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윗집이 집 천장으로 통하는 문을 만들어서 그 입구를 통해 수십 명의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가고, 아빠가 본인을 죽이려고 독극물을 밥에 몰래 넣고 갔으며, 그걸 먹은 후부터 밥을 먹을 수 없다면서 식사를 하지 않고 쌀죽만 조금씩 드시면서 6개월간 10kg 이상이 빠져 현재 40kg도 되지 않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본인을 왕따시키고 뒷얘기 한다고 말하고, 언니에게도 아빠가 밥에 독을 넣는 걸 봤다고 말합니다. 환영을 본 것처럼요. 도둑들이 본인이 집에 있는데도 들어와서 시도 때도 없이 훔쳐가는 소리도 들린다고 합니다.

가족들과 강제입원을 시도했었는데, 병원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공격성 전혀 없이 차분하게 본인은 문제없고 남편이 정신병자이며 범죄자라고 말합니다. 물론 아빠는 전과도 없고, 정상이죠. 본인의 완전한 망상일 뿐이죠. 결국 강제입원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거부당했고, 그 이후 증상은 훨씬 심해졌습니다.

오늘 새벽엔 급기야 아빠가 본인을 죽이려 한다며 짐을 싸들고 나와 부동산에서 원룸을 구하려 하다가, 부동산에서 얘기해보니 뭔가 이상해서 계약 거부를 당했다 합니다. 그러다 본인이 응급실로 가서 그냥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입원시켜 달라고 우기기만 하다가 결국 온 가족이 출동해서 정신과 입원을 원한다고 했지만 자살시도나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행동이 없었다고 거절당했네요. 

정신과 강제 입원은 누굴 죽이고 때려야만, 아니면 자살 시도를 진짜 해야만 가능한 것 같네요. 먹지도 않은 독극물 타령을 하며, 밥을 먹지 않아 몸무게가 30kg가 돼도 입원이 불가하다 하니... 어찌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정말 어려운 상황이네요. 작년에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강제 입원 자체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환자분은 제대로 된 치료를 적시에 받기가 더 어려워졌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의학적으로 필요해서 강제 입원을 시킨 경우에도, 나중에 국가로부터 입원이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 의사도 이전보다 방어적으로 진료하고 있죠.

일단 불확실한 부분들이 좀 있네요. 망상장애라고 하셨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으셨다면 약물 치료를 권했을 상황입니다. 그런데 적어주신 글에는 약물 치료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네요. 그래서 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답변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연세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또 어머니가 얼마나 오랜 기간 망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똑같이 망상이 생겼더라도 연령에 따라서 원인 질환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만약 40대~50대인데 처음 증상이 나타났다면, 말씀하신 대로 망상장애 또는 망상이나 환청이 동반된 주요우울장애일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어머니가 60대 이상이신데 이런 증상이 처음 나타났다면, 망상장애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치매나 뇌종양 등 뇌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현병이나 조울증으로 불리는 양극성 정동장애는 더 이른 나이에 발생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를 처음 본 전문의는, 일단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 머리 MRI 등 필요한 검사를 권유했을 것이고, 그동안은 통원치료를 하면서 약물 치료를 하라고 권유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검사와 통원치료를 권유했는데, 환자가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증상이 악화된다면, 전문의가 입원을 권유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정상인 척 연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가족들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서로의 얘기가 너무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의사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처음 본 환자라면 더 조심스럽게 되죠. 그러니 사진 같은 객관적인 자료를 준비해 오신다면, 입원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각 지역에는 국립정신병원이 있습니다. 국립정신병원은 강제입원 심사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강제입원 심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죠. 근처에 있는 국립정신병원을 방문하셔서 진료를 보시고, 입원치료 가능 여부를 확인하시는 것도 방법일 듯합니다. 만약 국립정신병원에서도 강제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강제입원은 어렵지 않을까 하네요.

입원치료가 중요한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래치료가 가능하다면, 외래치료를 하다가 입원치료로 바꾸는 것이 환자와 가족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하더라도, 언젠가 퇴원을 하실 거고, 퇴원을 하신 이후에는 함께 살아야 하니, 이런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셔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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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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