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는 약만 주고 재우는 곳 아닌가요? 상담이 필요하면 상담 센터로 가야죠.”

정신과 진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가끔씩 이런 편견을 접한다. 물론 여러 가지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기전이 하나둘씩 밝혀짐에 따라, 약물 요법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투약이 정신과 치료의 전부는 아니다. (정신과 약물이 사람을 잠재우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적절한 약물 치료나 기타 생물학적 치료와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정신 사회적 치료가 합쳐질 때 치유의 효과가 더 좋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로부터 세상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방법들이 전해 내려 왔다. 명상이나 참선, 다도, 크게 보자면 암시와 카타르시스를 이용하는 구병시식이나 굿 역시 이러한 방법에 속한다고 하겠다. 다만 이 중에서 정말로 호전이 일어난다고 명확히 증명된 방법은 불행히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언어나 그 밖의 소통 방식을 이용하여 마음을 치유하려는 수많은 심리학적 시도들이 등장하였다. 정신의학의 역사도 이런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하는데,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로부터 출발한 정신분석과 분석적 정신치료, 제이콥 모레노 Jacob Moreno 의 심리극, 아론 벡 Aaron Beck 이 고안해 낸 인지 치료가 이즈음 등장한 대표적인 치료법이다. 프로이트나 모레노, 벡은 모두 정신과 의사로써 좀 더 체계화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마음의 증상을 다루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이 만들어낸 치료법들은 점차 발전, 보완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정신과 진료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종종 아픈 나의 마음에 적절한 치료가 무엇인지 몰라서, 혹은 어떤 치료법이 존재하는지 몰라서 한참 동안을 혼자서 가슴앓이 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과 마주치곤 한다. 지금도 가슴을 부여잡고 도움의 손길을 찾아 해매고 있을지도 모를 이들을 위해 현재 정신과에서 행해지는 검증된 여러 가지 치료법들에 대해 앞으로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사진 픽사베이

1. 약물치료

“나는 슬픔에 잠겨 있을 때의 평온함이 그리워.”

시애틀 출신의 락 밴드 '너바나 Nirvana' 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 Kurt Cobain 은 어린 시절 에너지가 넘치고 산만한 아이였다. 의사는 커트에게 ‘메틸페니데이트’ 류의 약을 처방하였으나 부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에게 약을 먹이지 않았다. 부모가 이혼을 한 7~8세 무렵부터 커트는 집안의 골칫덩이가 되기 시작했다. 성격은 내성적이면서도 점차 공격적으로 변했다. 상점 창문을 깨뜨리고, 술을 훔쳐 마시고, 불량한 또래들과 어울리며 대마초를 피웠다. 지체장애인을 성폭행하려고도 하였으며, 철길에 누워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밴드가 성공 가도를 달릴 무렵 그는 이미 헤로인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였으며, 결국 27세의 젊은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심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인물이 행실장애, 약물 중독으로 발전해나간 전형적인 일대기이다.

커트 코베인의 사촌이자 정신건강 전문 간호사인 비벌리 코베인 Beverly Cobain 은 그에게 주의력결핍장애 이외에 또 다른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어린 시절 주의력결핍장애 진단을 받은 커트는 이후로 조울병, 즉 양극성 정동 장애를 함께 진단 받았다고 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양극성 정동장애는 종종 공존한다.)

너바나가 남긴 곡들을 살펴보자면 우울감이나 자기 비하, 혹은 조증 상태의 고양감이 스며든 감성이 쉽게 눈에 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리튬’이라는 노래 제목인데 ‘리튬’은 양극성 장애에 사용하는 치료 약물 가운데 하나이다. 커트 역시 자신이 조울병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가 리튬을 투약했다는 증거는 없다.

만약 커트가 ‘대마초’나 ‘헤로인’ 대신에 ‘메틸페니데이트’나 ‘리튬’을 시기 적절히 복용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의 우울감과 고통, 파괴적인 삶의 모습이 단지 약물 치료만으로 전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으리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인 소인 이외에도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쌓인 경험, 낮은 자존감, 혼란스러운 결혼 생활, 집안에 내려오는 자살의 가족력, 술과 마약 의존 등이 한데 어우러져 그를 점점 더 벼랑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다만 조울병과 중독에 대한 약물치료를 적절히 받았더라면 그리 일찍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생물학적인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정신과 질환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양극성 정동장애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이외에도 조현병 (정신분열병), 강박장애, 뚜렛과 틱 장애 등이 그 예이다. 이렇게 생물학적 원인이 크게 작용하는 질환들에서는 기본적으로 약물치료가 권장되며, 많은 경우에서 필수적이다.

약물치료는 여러 정신 사회적 치료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효과가 빠르고 시간과 노력이 적게 든다.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거나 갈등과 맞설 필요가 없다. 우울증에 빠진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정신 사회적인 접근에서는 이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킨 초창기 유아 시절의 애착이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사고를 끊임없이 파헤칠 것이다. 반면에 약물 치료에서는 우울감을 만들어 낸 뇌 속 화학 물질들의 불균형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연금술사들이 말하는 엘릭서 Elixir, 즉 어떤 병도 완벽히 고치고 영원히 살게 해주는 만능의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격 특성 전반에 새겨진 깊은 고통과 갈등에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다른 치료가 병행되어야만 한다.

 

다음 기사에서는 '정신 분석'과 '분석적 정신치료'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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