도시에 빽빽한 인구가 숨 막힐 듯 서로 엉겨 붙어 밀려들수록 마음 속의 공허함은 더욱 커져만 간다. 영화 스크린 속의 우주미아에게 이입하여 느꼈던 두려움이 영화관을 나와서도 한동안 가슴을 떨게 하였다면, 당신은 스크린 너머, 차가운 도심 속에 버려진 당신 마음 속의 작은 아이를 슬몃 엿보았는지 모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