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홍종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아이 바르게 키우는 법. 이런 육아강좌에 어김없이 들어가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제대로 하는가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잔소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른인 나도 듣기 싫은 이 잔소리를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는 내 아이에게 제대로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김동인. 7세 남자. 아이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모릅니다.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톱을 입술에 가져갑니다. 아이의 손끝을 살피니 열 손가락 모두 상처가 훤히 보입니다. 또다시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는 것을 발견한 어머니의 표정이 변합니다. 화난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손을 때리기 시작합니다.

“손톱 뜯지 마. 분명히 경고했다.”

손톱을 뜯어 문제가 되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소아 환자가 찾아오면 으레 아이의 손을 살피게 됩니다. 눈치가 빠른 아이는 내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얼른 손을 감추는 아이. 엄마에게 수도 없이 잔소리를 들었지만 고쳐지지 않습니다. 사실 아이는 이 문제를 고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이라 생각할 뿐이죠.

 

"어머님. 제가 보니 아이가 손톱을 계속 물어뜯네요. 얼핏 보니 손가락 끝에 상처도 많고요."
- 상황에 대한 인식

"저도 아이가 있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어머님 많이 신경 쓰이시죠."
- 자신의 감정을 먼저 표현

"저는 어머님이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 ‘바람’ 말하기


"그리고 아이와 약속을 하세요. 처음이니까, 이틀에 한 번 아이에게 손톱 보호제를 발라 주세요. 그리고 지금 제가 말한 형식대로 말씀하시면 돼요."

 

사진_픽셀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엄마 같은 면(mother figure)’이 요구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난 엄마 같은 면이 부족한 의사입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상자바’ 말하기 방식입니다.

환자에게 내가 인식한 상황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이는 정신치료에서 하는 ‘명료화(clarification)’를 응용한 것입니다. 환자가 말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 치료자는 환자가 표현한 내용을 반복하며 “이런 뜻이에요?”라고 질문을 던지죠. 이렇게 함으로 치료자는 자신이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는 다음부터 좀 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숨은 효과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환자가 ‘이 사람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구나.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네가 아주 속상했겠구나.”라고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려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가끔 상대방의 감정을 예측하는 것은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 안다고 내 감정을 짐작하는 거야.’라고 말이죠. 그러니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말하면 됩니다. 그럼 상대방은 거부감 없이 ‘이 사람이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죠.

이제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직업의 특성상 환자에게 잔소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살을 빼러 온 환자에게 명령합니다. “물을 많이 드셔야 해요.”, “6시 이후엔 식사를 삼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파 나를 찾아온 환자에겐 다릅니다. 명령이 아닌 제 ‘바람(wish)’을 말합니다. “저는 OO 씨가 이렇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한 다음 내 전문 지식을 사용해 구체적 사항을 지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자바’ 말하기 형식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엄마는 상처 난 네 손톱을 보면 마음이 아주 아파. 엄마는 네가 손가락이 입으로 갈 때 이 손톱 보호제가 느껴지면 꼭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항상 이렇게 ‘상자바’말하기 형식에 맞춰 부모님에게 교육합니다. 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교육을 해야 이것과 비슷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간을 들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꼭 언급하는 것이 반드시 시작을 ‘엄마는’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엄마에게 과제를 줍니다. 오늘부터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 훈련한다 생각하고 일주일 동안 ‘엄마는’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라고 합니다. 주어만 바꿨을 뿐인데 ‘잔소리’가 아닌 ‘바람(wish)’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이야기할 때, '엄마는'으로 무조건 시작해 보세요."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