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서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분개, 부정적 판단, 무관심한 행동을 할 권리를 자진해서 포기하고 그를 향해 연민, 관대함, 심지어 사랑이라는 과분한 속성들을 마음에 품는 것이라고 합니다. 

 

용서에 대한 오해?

하버드 의대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용서와 구분되어야 할 몇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용서는 범죄에 대한 관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의에 대한 고발과 누군가에 대한 증오는 다르다.
둘째, 용서는 망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셋째, 용서는 지나간 고통을 제거하지 않는다. 단지 미래의 고통을 제거한다.
넷째, 용서는 가해자를 너그러이 봐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용서는 가해자의 행동과 우리의 아픔이 미래에 개선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사진_픽사베이


용서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조지 베일런트는 용서를 위해 감정이입과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꼽습니다. 즉,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과거 일에 얽매이기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는 마음이 용서를 가능케 한다는 의미입니다. 

 

용서는 왜 필요할까요?

미국의 뇌생리학 박사인 앤드류 뉴버그는 "동물과 인간에게 용서 행동의 진화는 갈수록 격화되는 복수 행동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사회 집단에 유익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우리는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면 차분하고 평화를 느끼는 반면, 복수는 갈등과 긴장을 느끼게 합니다.

구약성서 레위기 19장 18절 "너는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코란에 기록된 알라의 지혜에는 '카파라'(용서)라는 단어가 234번 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종교에서 가르침과는 달리 복수에 복수를 반복하면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을 지키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최신식 무기가 아닌 서로 용서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용서는 정말 이로울까요?

용서는 받을 때보다 남을 용서할 때 더 큰 평화가 찾아오는 역설적 속성이 있습니다. 종교적 의무로써 강요된 용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활성화되는 교감신경이 향진되어 혈압이 오르지만, 공감과 사랑에 의해 중재된 용서는 그러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원한을 품고 상처를 생각하면 혈압이 오르지만, 가해자의 상황에 공감하고 용서를 상상할 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용서는 안정감을 주는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해 혈압을 낮추고 심장병 위험을 감소시킵니다. 
 

사진_픽사베이


시간이 지나도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왜 그럴까요?

피해받은 상황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정서와 관련되기 때문인 경우가 있습니다. 자책감, 죄책감, 버림받음, 자기 결함, 박탈감 등이 그 예입니다. 복수심을 내려놓고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 일이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인식하고,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일로 부정적 감정과 생각으로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치료가 내적 상처의 치유와 삶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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